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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혁 목사
  교회는 어떤 곳인가?(19) “열린 문을 둔 곳”
  

교회는 어떤 곳인가?(19) “열린 문을 둔 곳” 2007. 12. 16.
계3:7-13

지난 주일에는 부활 승천하신 주님께서 사데 교회에 보낸 ‘서글픈’ 내용의 편지에 대해서 설교를 했습니다. 그 편지의 내용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라는 것이었고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옥한흠 목사님은 지금 주님께서 한국교회에 편지를 써서 보내신다면 사데 교회에 써서 보낸 서글픈 내용의 편지를 써서 보내실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빌라델비아 교회에 보낸 ‘칭찬과 격려’의 편지에 대해서 설교를 하겠습니다. 그 편지의 내용은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라는 것이었고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니” 라는 것이었으며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 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죄송하지만 저는 며칠 전에 빌라델비아 교회에 보낸 편지를 읽으면서 그 편지는 바로 주님께서 저에게 보내신 편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왕자 병에 걸린 것을 여러분들이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부족한 것이 너무너무 많지만 주님의 말씀을 지키려고 애를 썼고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주님께서 한 평생 저의 앞에 열린 문을 두셨고 그리고 한 평생 저를 지키셨고 앞으로도 지키시리라고 믿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주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에 써서 보내신 그리고 저와 여러분들에게 써서 보내신 ‘칭찬과 격려’의 편지의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빌라델비아 교회는 주님으로부터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다”는 칭찬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순서로는 두 번째 하신 말씀이었지만 먼저 생각을 하겠습니다. 초대교회는 박해가 극심한 시대에 살고 있었습니다. 60년대 네로 황제에 의한 박해와 90년대 도미시안 황제에 의한 박해는 아주 극심한 박해였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로마 군인들에게 끌려가서 예수를 부인하고 로마 황제를 신이라고 고백하도록 강요를 당했습니다. 예수를 부인하지 않고 로마 황제를 신이라고 고백하지 않는 사람들은 무참하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는 네로 황제 때의 박해 상황을 다음과 같이 기술했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자들은 체포를 당하게 되었고 그들은 유죄 선고를 받았다. 그들은 갖가지 조롱을 받다가 죽임을 당했으니 동물의 가죽에 쌓여 개들에게 찢기기도 했고 십자가에 못 박히거나 또는 화형에 처해지기도 했다. 저녁이 되었을 때 이들은 밤을 밝히는 불빛이 되었다.”
저들은 죽임을 당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지켰고 예수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 안에는 신앙을 지키다가 순교를 당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고 순교적 신앙을 지니고 박해를 당하면서 살아가는 성도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주님께서 다 알고 계신다고 말씀했습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아마 빌라델비아 교회는 사데 교회처럼 유능하지도 못했고 유명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재력도 지력도 세력도 지니지 못했을 것입니다. ‘적은 능력’을 지니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작은 교회였을 것입니다. 사람들에게는 인정을 받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들은 주님의 말씀을 지켰고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도 배신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으로부터 칭찬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북한에서 살던 많은 성도들도 공산당의 박해에 굴하지 않고 신앙을 지켰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고 주님에 대한 신앙을 지키다가 순교를 당한 사람들도 많았고 북한을 떠나 남한으로 피난을 온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저는 부족하고 부족하지만 주님을 배반하지 않고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북한을 떠나 남한으로 오게 되었는데 그것이 얼마나 잘한 일인지 얼마나 축복된 일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박정희 정권 때는 주일 성수 문제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서 밤새 심문을 받기도 했습니다. 저는 한 평생 실수와 허물과 죄를 많이 범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는 않았습니다. 주일 성수와 회개와 예배와 봉사와 섬김 등에 대한 주님의 말씀을 지키려고 애를 쓰면서 한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주님께서 알아주신다고 말씀했습니다. 주님께서 저의 부족한 신앙을 알아주시고 인정해주신다는 말씀은 너무나 황송하고 감사한 말씀입니다. 송명희 시인과 이중표 목사님을 비롯한 여러 신앙의 선배 분들도 부족한 저의 신앙을 알아주고 인정해주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송명희 시인이 2004년 9월 9일 저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우린 애인 사이인데 별수없이 하나님의 음성을 전해 드립니다. 조용기 목사님을 찾아가 알렸더니 자기도 고민 많다는 말만 들었죠. 어느 목사님과 이 일을 의논해야 하는데 알고 보니 아무도 없더군요. 그래서 탄식하며 기도했는데 ‘김명혁 목사에게 전하라고 하라’(하나님 음성 그대로라서 님자 빠짐) 하시더군요. 하나님이 다 아시더군요. 날마다 그런 음성에 시달려 왜 나만 갖고 볶으시는지 말했더니 듣는 사람이 없다! 그러시더군요. 목사님이 어떤 말씀을 하셔도 저는 이해합니다. 부시가 곧 일을 저지른다고 하시거든요. 그게 한국과 관계된 일이라서 긴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 기막힌 내용도 많지만 여운을 남기며 예수님만 사랑하시는 그 모습으로 이 때를 향해 전해 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부족하고 부족한 것도 알아주시고 저의 부족한 믿음도 알아주신다는 말씀에 저는 그저 감사하고 감사한 것뿐이고 그저 황송하고 황송한 것뿐입니다.

