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의방

  김명혁 목사
  약함의 의미
  

사랑하는 작은 성도님에게



설교를 통해서 은혜를 받고 있는 것은 큰 은혜요 축복입니다.

그리고 솔직한 질문을 해 주어서 감사합니다.

사람은 평생 배워가는 과정의 존재입니다.

사실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12:10)는 사도 바울의 고백은 역설적이고 모순됩니다.

여러가지로 현실적으로 설명을 하기 전에 우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가장 약해져서

십자가에 잡혀서 죽은 사실을 바라보고 묵상하면 그 역설적인 의미를 조금씩 알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매를 맞고 또 맞고 옥에 갇히고 또 갇히면서 걸어간 약함의 길을 바라보고 묵상하면

그 역설적인 의미를 조금씩 조금씩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조선교회가 일정 치하에서 극히 약하고 약했었지만 지금 세상적으로 강해지고 부요해진 한국교회보다는

민족과 사회에 훨씬 더 강력한 영향력을 미친 '강한'교회였다는 사실을 바라보고 묵상하면

그 역설적인 의미를 조금씩 조금씩 이해하고 수긍하고 받아드리게 될 것입니다.

약함이란 무식한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용기가 없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이 없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힘이 없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를 위해서 자기의 권리를 자발적으로 모두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이름과 뜻과 영광을 위해서 그리고 불쌍한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약함을 지닐 때 쉽게 화를 내지 않습니다. 교만하거나 자만하지도 않습니다.

온유해집니다. 부드러워집니다. 용서하게 됩니다. 품게 됩니다. 사랑하게 됩니다.

"목사님도 완벽할 수없다는 것"은 너무나 지당한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 약함을 사모하면서 약함을 몸에 지닐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와 사랑이 작은 성도님에게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6년전 순복음신문에 실렸던 글을 여기 그대로 인용합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007년 12월 5일 김명혁 목사





"약함을 통한 강함" 순복음신문(01.7.25)



김명혁 목사(강변교회 담임, 한국복음주의협의회 부회장)



기독교의 진리는 역설적이다. 약할 때 강하고 어리석을 때 지혜롭게 되는 것이 기독교의 진리이다. 오늘날 한국 교회 문제 중의 하나는 너무 강하고 너무 지혜로운 것이다. 얼마 전 한국 교회의 지도자중인 한 분인 임택진 목사님이 이런 말을 했다. 한국 교회의 근원적인 문제의 하나는 한국교회가 그 동안 지도자들을 우상화 한데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교회의 일부는 김재준 목사를 우상화 했고 한국교회의 또 한 일부는 한상동 목사를 우상화 했고 한국교회의 또 한 일부는 박형룡 박사를 우상화 한데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올바른 판단이고 올바른 지적이다. 한국교회의 또 한 일부가 박윤선 목사를 우상화한 것도 문제라고 하겠다.

영국의 세계적인 기독교 지도자인 존 스토트 박사는 작년 7월 영국 케직 사경회에서 이런 말을 한 일이 있다. 기독교의 근본적 진리의 하나는 약함과 어리석음에 있다는 것이었다. 십자가의 복음 자체가 어떤 의미에서는 약하고 어리석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참된 기독교 지도자의 특성도 자신의 약함과 어리석음을 깊이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파벌을 만들어 분쟁하던 고린도 교회가 지도자들을 지나치게 높이며 우상화 하려고 했을 때 참된 지도자 사도 바울은 그와 같은 시도를 단호하게 거부했다는 것이었다. 바울은 이렇게 자신을 묘사했다. "바울은 무슨 물건이며 아볼로는 무슨 물건이냐?" 바울은 자기 자신을 지칭하는 명사를 남성명사 대신 중성명사를 쓴 것이었다. 몇 줄 다음에는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단어로 "아무 물건도 아니라"는 멸시적인 말까지 썼다. 영어로는 nothing이라는 말이었다. 조금 더 내려가서는 자기자신을 표현하며 "나는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고 까지 했다. 조금 더 내려가서는 "나는 만물의 찌끼" 즉 시궁창에 내버리는 음식물의 찌꺼기 같은 존재라고 까지 표현했다. 그리고 고린도 후서에서는 이렇게 묘사했다. "나는 나에 대해서 약한 것들과 부족한 것들을 자랑하노라 그 이유는 내가 약할 때에만 강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약할 때에만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와 함께 하기 때문이다." 존 스토트 박사는 오늘날 세계 곳곳을 다녀보아도 바울처럼 자기의 약함과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진정한 기독교의 지도자들을 찾아보기가 너무나 어렵다고 고백했다. 오늘날 기독교 지도자들은 모두 너무 강하고 너무 지혜롭고 너무 부요하게 되었다. 오늘의 수많은 교회가 "나는 부자라"고 자랑했던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되었는지 모르겠다.

초기의 한국교회는 참으로 약했고 가난했고 힘이 없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겸손히 땅에 엎드려 하늘을 바라보며 하나님만 의지한 적이 있었다. 초기 선교사 중의 한 사람인 블레어 박사가 지적한대로 그 당시 한국교회는 절망 가운데서 하늘만을 바라보며 이렇게 울부짖었다. "선교사님, 한국 사람들처럼 불행하고 불쌍하고 소망이 없는 민족이 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적으로 약하고 힘이 없고 소망이 없는 한국 교회와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시고 부흥과 축복의 손길을 펴신 것이었다. 결국 한국교회는 세계 교회가 놀랄만한 급속한 성장을 이루었고 민족과 나라까지 큰 축복을 받은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새 한국교회는 너무 커지고 너무 강해지고 너무 지혜로워졌다.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너무 위대해져서 거의 우상화 하게 되었다. 결국 한국교회는 복음의 능력을 상실하게 되었고 사회로부터 실망과 불신을 받기에 이르렀다. 지금 우리는 비난과 비판을 당할 때 그것을 부정하며 받아 쳐서는 안될 부끄러운 자리에 이르게 되었다. 물론 한국교회가 사회에 공헌한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교회가 사회 발전과 세계 선교에 크게 공헌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한국교회는 비판의 소리를 겸허히 수용하며 자신을 돌아볼 때가 되었다. 한국교회는 바울처럼 약해져야 하고 어리석어져야 한다고 생각해 본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은 우리가 약할 때에 우리와 함께 하시고 그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머물게 하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리석어질 때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에게 그의 지혜로 머물게 하시기 때문이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라고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가장 위대한 사역자로 만드시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약함을 통해 역사하는 그리스도의 강함과 능력을 체험하자. 이제 우리는 어리석음을 통해 역사하는 그리스도의 지혜를 체험하자. 한국교회를 불쌍히 여기시기를 기원한다.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12:10).

[인쇄하기] 2007-12-05 15: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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