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변소식지

  1부- 방담회 2부 / 박주양 집사/ 3부 정병오 대표
  제64호 - 특집- 이시대 기독교인의 자녀교육
  

[특집]

이 시대 기독교인의 자녀교육

1부. 자녀교육, 어른들이 할 일은 무엇인가 - 방담회

청소년은 강변교회의 미래다.
강변교회의 다음 세대 일꾼들이 어떤 모습으로 자라
하나님의 몸된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가는 지금
교회가 어떤 관심을 쏟고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양육하는가에 달려 있다.
강변교회의 청소년 목회와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몇 분과 함께
이들이 지금 고민하는 것이 무엇인지,
교회가, 부모가 무엇을 해야 할지 얘기를 나누어보았다.


참석자: 이동열 강도사(중등부), 황규민 집사(교회학교부장), 정재영 집사(고등부 부장), 박주양 집사(고등부 교사), 이기봉 집사(중등부 부장)
사회 및 정리: 이진수 집사(문화부 부장)


사회: 청소년으로 살아가기 힘든 시대입니다. 공부에 대한 압박은 말할 것도 없고요, 대중문화나 인터넷 미디어, 게임 같은 교회 바깥의 문화들이 아이들의 영혼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교회의 다음 세대 일꾼으로 자라날 청소년들이 정말로 어떤 고민을 하며 지내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말씀들을 나눴으면 합니다.

이기봉 집사: 중등부의 경우, 신앙 때문에 고민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직 어려서인지 “왜 엄마 아빠는 나에게 공부를 강요할까? 왜 게임을 못하게 하고, 친구들과 마음대로 놀지 못하게 할까?”는 고민도 많이 합니다. 부모 입장에서도 충분히 알아듣게 납득시키기 힘든 문제들이죠.

정재영 집사: 고등부 학생들은 아무래도 학업을 가장 힘들어합니다. 문제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바꿀 수 없으면서 스스로 목표의식도 뚜렷하지 않다는데 있습니다. 아이들 스스로 학업에서 성공의 경험보다는 실패가 많게 되니, 강박관념을 갖게 되고 부담감을 떨치지 못합니다. 컴퓨터(게임, 인터넷), 대중문화 등에 노출이 심하게 되다보니 집중도 잘 안됩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 가정에서 성장과 양육의 로드맵을 잘 그려주고 있는 학생들이 많지 않은 것도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말씀을 생활에 반영하는 것이 잘 안됩니다.

황규민 집사: 솔직한 얘기를 하자면, 아들이 어제도 새벽 2시까지 게임을 했습니다. 고민보다 짓눌려 있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맺고 끊음이 있다기보다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일상입니다. 직장인들이 술자리 등으로 고달픈 일상을 탈출하려 하듯이, 애들은 게임을 통해 탈출하려 합니다. 그래서 무조건 하지 말라고 얘기하기가 어렵습니다. 뚜렷한 목표가 있어야 해결될 수 있을 겁니다. 성적이 좋은 아이도 성취감이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차라리 게임은 레벨이 높아지는 것을 경험하면서 성취감이라도 주죠. 그래서 빠져드는 겁니다. 기도제목은 그저 “시험 잘 봤으면”이 가장 많습니다. 그런데 막상 나중에 뭐하고 살고 싶니 물어보면 아무 생각도 없고요, 그나마 당장 구체적인 것이 좋은 대학, 직장 정도입니다. 그러다보니 신앙적인 모험도 없고, 꿈도 없어져 갑니다.

