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의방

  김명혁 목사
  시편 109편에 대하여 고견을 듣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김부연 목사님에게



먼저 답글이 늦어진 것을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지난 몇일 동안 너무너무 바쁘게 지내다보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나친 과찬의 말을 해 주어서 고맙고 죄송합니다.

"목사님 같으신 분이 우리곁에 서 계시다는 것 만으로도 힘이 됩니다" 라는 황송한 말을 했는데

앞으로 그렇게 되도록 최선을 다하고 한국교회를 위한 심부름꾼이 되도록 노력을 하겠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그 날 고백한 대로, 이성봉 목사님 김치선 목사님 한경직 목사님

박윤선 목사님과 같은 분들의 가르침과 사랑과 은혜때문입니다.



시편 109편에 대한 "고견을 듣고자 합니다" 라고 했는데 저의 생각을 간단하게 말씀 드립니다.

사실 시편에는 원수들에게 대한 저주의 기도와 시들이 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그와 같은 저주의 기도와 시가 개인적인 차원에서 드린 기도와 시가 아니고

하나님의 입장에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드린 기도와 시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우리들도 그렇게 할 수 있느냐 라는 질문이 생깁니다.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나하면 신약은 우리들이 원수를 갚지 말고 원수를 사랑하고 원수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런 단계에 도달하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우리도 십자가를 바라보고 스데반을 바라보고 손양원 목사님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면

조금씩 조금씩 우리의 정서와 느낌과 생각과 마음이 변화될 것입니다.

참고로 제가 9년 전에 109편에 대해서 한 강해설교를 여기 실립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시 109편 "저희는 대적하나 나는 기도할 뿐이라" 1998.6.3.



시인은 시108편에서는 하나님을 찬양하기로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라고 고백했고, 시 109 편에서는 "나는 기도할 뿐이라"고 고백했다. 얼마나 축복된 사람인가!

1. "저희는 대적하나 나는 기도할 뿐이라" (1-4)

"대저 저희가 악한 입과 궤사한 입을 열어"(2). 이 시인은 지금 악하게, 궤사하게, 거짓되게, 무고하게, 애매하게 원수들의 훼방과 공격을 받았다. 얼마 전 알마타에서 사역하는 신송태 선교사가 그곳에서 사역하는 중 너무나 억울하고 거짓되게 비난과 훼방을 받아 산에 올라가서 소리를 지르면 울고 또 운 일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나의 찬송하는 하나님이여"(2). 이 시인은 원수들의 극악한 훼방을 받았을 때 저들에게 어떻게 대응했는가? 첫째, 찬송으로 대응했다. 둘째, 사랑으로 대응했다. 셋째, 기도로 대응했다. "나는 사랑하나 저희는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 축복된 사람이다.

2. "악인으로 저를 제어하게 하시며" (5-20)

"악인으로 저를 제어하게 하시며"(5). 여기서 시인은 원수들에 대한 저주를 선언했다. 1) 악인으로 저를 제어하게 하시고(6), 2) 판단을 받을 때 죄를 지고 나오게 즉 정죄를 받게 하시고(7), 3) 기도가 죄로 변케 하시고(7), 4) 그 년수를 단촉케 하시고(8), 5) 가정이 망하게 하시고(9-10), 6) 재산이 빼앗기게 하시고(11), 7) 그 후손이 끊어지게 하시기를 기원했다(12-15). 원수에 대해 사랑과 기도로 대응하던 시인이 저주를 선언한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며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저주하는 자를 위해 축복하며 모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했는데(눅6:27-28), 원수에 대한 저주를 선언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교훈에 배치되는 것이 아닌가?

시편에 자주 나타나는 저주의 시는 시인 개인의 복수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천국의 공적으로 간주하고 그들에게 저주를 선언했다. [그리고] 이런 판정과 선언은 누구나 할 수 없고 오직 [구약의] 예언자나 신정국의 대표자가 하나님의 대언적 권위로만 할 수 있다"(박윤선). 시인이 여기서 원수의 저주를 소원했다기 보다는 궁극적으로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내다 보며 성도가 취할 자세를 확정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저가 긍휼히 여길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16-20). 원수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이유가 분명하다.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지 않고, 축복하기를 기뻐하지 않고, 오히려 핍박하고 저주했기 때문이다.

3. "주의 이름을 인하여 나를 건지소서" (20-31)

"주의 이름을 인하여 나를 건지소서"(20). 여기서 시인은 하나님의 구원을 간구했다. 구원의 근거는 항상 하나님의 이름과 인자하심이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비추어 자기의 가난과 궁핍과 상함과 무상함과 수척함을 낱낱이 아뢰이며 하나님의 구원을 기도했다.

"내가 여호와께 크게 감사하며 찬송하리니"(30). 구원의 목적은 항상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리는 것이다. 기도와 찬양, 이것은 성도의 삶의 시작이요 끝이다.



그리고 내가 얼마전에 차를 타고 오면서 쓴 짧은 글을 여기 싣습니다.



“사랑하고 싶어라”



나는 요사이 주님을 생각하면 가슴에 눈물이 흐른다.

한 평생 나를 향하신 주님의 생각과 사랑이 어찌 그리 크고 어찌 그리 많은지!

실로 모래알보다 더 많은 주님의 긍휼과 용서와 사랑이 나의 가슴에 눈물을 자아낸다.

사랑하고 싶어라. 주님을 사랑하고 싶어라.

나의 맘 나의 몸 나의 정성 다 쏟아 주님을 사랑하고 싶어라.



나는 요사이 사람들을 생각하면 가슴에 눈물이 흐른다.

어린이들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너무너무 귀엽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성도들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너무너무 예쁘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이 세상 곳곳에 흩어져 사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만날 때도 비슷한 느낌을 가진다.

저들의 얼굴과 마음과 영혼 속에 창조주 하나님께서 심어놓으신

고귀한 인성과 신성의 흔적을 보기 때문이다.

저들을 모두 사랑하고 싶어라. 모슬렘도 공산주의자도 상관이 없다.

저들은 모슬렘이나 공산주의 라는 불행한 유산에 쌓여있는 가련한 영혼들일 따름이다.

사랑하고 싶어라. 사람들을 사랑하고 싶어라.

나의 맘 나의 몸 나의 정성 다 쏟아 사람들을 사랑하고 싶어라.

(2007년 1월 3일 아침 교회로 운전하며 오는 차 속에서 쓴 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김부연 목사님과 가정과 사역위에 항상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사랑합니다. 주일 저녁 김명혁 목사





[인쇄하기] 2007-12-02 17:38:56


   


관리자로그인~~ 전체 776개 - 현재 7/52 쪽
번호
제목
이름
파일
날짜
조회
686 예비합신인 2007-12-18 1706
685 김명혁 목사 2007-12-29 1672
684 속좁은 나 2007-12-16 1699
683 김명혁 목사 2007-12-17 1682
682 속좁은 나 2007-12-18 1611
681 작은성도 2007-12-04 1663
680 김명혁 목사 2007-12-05 1678
679 그리는 이 2007-12-04 1579
678 김명혁 목사 2007-12-05 1773
677 김부연 2007-12-03 1559
676 김부연 2007-11-30 1762
김명혁 목사 2007-12-02 2368
674 성도 2007-10-16 2097
673 김명혁 목사 2007-10-18 2058
672 성도 2007-10-18 1730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