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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비올라의 “Transfigurations”展
(2008년 6월27일-8월17일)을 보고 와서
이경림 집사(도곡2구역)
이번 여름, 사간동 국제갤러리에서 내적변화와 쇄신을 겪는 인간의 모습을 담은 빌 비올라(Bill Viola)의 영상설치작품을 관람했다. 정말 이렇게 영적인 작품이 가능하다는 점이 내겐 큰 충격이었다. 이 작가에 대한 지식도 없이 처음 작품을 대했을 때부터 중생, 거듭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느꼈는데, 제목도 “Transfigurations(변형)”라니…
근래 미술계는 경박한 비주얼 문화에 대한 열광이 지나치다 싶다. 스크린의 스타, 로봇 장난감, 각종 캐릭터 등이 전시장을 채우고 있다. 그런 점에서 빌 비올라는 그와는 대척점에 있는 작가라고 한다.
어둠 속에 위로부터 내려오는 빛을 바라보는 인간의 모습, 어쩌면 이것은 너무도 상투적일 수 있다. 그러나 빌 비올라는 최신 장비들에서 나오는 고화질의 이미지를 통해 신비스런 광경을 연출하였고, 영적 신비감을 경험하는 충격적인 예술을 창조해냈다.
이번 전시에서는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선보여 주목받은 영상설치작품 ‘해변 없는 바다(Ocean without a Shore)’와 관계되는 작품과 거대한 영상물 ‘천년을 위한 다섯 천사들(Five Angels for the Millenium)’ 등 10점을 볼 수 있었다.
‘해변 없는 바다’는 15세기에 지어진 베니스의 산 갈로(San Gallo) 교회에서 전시되었던 작품이다. 예배당 내부 세 개의 제단석 위에 각각 설치된 세 개의 대형 스크린에서 인간의 형상이 흐릿한 어둠 속에서 밝은 공간으로 천천히 나오면서 점차적으로 실체화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인간의 형상은 가까이 다가올수록 점점 명확해지고 보이지 않는 문턱(특수 장비로 설치된 물 장막)을 넘으면서 완전히 물질화된다. 문턱을 통과하는 순간, 육체의 표면은 물의 물리적 힘과 겨루는 듯하며 무한한 감정으로 격앙되는 인간의 표정은 그대로 표출된다. 마치 거듭남을 경험하는 인간의 모습 같았다.
자아가 깨지는 고통, 영안이 열려 보게 된 자신의 실체에의 실망감, 그리고 신의 사랑과 은혜에의 감동과 깊은 희락, 영원한 세상에 대한 소망 등등.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듯 또렷이 드러나는 실체에 대한 이야기까지, 관람객들에게 예술을 통한 일종의 영적 신비감을 경험하는 기회가 되었다.
“Transfigurations” 시리즈인 6점의 작품들 ― ‘Acceptance(수락)’, ‘Three Women(세 여인들)’, ‘The Innocents(순진한 자들)’, ‘Small Saints(작은 성인들)’, ‘The Arrangement(배열)’―은 모두 물의 장막을 통과하면서 변모되는 인간의 외적 형상을 통해 내적인 인간 감정의 변화와 감흥을 표현했다. 여기에서 ‘물의 장막’은 삶과 죽음 사이의 간극이자 일종의 보이지 않는 힘, 또는 알 수 없는 신비를 표현한 장치이다.
이승에서 저승으로 건너가는 이미지를 물의 장막을 건너가는 사람들을 통해 표현한 이 작품, ‘해변 없는 바다’는 10월말까지 과천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된다고 한다.
2층에는 대규모 비디오 사운드 설치작품 ‘천년을 위한 다섯 천사들’이 전시되었다. 2001년에 제작된 작품으로, 다섯 개의 비디오 프로젝터에서 나오는 각각의 영상은 어두운 전시장 벽에 투영된다. 옷을 입은 한 남자가 물 속에 뛰어들면서 시작되는 일련의 장면들에는 무중력 상태와 같은 우주적 공간에 뛰어드는 인간의 형상이 연출되며 음향과 함께 큰 감흥을 일으킨다.
이 작품은 영국의 테이트 갤러리, 미국의 휘트니 미술관, 프랑스의 퐁피두 센터에서 공동으로 구입해서 컬렉션 되었다고 한다.
이 시대는 각종 매체의 발달로 그 어느 때보다 문화의 힘이 큰 사회라 할 수 있다. 공중권세 잡은 자는 그 문화를 이용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휘어잡고 조정하는지, 그야말로 전쟁터인 것 같다.
인간이 타락하여 어둠을 좋아하고 그 어둠 속으로 빠져든다 하여도, 인간에겐 신의 형상을 닮은 점이 있고, 신 안에서만이 진정한 희락과 평안이 있음을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동원하여 드러내며 살아야만 하는데, 이런 작가와 작품이 있다는 것은 너무나 고무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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