박주양 집사: 한국의 청소년들은 색깔로 비유하면 회색입니다. 원색이 없고 암울해 보여요. 미국은 대학 진학률이 40%대에 불과합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거의 대부분 대학을 가려고 하지만, 자기 선택이 아니라 주위 환경에 떠밀려 가는 것이 큰 차이입니다. 어느 교포 자녀가 또래가 있는 한국의 목사님 댁에 머문 적이 있다고 합니다. 방학이라 같이 놀 수 있겠거니 했는데, 토요일까지도 학원을 가느라 저녁 외에는 얼굴 볼 시간도 없더라는 겁니다. 결국 토요일 밤이 되어야 겨우 스타크래프트 게임 같이 하고 사우나로 가더라는 거죠. 그 목사님 아들은 전교에서 1등하는 학생이었는데도. 고등부까지 교회 생활을 잘 했던 아이가 기대에 못 미치는 대학에 진학한 후에는 잘 안나오는 경우도 종종 봅니다. 그런데 모든 것이 학교의 레벨로 보상받는 시스템이 되다 보니 교회 안에서마저도 이런 것에 대해 서로 함구하게 됩니다.

사회: 도대체 부모들이, 성인 교인들이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줘야 할까요? 교회가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까요?

이동열 강도사: 이제는 아이들에게 투자하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데 대부분 동의하는 분위기 같습니다. 사실 그간 교계는 어른 중심의 교회 운영이 지배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청소년을 위해 일생을 함께 봉사하려는 성도가 얼마나 있을까요? 심지어 교역자들조차 교육부는 “거쳐 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아직도 팽배합니다. 그러나 청소년들은 “함께 살아 줄” 사람들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교역자들의 가치관을 평상시에도 공유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탱크 목사님이란 별명으로 알려진 홍민기 목사님 사례를 성공 Case로 소개하고 싶습니다. 특별한 프로그램이나 교재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다만 같이 살아 주니까, 아이들이 변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참으로 와 닿습니다. 한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부모님과 교역자간에 서로가 생각하는 아이에 대한 필요가 일치하지 않으면 아이는 혼란스럽게 됩니다. 교인 자녀들인데도, 부모님이 안 보내서 집회나 순서에 못 간다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는 어떻게 방법이 없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부모를 따라가게 됩니다.

이기봉 집사: 매일 조금이라도 성경 읽기, 성경 이야기, QT 등 바른 가치관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왜 공부해야 하느냐” 하는 질문에 대해서도 부모가 본이 되어야 진정한 답변이 가능하지 않을까 합니다.

정재영 집사: 어떻게 커갈지 모르는 아이들이기 때문에 사랑하고 기도하고 기다리는데 중점을 둬야 합니다. 더디게 가도 가야 되죠. 가만히 보면 아이들이 서로를 희생할 때 더 잘 크는 것 같습니다. 신앙 교육, 격려를 한번이라도 더 해주는 것이 무조건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교회 시스템이 이를 지원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이동열 강도사님 얘기처럼 프로그램보다는 같이 살아줄 사람들이 필요한 거죠. 이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좀 다른 얘기인데, 예체능 쪽을 생각하는 아이들이라면, 이들을 교회로 유도하기 위해 희망하는 진로에 도움이 되도록 교회 프로그램이나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을 시도해 보는 것도 필요할 것입니다.