둘째, 빌라델비아 교회는 주님으로부터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니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로다” 라는 약속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여기 ‘열린 문’은 ‘천국 문’을 가리키지만 ‘전도의 문’도 가리키고 ‘사역의 문’도 가리킨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죄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귀하고 가장 보배로운 문은 백악관의 문도 아니고 청와대의 문도 아니고 우리들의 집 문도 아닙니다. 우리들에게 있어서 가장 귀하고 가장 보배로운 문은 하늘 문이고 천국 문입니다. 그리고 전도와 사역의 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천국 문의 열쇠를 사도 베드로에게 주셨다고 했습니다. "내가 천국의 열쇠를 네게 주리니"(마16:19). 예수님께서는 돌에 맞아서 죽는 스데반에게도 천국으로 들어가는 열린 문을 두셨습니다.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행7:56). 주님께서는 서머나의 감독 폴리캅이 불에 타서 순교의 죽음을 죽을 때에도 그에게 천국으로 들어가는 열린 문을 두셨다고 생각합니다. 폴리캅은 불에 타기 바로 전에 하늘을 향해서 다음과 같이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주 하나님, 내가 당신께 찬양을 돌립니다. 당신은 오늘 이 시간에 나로 하여금 순교자들의 수에 참예하는 영광을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신앙을 지키며 순교하는 모든 순교자들에게 하늘로 올라가는 ‘열린 문’을 두신다고 생각합습니다.
여기 열린 문은 ‘천국 문’만 가리키지 않고 ‘전도의 문’과 ‘사역의 문’도 가리킨다고 생각합니다. 주님께서는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울에게 전도의 문과 사역의 문을 활짝 열어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교회들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면서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해서 전도의 문을 열어주시기 위해서 기도하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골4:3).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해서 믿음의 문과 전도의 문을 여신 것을 안디옥 교회에 보고했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이 안디옥에] 이르러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고하니라”(행14:27).
저는 부족하고 부족하지만 하나님께서 한 평생 저의 앞에 열린 문을 두셨습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달려왔는데 저의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서 저의 앞에 모든 종류의 열린 문을 두셨습니다. 마음껏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믿음의 열린 문을 두셨고,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학문의 열린 문을 두셨고, 마음껏 사역할 수 있는 사역의 열린 문을 두셨고, 마음껏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선교와 봉사의 열린 문을 두셨습니다. 한국교회를 섬기며 심부름할 수 있는 심부름의 열린 문도 두셨습니다. 저는 지난 주 월요일 아침 임시노회 장소를 향해서 달려가면서 이렇게 차 안에서 소리를 지른 일이 있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와 같이 소리를 지르면서 부르짖은 내용은 하나님께서 저의 앞에 열린 문을 두실 것을 깨달으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 앞에 열린 문을 두신다는 약속의 말씀보다 우리를 신나게 하고 기쁘게 하는 말씀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앞에 주님을 위해서 일할 열린 문을 두시다가 저의 삶이 마감되는 순간 천국으로 올라가는 천국의 문도 열어주실 것입니다. 그저 감사하고 감사한 것뿐이고 그저 황송하고 황송한 것뿐입니다.

