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 수요강해 | 칼럼


  김명혁 목사
  교회는 어떤 곳인가?(22) “주님께서 세운 교회”
  

교회는 어떤 곳인가?(22) “주님께서 세운 교회” 2008. 1. 6.
마16:13-19

“주님께서 세운 교회” 너무 은혜롭고 아름다운 찬양이었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강남교회 입당예배에 참석한 일이 있었는데 그 때 성가대가 부른 “주님께서 세운 교회” 라는 찬양을 들으면서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우리 강변교회의 성가대가 “주님께서 세운 교회” 라는 찬양을 부르게 되었습니다. 오늘 아침 설교도 “주님께서 세운 교회” 라는 제목으로 하려고 합니다. “주님께서 세운 교회” 라는 찬양의 가사를 중심으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우리 강변교회가 은혜가 충만하고 말씀이 충만하고 사랑이 충만하고 성령이 충만하고 그리고 날로, 날로 부흥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주님께서 세운 교회”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겠습니다.

우선, 서론적인 말씀을 드립니다. 교회는 주님께서 세우시는 집입니다.
사람들이 세우는 교회는 회사요 기업이지 참된 교회는 아닙니다. 하나님이 세우시고 예수님이 세우시고 성령님이 세우시는 교회가 참된 교회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향해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마16:18). 참된 교회는 사람들이 세우는 것 같지만 사실은 주님께서 세우십니다. 참된 교회는 사람들이 다스리는 것 같지만 사실은 주님께서 다스리십니다. 참된 교회의 주인은 목사와 장로들 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주님 자신이십니다. 주님께서 피를 흘리셔서 교회를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께서 바람과 불과 같이 역사하셔서 교회를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눈과 귀와 마음이 항상 교회를 향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칫 잘못하면 우리가 교회를 세운다고 생각하기가 쉽고, 우리가 교회를 다스린다고 생각하기가 쉽고, 우리가 교회의 주인이라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교회를 마치 회사나 기업처럼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교역자들을 회사의 직원들처럼 생각하기도 쉽습니다.
제가 30여 년 전에 8개월 동안 목회하던 영안 교회를 세운 장로님과 권사님 가정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교회를 좌지우지하려고 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목회자를 열 명이나 갈아치웠습니다. 나중에는 그들이 교회에서 쫓겨났고 교회당은 어느 회사에 팔려서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불행한 일이었습니다. 교회는 주님께서 세우시는 집입니다. 교회의 주인은 주님 자신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목사와 장로와 성도들은 항상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께 기도하고 주님의 뜻을 분별하고 순종하면서 교회를 겸손하게 섬겨야 합니다. 주님께서 세우시는 교회의 특징 다섯 가지를 간단 간단하게 말씀 드리겠습니다.