황규민 집사: 중3 정도만 되면 부모가 아니라 본인이 알아서 교회 활동을 스스로 빠지게 됩니다. 벌써 본인이 득실을 따지는 것이죠. 이미 이때쯤에는 아이들에게도 이원론적인 가치관이 형성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되면, 가정과 교회가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함께 나아가지 않으면 방법이 없습니다. 지금 청소년들이 40~50대가 될 때는 우리보다 더 경쟁이 치열하고 전문직으로도 안정을 보장할 수 없는 시대가 될 것입니다. 어떤 학교, 어떤 직업, 어떤 직장이냐가 결정되어도 일생 편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없게 될 겁니다. 그러다보니 부모들 스스로도 확신은 없으면서, 최소한 남들 하는 대로만이라도 해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형편이죠. 그러나 아이들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서는, “다 옳은 얘기인 줄은 아는데, 우리 아이는…….” 이 아니라, “터놓고 얘기해 봅시다”라고 해야 합니다. 부모가 확신이 없으면 아이도 확신이 설 수 없습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극단적으로 교육부 전임 교역자가 필요할 수도 있지 않느냐는 생각도 해볼 수 있습니다. 그 정도의 특단의 각오가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박주양 집사: 교회, 가정, 학교가 ‘3위 각체’로 논다면, 가치관들이 서로 상충되어 아이들은 정신 분열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학교에 대한 선택권이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일단 현실적으로는, 아이들이 어떤 달란트가 있는 어떤 나무로 자랄 것인지 먼저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좋은 학교에만 맹목적으로 집착해서도 안 되고, “왜 좋은 학교가 필요한가?”에 대해 답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잘 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하여, 자긍심을 키워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살아가다 어려움들을 겪게 될 겁니다. 그럴 때 부모와 같이 갔던 수련회의 기억들이 힘이 되고, 문득문득 하나님을 체험하곤 했던 하나님과의 만남을 기억할 수 있도록 훈련이 되어야 합니다. 자녀들에게 부모들이 교회 내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려주는 것도, 롤 모델이 된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일입니다. 자녀 부모 간에도 사귐과 나눔이 있어야 합니다. 자녀들은 너무 어리지 않습니다.



2부. 설렘과 기대감으로 열매 맺기를 기다리며 - 박주양 집사

유학중인 둘째 아이(고등학생)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용을 들어보니, 무언가 물어볼 일이 있는데 작은아버지(내 동생)에게 물어볼지 큰아버지(형님)에게 물어볼지 고민이라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작은아버지에게 물어보는 것이 더 나아 보였는데, 아이 생각은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았다. 결국 내가 직접 동생(작은아버지)에게 물어봐서 아이에게 답변을 들려주었다. 그러면서 왜 작은아버지보다 큰아버지가 더 자기를 이해하고 자기편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어 보았다.

큰아버지는 자기를 이해해줄 뿐만 아니라 거기서 더 나아가 자기 생각보다 한발 앞서서 “이래서 이런 거지?” 라며 경험에서 우러나온 듯한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큰아버지는 사촌오빠들을 키워봐서 그런지 경험자의 말 같아서 믿음이 간다고 했다.

그럼 아빠는 어떤 쪽이냐고 묻자, 자기를 이해해주고 긍정적으로 받아 주는 것은 똑같은데, 아빠는 “어떻게 하면 좋겠니?” 하고 자신의 의견을 물어보는 것이 다르다는 대답을 들었다.

비단 부모와 자녀 관계뿐 아니라, 사람들 간에는 경험을 서로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고, 질문을 교환하면서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것도 중요하다. 좋은 질문은 서로 소통하고 이해하는 훌륭한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교회학교 고등부 교사를 하면서 처음 만나는 아이들에게 질문을 하면 대부분 단답형의 답을 하거나 어색한 침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한 학기가 끝나갈 무렵이면 서로 익숙해져서 그런지 나에게 먼저 질문을 하는 경우도 있다.

질문의 반대말은 지시라고 한다. 질문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머리를 사용하도록 하는 반면 지시는 머리는 사용하지 않고 손과 발만 사용하게 한다. 철학은 질문을 배우는 학문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또 유대인의 가정에서는 자녀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오늘 학교에서 무슨 질문을 했는지 물어본다고 한다.

우리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보자. “자녀들을 나무에 비유한다면 부모는 나무의 무엇에 해당할까?”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찌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예레미야 17:7,8) 라는 말씀처럼 부모는 자녀들이 잘 자랄 수 있는 토양이 되어야 한다.