셋째, 빌라델비아 교회는 주님으로부터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 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리라”는 긴 약속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얼마나 놀라운 축복의 말씀이었는지 모릅니다. 사도 바울의 예를 들어 봅니다. 사도 바울은 가는 곳마다 감옥에 갇히고 매를 맞는 고난과 박해의 길을 걸어갔지만 결국에는 그를 박해하던 사람들이 사도 바울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사랑하고 그와 함께 하시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간수가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부복하고”(행16:2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으니라”(행18:9,10). 사도 바울은 자기를 체포해서 호송해 가는 백부장과 군인들을 오히려 타이르고 지도하기도 했습니다. “바울이 백부장과 군사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행27:31). 사도 바울은 로마에 가서 죄수의 생활을 하면서도 오히려 자유함을 누리면서 로마 황제의 호위병들에게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저희가 일자를 정하고 그의 우거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예수의 일로 권하더라”(행28:23).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 시위대 안과 기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빌1:13). 주님께서는 복음을 전하며 달려가는 사도 바울 앞에 열린 문을 두셨고, 모든 사람들이 그 앞에 무릎을 꿇게 하셨고, 주님께서 사도 바울을 사랑하시는 줄을 알게 하셨고 그를 지키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제가 가는 곳에도 열린 문을 두셨고 사람들로 하여금 무릎을 꿇게도 하셨고 하나님께서 저를 사랑하시는 줄을 알게도 하셨고 저를 지켜도 주셨습니다. 충청북도 괴산군 옥현 마을의 청년 16명이 무릎을 꾼 일을 비롯해서 저를 적대하던 사람들까지도 협력의 무릎을 꾼 일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몇 년 전 블라디보스톡에서 KGB 정보요원 한 사람이 저의 강의를 3일 동안 경청한 후 저에게 무릎을 꾼 일을 이미 여러분들에게 이야기한 일이 있습니다. 저를 감시하러 왔던 KGB 정보요원이 저에게 오히려 감사를 표현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을 저와 함께 두 번 여행한 정정섭 장로님은 저와 같이 동행할 때마다 문들이 열리고 사람들이 협력의 손을 펴는 것을 보고 너무너무 좋아했습니다. 그와 같은 일들은 모슬렘 지역에서도 공산권 지역에서도 일어났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그와 같은 일들이 일어날 것을 상상할 때 얼마나 신이 나고 얼마나 힘이 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 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리라.” 하나님의 은혜에 그저 감사하고 감사할 것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 월요일 차를 운전하고 가면서 이렇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저를 지켜 주실 것을 생각할 때 그저 감사하고 황송한 것뿐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랑하는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계속해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권면과 축복을 말씀을 더하셨습니다.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고 말씀했습니다. 결국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에게 하늘의 면류관을 주실 것이라는 축복의 말씀이었습니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결국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로 하여금 하늘 성전에 기둥들이 되게 하시겠다는 놀라운 축복의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과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결국 믿음과 사랑을 끝까지 지키는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이름과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예수님의 새 이름을 그들의 머리와 이마와 몸에 기록해 주시겠다는 놀라운 축복의 말씀이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저는 오늘 아침 부활 승천하신 주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써서 보내신 편지를 읽으면서 그 편지가 마치 주님께서 저에게 써서 보내신 편지라고 생각하면서 설교를 했습니다. 착각은 자유이지만 크게 잘못된 착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도 저와 같은 착각을 지니고 행복하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앞으로도 주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써서 보내신 편지를 저에게 써서 보낸 편지라고 생각하고 받으면서 살아갈 것입니다. 주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를 칭찬하시고 격려하시고 부탁하시고 축복하시고 약속하신 말씀들을 저에게 하신 말씀으로 받으면서 살아갈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저와 같은 느낌과 생각을 지니고 행복하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와 저와 여러분들에게 말씀하신 부탁과 약속의 말씀들을 다시 읽으면서 설교를 마칩니다.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내가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라.”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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