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1
나를 찾아서
북한귀순자 전영복
전영복군의 잘 생긴 외모 천진한 미소, 웃음이 끊이지 않는 말버릇 등을 보노라면 남한의 여느 대학생과 다른 것을 느낄 수 없다. 그러나 파란만장한 지난 삶을 이야기할 때 그의 얼굴엔 완전히 다른 또 하나의 얼굴이 떠오르고 남한의 젊은이라면 상상할 수조차 없는 28살 (1973년 함흥 출생, 어린 시절은 청진에서 보냈다.) 젊은이가 겪었던 辛苦의 잔영을 보게된다.
"인간은 동물 중 그 어떤 것 보다 변신에 능한 동물이라고 북한에서 배웠어요." 라는 본인의 말대로 그는 변신을 거듭했다.
북한에서 영복군의 마지막 신분은 경찰학교 학생이었다. 친척 중 하나가 사석에서 김정일을 비판한 것이 당국의 귀에 들어가 그의 일가족은 함흥을 떠나 탄광지대로 이주해야 했다. 그는 분한 마음에 탈출하기로 결심, 혼자 두만강을 헤엄쳐 건너 중국으로 갔다. 돈 한 푼 없이 기차에 올라탔는데 무임 승차자로 발각되어 공안에 끌려갔다. 북한 탈출한 것이 알려지면 다시 북한으로 보내지기 때문에 그는 끝까지 귀머거리 벙어리 행세를 고수했다. 자백을 얻기 위해 몇 시간을 때리고 차던 공안이 지쳐 그를 풀어주어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이후로 그는 굶기를 밥먹듯이 하며 구걸, 노숙으로 목숨을 부지하며 중국 전역을 떠돌았다. 중국말을 모르는 그는 벙어리 시늉으로 얻어먹었다. 물론 쓰레기 더미를 뒤져 음식 찌꺼기를 주워 먹는 날이 더 많았다. 비를 맞으며 자는 고통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 그러나 국가가 전적으로 통제하는 공산사회에서 일자리를 얻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의 신분은 북경에서 김모 여인을 만나면서 거지에서 왕자로 변하게 된다.
0년 0월경, 북경의 한 호텔 화장실에서 한국말을 하는 한 초로의 남자에게 구걸을 했는데(다리를 저는 그 남자는 나중에 알았지만 목사였다.) 돈을 다 털어 주며 다음날 다시 만나기를 자청한 그 남자는 영복군에게 김모 여인을 소개해주었다.
김 여인은 북경에서 그녀를 모르면 북경 사람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부유한 조선족 여인이었다. 나이는 45세였고 목사도 선교사도 전도사도 아니었다. 돈을 벌면 교회를 세우고 교회를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가난한 사람을 돕는데 전력하는 말 그대로 천사와 같은 여인이었다. 영복군이 북을 탈출한 것을 안 김 여인은 영복군에게 북경 교외의 아파트를 제공하여 중국말을 모르는 그를 위하여 중국인 청년과 함께 은신하게 해주었다. 김 여인이 돌보는 북한 탈주자는 이미 20명 가량이 되었다. 영복군이 북경 생활에 익숙해지자 영복군에게 한화 30만원 가량의 월급을 주며 자신이 경영하는 식당 일을 돕게 했다.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동생이라고 소개했다. 영복군은 식당 일을 돕기도 하고 중국여행도 마음껏 하며 그야말로 꿈과 같은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안주할 줄 모르는 영복군은 끊임없이 일을 저질렀다. 아무하고 시비가 붙어 싸움질하는 건 다반사고, 역전에 가서 탈북자를 알아보고 데려와 숨기거나, 북한 인권 유린 상황 을 고발하는 지하 정치운동도 서슴지 않았다. 삐라를 뿌린다, 탈북자와 접촉한다 하여 중국 당국에 요주의 인물이 되었다.
김 여인이 경영하는 식당 자체가 북한과의 합작형태인데다. 북한도 왕래하며 무역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치적인 활동은 엄금하였는데 그 약속을 어긴 것이었다.
그래도 김 여인은 언제나 그를 용서했다. 공안에게 가서 영복군을 데리고 오면서도 그의 손을 잡고 타이르고 기도하기만 했다. 영복군은 지금도 김 여인을 그리워한다. 김 여인의 무조건적인 善意가 그 자신 잘 알지 못하나 예수와 연관된 그 무엇, 예수가 가르친 그 무엇
"그 뭐 예수님의 사랑인가 하는 거겠지요."
나중에 김 여인은 돌봐주던 탈북자가 사고를 치고 공안에 붙잡혀 김 여인에 대해 말하는 바람에 북과 남 사이에서 이중 플레이를 했다는 괘씸죄에 걸려 북경 驛에서 북한 사람들에게 납치되어 북으로 끌려갔다. 그러나 한달 가량 구금되었다가 20만 달라의 벌금을 내고 풀려났다. 영복군도 더 이상 북경에 있을 수 없어 김 여인이 쥐어주는 돈을 가지고 베트남으로 갔다. 돈은 넉넉한 편이었지만 그는 베트남에 안주할 수가 없었다. 정확하게 말해서 그런 식으로 안주할 수 없었다.
주머니 안에 있는 신분증은 모두 가짜였다. 국경에서 만나 위조여권 장사에게 돈을 주고 산 것들 뿐이었다. 국경에서 몇 시간만 어슬렁거려도 위조여권을 취급하는 사람을 금방 알아본다. 비쌀수록 정교하고 들킬 염려도 적다.
그러나 베트남 호쩌민 市 자신의 속소에서 자신에게 묻는 날이 많아졌다. 나는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인가? 호주머니에 가득 찬, 자신을 거짓 증명하는 수첩 쪼가리들은 무엇인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귀게 된 사람도 있었지만 자신에 대해 진정으로 알고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는 어떤 의미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이제 그만 떠돌고 싶다고 생각했다. 날이 갈수록 어딘가 합법적으로 속하고 싶다는 생각이 눈물처럼 솟구쳤다. 그는 한국 외엔 갈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00년 0월 한국영사관으로 갔다.
영복군은 남으로 온 이후 막노동일, 봉고차 기사일 등 육체를 혹사하는 밑바닥 일을 했었고 한솔제지에 취직하여 남한사회의 조직생활도 맛보았다. 지금은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고려대학교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있다. 소원이 있다면 돈을 많이 버는 것, 그 돈으로 자신을 살려준 기독교를 돕는 것 그리고 통일 이후에 북에서 쓰임 받는 것이다. 강변교회는 작년에 최광혁군이 인도했다.
(취재: 허영숙 집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