성경에는 수많은 나무가 나온다. 무화과나무, 잣나무, 포도나무, 상수리나무, 떨기나무, 버드나무, 살구나무, 가시나무, 백향목, 감람나무, 종려나무, 뽕나무, 로뎀나무, 사과나무, 석류나무, 밤나무, 소나무, 싯딤나무 등 많은 종류의 나무가 있듯이 우리 자녀들도 각각 자신의 인격과 재능이 다양하다고 생각한다. 사과나무와 소나무가 서로 쓰임새도 다르고 열매도 다르듯이 우리 자녀들도 비록 형제이고 자매이지만 다를 수 있다. 내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하나님께서 어떤 달란트를 준 아이인지 부모가 매일 관심을 가지고 격려와 칭찬을 할 때 사과나무는 더욱 사과나무다워지고 소나무는 더욱 소나무답지 않을까?

또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때가 되면 이 땅에서 저 땅으로 옮겨 심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에 인용된 것처럼 수많은 나무들이, 즉 다양한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며 숲으로 또는 방주로 그늘을 제공하도록 옮겨 심어야 다양한 역할과 사명을 하게 된다.

나는 포도나무인데 너는 왜 뽕나무냐고 나무랄 필요는 없다. 이들이 어떤 모양으로 성장할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자녀들, 학생들을 대한다면,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을 보시고 심히 기뻐하신 것처럼, 우리도 그들을 보며 기쁜 마음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

처음 아이가 태어났을 때의 감격, 그리고 나를 보며 웃던 그 모습, 처음으로 걸음마를 떼고, 처음으로 엄마라고 불렀을 때의 그 기쁨과 감동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처음 하나님을 만났던 그 감격과 감동과 같다고 비유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 사춘기에 접어든 중고생들은 엄마가 절대적인 존재였던 시절인 유년기와 달리, 부모에 의존하기보다 자신의 의지대로, 자신의 생각대로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자라는 시절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끝까지 기대감을 가지고 바라보고 계시듯, 우리 부모들도 서로 다른 나무들로 자라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또 다른 감동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교회학교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을 설렘과 기대감으로 어떤 나무로 자라 어떤 열매를 맺을지 바라보는 기쁨을 가질 수 있기를 기도한다.




3부.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 - 정병오 대표


좋은교사운동
http://www.goodteacher.org
교육을 진리 위에 세워 다음 세대를 책임지고 국민에게 신뢰를 얻는 교직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3,000명의 기독교사들과 15개 기독교사 모임이 함께 전개하는 대표적 교육실천운동이다.

성경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분명한 원리를 제공하지만, 구체적으로 복잡한 현실 가운데서 이 원리를 적용하는 부분은 우리의 재량에 맡겨놓고 있다. 특별히 한국 상황에서 자녀를 어떻게 키워야 하느냐 하는 것을 분별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올바른 자녀교육을 고민하는 부모는 먼저 우리와 자녀들이 생활하고 있는 학교교육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복잡한 한국교육의 본질을 한 마디로 말하라면 ‘지나친 경쟁으로 인한 낭비와 비효율적인 체계’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과도한 불안과 경쟁으로 몰아넣고 거기서 나오는 불안으로 동기를 부여하고 에너지를 뽑아 유지되는 사회 체제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대부분 선진화된 서구 교육은 매 학년 아이들이 도달해야 될 절대적인 기준을 정해놓고 대부분의 아이들로 하여금 거기에 도달하게 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도 아이들이 도달해야 될 절대적인 기준은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 교육은 이 절대적 기준에 도달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든 아이들을 한 줄로 세우는 교육을 하고 있다. 부모와 교사는 아이들이 ‘몇 등’을 했느냐에 관심을 갖고, 아이들은 남들보다 좀 더 앞서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남들보다 더 떨어질까 봐 불안해하는 생활을 하는 것이다.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나쁠 것은 없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시험에서 하나라도 실수를 하면 안 되기 때문에 교과서 내용을 가지고 5번, 10번 외우는 낭비적인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배워야할 지식과 관련된 자료를 폭넓게 읽고, 그것에서 느낀 점이나 의문점을 발표하고 토론하고, 거기서 배운 것을 글로 정리하는 본질적인 교육은 우리 학교에서 자리 잡기가 너무 어려운 현실이다. 교육정책이 아무리 바뀌어도 남들보다 좀 더 앞서야 하고 100점을 받아야 하고 한 개라도 실수하면 안 되는 이 불안이 아이들을 점점 더 낭비적인 경쟁으로, 학부모들로 하여금 사교육비에 대한 낭비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최근 공적인 교육체계를 벗어나 홈스쿨이나 기독교 대안학교를 선택하는 학부모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교육을 얘기할 때 학교를 떠나면 큰 일 날 것 같은 두려움 속에 있었는데, 이러한 두려움을 상대화하고 교육의 주체가 부모라는 성경적 관점에 근거해서 믿음으로 자녀를 키워보겠다는 이러한 모험은 매우 소중한 시도들이다. 이 때 주의할 것은 단지 공적 교육체계를 벗어나는 것에서 그쳐서는 안 되고 우리 교육과 사회가 지향하는 지나친 경쟁과 남보다 더 앞서야 한다는 가치체계를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지 않을 경우 홈스쿨이나 기독교 대안학교에도 그 가치와 내용 면에서 여전히 죄악된 교육이 그대로 남아있게 되고 또 다른 모순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학부모들은 자녀를 공교육 체계에 보내게 된다. 문제는 알고 있지만, 대다수의 학부모들에게 학교에 보내는 것 이상의 대안을 생각할 수가 없고, 또 자녀를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으로 키워야 한다는 생각도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는 삼중의 싸움이 요청된다.

