2016년 제10회 세이레 평화기도회(주관: 평화한국, 2016.6-26)

주제: 십자가 사랑, 순교적 사랑

축사 (김명혁 목사)

아담과 하와의 후손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에는 어디나 분노와 증오와 분열과 갈등과 대결로 치닫고 있는데, 저주 받아 마땅한 죄인들을 바라보시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는 분노와 증오와 저주를 쏟아 부으시는 대신 긍휼과 용서와 자비를 지니시고 사랑과 구원과 화해와 평화의 손길을 펴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함께 사랑과 구원과 화해와 평화의 손길이 최고로 나타난 곳이 바로 십자가 현장이었고 그리고 십자가의 놀라운 사랑에 녹아져서 주님과 누군가를 위해서 제물 되는 삶을 살다가 제물 되는 죽음을 죽은 순교자들의 순교 현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십자가 현장에는 악독한 죄인들에 대한 분노와 증오와 저주의 소리가 아닌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구원과 화해와 평화의 음성들이 들렸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 스데반 집사의 순교 현장에도 분노와 증오와 정죄의 목소리 대신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구원과 화해와 평화의 기도 소리가 들렸습니다.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행 7:60). 이와 같은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구원과 화해와 평화의 기도 때문에 사도 바울이 탄생했고 안디옥 교회가 탄생했다고 생각합니다.

1866년 9월 5일 대동강 백사장에서 27세의 젊은 나이로 순교의 피를 뿌린 토마스 선교사의 선교 현장에는 자기의 목을 칼로 베는 박춘권에 대한 분노와 증오와 정죄의 목소리 대신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구원과 화해와 평화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잠깐만, 이걸 받아 주십시오. 제가 드리는 마지막 물건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나님, 이 사람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오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 일로 조선 땅에 뿌린 복음이 열매로 맺게 하여 주옵소서." 이와 같은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구원과 화해와 평화의 기도 소리 때문에 박춘권 장로가 탄생했고 조선교회가 탄생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기철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의 순교적인 삶의 현장과 순교의 현장에도 분노와 증오와 정죄의 모습 대신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구원과 화해와 평화의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일사각오의 순교 신앙을 지니고 순교의 길로 달려가면서 자기를 고문하는 일본 고등계 형사를 비롯한 공산당 주영하와 죄수들과 모든 사람들에게 비단결 같은 부드러운 모습으로 사랑의 손길을 폈는데 일본 고등계 형사도 공산당도 모두 진심으로 주 목사님을 존경했고 주 목사님을 심문하러 찾아왔던 순사 한 사람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었으며 나중에는 목사까지 되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나환자들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에게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구원과 화해와 평화의 손길을 폈는데 동인 동신군을 총살한 안재선을 비롯한 수 많은 사람들의 운명이 저주에서 축복으로 옮겨졌고 조선교회가 놀라운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받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민족의 화해와 평화의 길보다는 분노와 증오와 분열과 갈등과 대결의 길로 치닫고 있는 우리 남북한의 정치 경제 문화 종교인들에게 무엇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진리와 정의의 칼을 휘두르기 전에 십자가의 사랑과 순교자들의 사랑을 우리들의 몸과 마음에 조금이라도 체 받아서 지니는 것이고 우리들의 모든 이웃들에게 십자가의 사랑과 순교자들의 사랑을 조금씩이라도 나타내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순교자 김관주 목사님에 대한 칼럼 (김명혁 목사)

북한에서 신앙의 절개를 지키며 목회 하시다가 45세에(1950년 6월 23일경) 순교하신 분이 바로 나의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이다. 아버지는 평남 안주 출신인데 일본으로 가서 법학공부를 하시다가 신학공부를 하시게 되었다. 일본에서 의학전문을 나온 여의사와 결혼을 해서 나를 낳았다. 아버지는 동경신학교를 마친 후 한경직 목사님의 초청으로 1938년부터 신의주 제이교회에서 목회사역을 시작했다. 나는 어렸을 때 아버지와 많은 시간을 함께 가지지 못했다. 목회 일에 바쁘셨을 뿐 아니라 신의주에 계실 때 주로 감옥에 계셨기 때문이다. 이따금씩 나를 칭찬해 주시던 모습이 눈에 아물거린다. 신의주 감옥에 계시던 아버지를 뵙기 위해 어머니와 함께 감옥을 찾아가곤 했다. 담장밖에 서서 목소리를 돋우어 “뜸북 뜸북 뜸북 새 논에서 울고”를 부르고 “아버지! 아버지!” 라고 소리쳐 부르곤 했다.

아버지는 신의주 제이교회에서 9년 동안 목회 하시다가 1947년 평양 서문밖교회로 옮겨 목회를 시작했다. 그러나 평양에서 투옥되었다가 사동 탄광으로 옮겨져 그곳에서 복역하시게 되었다. 나는 어머니와 함께 사동 탄광을 찾아가곤 했는데 죄수 복을 입으신 아버지를 뵌 기억이 난다. 나는 아버지로부터 말이 아닌 삶으로부터 신앙적인 감화를 받았다. 신앙의 절개를 지키기 위해서는 고난도 감수해야 한다는 교훈을 받았다. 내가 평양 제5 인민학교를 다닐 때 정학을 당하면서도 주일성수를 끝까지 고수했던 이유도 아버지의 신앙적 감화와 교훈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1948년 7월 사동 탄광에서였다. 다음 달인 8월에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의 종이 되기 위해서, 11살 나이에 38선을 혼자서 넘어 월남했다. 아버지를 그리며 아버지에게 감사와 존경과 사랑의 글을 띄운 일이 있는데 그 일부를 인용한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나의 아버지! 저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이 세상의 누구보다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아버지는 저에게 말이 아닌 고난의 삶과 순교의 죽음으로 주님을 믿고 따르고 예배하고 섬기는 삶이 무엇인지를 순수하고 진하게 가르쳐주셨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의 말씀대로 아버지가 ‘강직’하시고 ‘진실’하셨는데, 저도 강직하고 진실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동탄광에 계시면서 탄광에서 노동하는 죄수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베푸셔서 저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고 하셨는데, 저도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펴면서 살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저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물 되는 삶을 살다가 제물 되는 죽음을 죽는 것을 저의 삶의 소원과 기도로 삼고 있습니다. 저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먼저 가 계시고 어린 아들이 먼저 가 있는 천국을 늘 그리워하고 사모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조만간 사랑하고 존경하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천국에서 반갑게 만나 뵙고 품에 힘껏 안기겠습니다. 사랑하고 또 사랑합니다.”

나는 아버지가 당한 일제와 공산당의 박해로 인해 그리고 내가 어릴 때부터 당한 신사 참배 강요와 일요일 학교 등교 강요 등으로 인해 반일 반공주의자가 되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나의 입장과 자세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일본 사람들을 이해하고 존중하고 사랑하게 되었고 일본교회와의 교류와 협력을 이루는 일에 앞장을 서게 되었다. 북한동포들을 돕는 일에도 모슬렘 사람들을 돕는 일에도 앞장을 서게 되었다. 모두가 아버지와 신앙의 선배님들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의 유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