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변소식지

  신바다 전도사(청년1부)
  제59호 - 교역자의 글 '영성과 삶'
  

영성과 삶

기독교의 모든 말씀과 가르침의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우리의 삶 가운데 열매 맺음에 있습니다. 삶에서 하나님을 드러내며 그 분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 신자의 존재이유입니다.
영성이라는 것은 바로 이 길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삶의 영역에 주목하는 작업입니다.
즉, 영성은 삶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진리의 말씀으로부터 찾아내어 삶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있습니다.
그렇다면 영성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균형입니다. 전인적인 인간의 삶에서 지성, 감정, 의지적 영역이 균형있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먼저 지성적인 요소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풍성하게 하는 것입니다. 영성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대상을 정확하게 이해할 때, 바른 삶의 영성이 흘러나오게 됩니다. 지성적 결여는 삶과 연결되어져서, 어떻게 현실에서 살아야 되는지 에 대한 메시지를 제공해 주지 못하게 됩니다. 따라서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맹목적이며 방향성을 잃어버린 영성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영성은 하나님의 말씀인 계시를 알아가며 그 지식이 삶 가운데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영성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Knowledge about God)이며, 말씀연구와 균형있는 독서는 이를 잘 함양해 줍니다. 특히 기독교 세계관은 골격을 이루며 지성의 작업들은 신자와 교회를 건강하게 만들며 영성의 기초가 됩니다.

두 번째로 감정적인 요소입니다. 지성적인 작업과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감정적인 부분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지성적인 요소와 감정적인 요소를 분리하여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성과 감정은 유기적인 관계에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꿀에 대한 지적인 이해를 가지고 있다고 할 때, 머리로 꿀이 달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꿀을 먹어보는 감정적이며 경험적인 일이 없다면 그 사람이 가진 지식은 단 맛에 대한 실제적인 감각이 없는 단지 지성적인 것으로 꿀이 어떻게 단 맛이 나는지는 실제로 알지 못합니다. 바르게 아는 것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작업과 동시에 실제적인 경험적 요소가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조나단 에드워즈는 ‘마음의 감각’이라고 불었습니다.
영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성적인 부분이 선행되고 또한 실제적인 삶에서 경험되어져야 합니다. 영성에서 경험적인 요소가 결여될 때 그것은 사변적이며 차가워진 지식으로 머물러 있게 됩니다.
삶에서 지성적인 요소가 마음으로 내려와서 현실에서 살아가는 것이 바른 영성의 모습입니다. 영성은 경험적이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knowledge of God)입니다.
이러한 감각적이며 경험적인 요소는 산자의 삶을 움직입니다.
우리 삶의 동력이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경험적으로 아는 영성입니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은 우리를 온전한 자발성으로 이끌지 못합니다. 그러나 마음으로 경험하며 삶으로 체험하는 것은 신자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그리스도께 헌신하게 만듭니다. 따라서 신자는 끊임없이 경험적 영성을 소유해야 합니다. 우리의 어려움은 많은 부분에 있어서 하나님에 대해 알지 못하는 어려움보다는 우리가 하나님을 삶에서 경험하며 동행하지 못하는 어려움에 기인되어 집니다.
따라서 신자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에 대한 가난함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영성에 경험적인 요소를 유지하며 삶에 동력을 주는 윤활유와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의지적인 요소입니다. 이것은 앞에 두 가지의 특징이 잘 통합될때 자연적으로 유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지적이며 감정적인 요소의 바른 결과로 의지적인 특징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나 전적으로 부패한 사람들에게 의지적인 요소는 한계가 있습니다. 지성과 경험의 영성이 삶을 인도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죄에 대한 경향성은 이를 거부하며 삶으로 열매 맺지 못하게 합니다. 이로서 영성의 결과이자 긍정적으로 지향되어야 할 목표인 삶의 표현이 결여 되게 합니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요소는 죄 죽임과 자기 깨어짐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신자 안에는 그리스도를 알고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옛 본성과 죄의 뿌리인 자기 사랑이 존재합니다. 이것은 영성에 치명적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근원적인 단절은 자기 사랑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선악과 사건이 이를 말해줍니다.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보다 자아를 사랑하며 자기의 뜻대로 살겠다고 하는 의지가 선악과가 말해주는 메시지입니다.
따라서 영성에 있어서 자기 깨어짐과 자기 부인은 핵심입니다. 이것이 의지적 삶의 영성을 이루는 시작점이 됩니다. 신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산 사람입니다.(갈 2:20) 이 죽음은 영성의 출발이며 창조의 목적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 죽음을 통하여서 그리스도를 따르며 자기를 부인하고 끊임없는 자기 깨어짐을 이룹니다. 이러한 과정은 온전히 성령의 조명하심과 인도하심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열매 맺지 않는 영성, 의지적인 요소가 결여된 영성은 잘못된 것입니다. 영성은 삶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기독교 공동체에서만 국한되어 영성이 들어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부르셨습니다. 교회와 기독공동체는 부르심을 받은 공동체이자 보냄을 받은 공동체입니다. 영성도 개인적이며 내재적 요소가 있지만 동시에 삶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열매를 통하여 나무를 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성령 충만도 성령의 열매를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갈 5:22) 바른 영성도 삶에 대한 열매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도 삶으로 보여주고 증거 했던 영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야고보서에서도 행하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2:26) 영성은 삶으로 표현되어야 하며 증거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영성은 삶에 관한 것입니다. 삶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며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 영성입니다. 이러한 영성에서 중요한 요소는 균형입니다.
지성만 강조한 채 경험되어지는 영성을 간과한다면 건조한 신앙이 되버릴 것입니다. 또한 상반되게 경험만 강조하다 보면 신앙의 방향을 잃어버린 채 신앙이 주관적으로 변질되어 버릴 위험도 있습니다. 또한 지성과 경험을 통하여 이루어진 영성을 삶으로 살아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위선적이며 부르심에 합당한 삶이 아닐 것입니다.
바르게 아는 것과 경험하는 것 그리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균형있는 영성을 소유하고, 삶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는 신자들이 이 땅에 풍성해져서 우리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와 그분의 영광만 드러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인쇄하기] 2008-09-03 13: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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