먼저, 다른 그 무엇보다 말씀과 기도의 경건 훈련과 하나님과 부모에게 순종하는 품성의 훈련을 절대적으로 중시하고 여기에 우선적인 시간 투자를 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실제로 아이를 학교에 보내기 시작하면 학과수업과 방과 후 사교육 때문에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고,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학교체제 속에서 신앙 교육은 약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공교육 체계가 요구하는 경쟁 위주의 남보다 앞서기 위한 가치, 사교육과 이웃집 엄마들이 조성하는 과도한 불안감으로부터 나와 자녀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다. 이 시대를 지배하는 거대한 악한 영의 세력인 과도한 불안감의 공포로부터 나와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나와 내 아이의 인생의 주인은 누구이며, 사람의 행복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가?’ ‘하나님은 내 아이에게 그에 맞는 뜻과 은사를 주셨고, 정한 때에 그것을 발현하게 하는 분인가?’ 그리고 그 해답을 하나님 앞에서 구하는 작업이 있어야 평정심 가운데서 아이를 교육할 수 있다.

셋째, 소위 선행교육을 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우리 자녀가 최소한 그 학년이 요구하는 교육과정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고 다음 학년으로 진학할 수 있도록 하는 것과 아이에게 주어진 은사와 재능을 발견하고 키워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지혜와 분별력, 많은 주의와 노력이 요구된다. 그냥 돈으로 사교육에 맡겨버림으로 해결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과 믿음이 요구된다.

덧붙일 말은, 앞에 제시한 두 길은 부모가 자녀 교육에 충분한 관심을 가지고 돌봐줄 수 있는 여유가 있는 가정의 경우라는 점이다. 현실적으로 우리 주변에는 생계의 문제로 자녀를 돌볼 여유가 없는 교인들이 많다. 교회는 그 교회 내에서 자녀교육을 책임지기 어려운 가정의 자녀교육을 책임져, 형편을 따라 공부방이나 지역아동센터 운영 등을 통해 교육에서 소외되는 아이들을 살필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 세대 사탄의 가장 강력한 무기 가운데 하나가 교육임을 직시해야 한다. 교회는 부모가 교육과 관련하여 분별력을 갖도록 훈련하는 일과, 부모가 감당치 못하는 아이들을 직접 감당하는 일로 적극 나서야 한다. 그러지 않을 경우 다음 세대 한국 교회를 보장할 수가 없다.
[인쇄하기] 2010-04-13 16: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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