첫째, 교회는 은혜가 충만한 집입니다.
참된 교회는 은혜가 충만합니다. 참된 신자는 은혜가 충만합니다. 예루살렘 교회와 안디옥 교회는 은혜가 충만했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은혜가 충만했습니다.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행4:32).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저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권하니”(행11:22,23).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행7:8). 사도 바울은 소 아시아와 마게도냐에 있는 교회들에게 편지를 쓸 때마다 은혜가 충만하기를 기원했습니다. “로마에 있어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롬1:7).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찌어다”(롬16:20).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고전1: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고후1:2).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찌어다”(고후13:13).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갈1:3).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찌어다 아멘”(갈6:18). 은혜가 없는 교회는 불행한 교회이고 은혜가 없는 신자는 불행한 신자입니다. 주님께서 세우시는 교회는 은혜가 충만합니다.
은혜란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 죄인들에게 거저 주시는 좋은 선물이란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죄인들에게 값없이 주시는 죄 사함의 선물, 구원의 선물, 기쁨의 선물, 평안의 선물, 기도의 선물, 말씀의 선물, 사랑의 선물, 교제의 선물, 봉사의 선물, 희생의 선물 등을 의미합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가 충만한 곳입니다. 부귀영화장수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이긴 하지만 은혜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교회는 부귀영화장수가 충만한 곳은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한 곳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참된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모든 성도들이 은혜를 사모하여야 하고 그래서 은혜가 충만해야 합니다. 저는 고등학생과 대학생과 신학생 시절 혹시라도 은혜에서 떠나면 어떻게 할까 늘 조심하고 늘 최선을 다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학교에서 돌아오면서 먼저 교회에 들러 기도하고 집으로 가는 때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은혜에서 떠나면 어떻게 할까 늘 조심하고 늘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은혜에서 떨어지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시험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12:15,16은 이렇게 경고했습니다.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쓴 뿌리가 나서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에서와 같이 명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히12:15,16). 주님께서 세우시는 교회는 은혜가 충만합니다. 우리 강변교회가 은혜가 충만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강변교회 신자들이 모두 은혜가 충만한 신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교회는 말씀이 충만한 집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의 기둥과 터로 만들어진 말씀의 집이라고 사도 바울이 지적했습니다.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딤전3:15). 예루살렘 교회의 특징도 기도와 함께 말씀이 충만한 것이었습니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행2:42) “무리가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행4:31).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행6:4).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치 못하여”(행6:10). 참된 교회는 기도와 함께 말씀이 충만한 곳입니다. 평양 장대현 교회도 기도와 함께 말씀이 충만한 곳이었습니다. 며칠 전 길자연 목사님은 어느 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오늘날 한국교회가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는 길은 말씀과 기도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바로 지적했습니다. “신뢰회복을 위해서는 교회가 말씀과 기도로 돌아가고 말씀이 명령하는 바대로 성경이 하라는 대로 행하는 길밖에 없다. 교회가 말씀을 따라 구석진 곳을 찾아 가서 사회봉사에 힘을 써야 할 것이다. 요즘 젊은 목회자들이 교회 부흥에만 매달리고 부흥에 대한 방법만 찾는데 교회 부흥은 방법에 있지 않다. 기도와 말씀에 충실하면 교회는 자연히 부흥하게 돼 있다.” 올바른 지적입니다. 주님께서 세우시는 교회는 기도와 함께 말씀이 충만한 곳입니다. 우리 강변교회가 기도와 함께 말씀이 충만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려면 매일 새벽 교회에 나와서 말씀을 들으면서 기도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수요일 저녁마다 교회에 나와서 말씀을 들으며 기도하여야 할 것입니다. 주중에 교회에 나와서 성경 공부를 하면서 교제와 봉사와 전도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우리 강변교회가 기도와 함께 말씀이 충만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 교회는 사랑이 충만한 집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고 사도들의 사랑을 입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고 그래서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믿음과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와 성들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저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이고 저들은 사도 바울의 사랑을 입은 자들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저들은 서로 사랑하되 원수까지 사랑하면서 살아 가라고 권면했습니다.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롬1:7).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 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하므로 네가 숫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롬12:19,20). 사도 바울은 마지막에는 저들을 사랑한 나머지 로마에 가서 로마 교회를 위해서 순교의 피를 흘렸습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사도 바울의 사랑을 입은 로마 교회 성도들은 사도 바울의 분부를 따라서 원수까지도 사랑하면서 로마 제국을 복음화시킨 믿음과 사랑의 공동체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또한 교회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서 교회는 하나님께서 자기 피로 사서 만드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행20:28). 교회는 하나님이 자기의 피를 쏟아 부으시기까지 사랑한 하나님의 극진한 사랑을 입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고 그 사랑을 나타내며 사는 곳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피차 뜨겁게 사랑한 사랑의 공동체였습니다. 서로 모이기를 좋아했고, 서로 음식을 나누어 먹기를 좋아했고, 서로 돕고 구제하면서 살기를 좋아했습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2:44-47).
그러므로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고 서로 보고 싶어하는 마땅하고 당연한 일입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사도 바울을 보고 싶어했고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모하면서 보고 싶어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인 수연이가 저에게 자주 편지를 써서 보내는데 최근에 저에게 써서 보낸 편지를 여러분들에게 다시 소개합니다. “목사님 안녕하세요. 저 수연이에요. 목사님 저의들 늘 예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목사님 사랑해요. 말씀도 주신 것 감사해요. 매리 크리스마스 한수연 올림” “목사님 안녕하세요. 저 수연이에요. 제가 이 편지를 쓴 거는 목사님 생각이 나서 썼어요. 저는 목사님 생각하면 산 또는 세모난 눈썹이 생각나요. 하지만 멋있어요. 저의를 많이 사랑해주셔서 감사해요. 딱 1년만 더 해주세요. 목사님 사랑해요. 수연 올림.” 교회는 사랑을 주고 받는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며칠 전에 새 가족반 신자가 저에게 이런 글을 보냈습니다. “목사님! 저 000입니다. 목사님이 안 계신다고 생각 하니 멍~ 하니 섭섭했는데... 이멜 주소를 발견한 순간 저의 마음이 밝아졌어요. 항상 제 곁에 계시는 것 같아 마음이 든든하고 평화로워 졌어요. 짧은 시간이지만 목사님의 사랑과 배려와 열정! 너무나 감사 드립니다. 몸은 불편하지만 마음의 여유는 조금씩 찾아 가는 것 같아요. 목사님의 덕분입니다. 가끔 이멜 해도 되나요? 보고 싶어요. 새 가족반에서 질문들을 하시면 여유 있게 의미 있게 미소를 지으면서 설명해주시는 인자하시고 따뜻한 아버지 같으세요. 따뜻하게 감기 조심하세요. 000드림” 교회는 사랑이 충만한 곳이고 보고 싶음이 충만한 곳입니다. 우리 강변교회가 주님 사랑과 성도 사랑이 충만한 사랑의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넷째, 교회는 성령이 충만한 집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성령의 강림으로 시작한 교회였고 성령의 충만으로 이어진 교회였습니다. “오순절 날이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2:1-4).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가로되”(행4:7).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행4:31).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보고 말하되”(행7:55,56).
성령충만이 반드시 방언이나 은사 체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충만이 반드시 감정적 흥분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화려한 예배를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성령충만은 성령의 감화와 감동을 받아서 느끼고, 성령의 감화와 감동을 받아서 생각하고, 성령의 감화와 감동을 받아서 말하고, 성령의 감화와 감동을 받아서 글을 쓰고, 성령의 감화와 감동을 받아서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의 감화와 감동을 받아서 죄를 회개하고, 성령의 감화와 감동을 받아서 말씀을 깨닫고, 성령의 감화와 감동을 받아서 기도하고, 성령의 감화와 감동을 받아서 찬양하고, 성령의 감화와 감동을 받아서 봉사하고, 성령의 감화와 감동을 받아서 전도하고, 성령의 감화와 감동을 받아서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성령충만은 거의 다 가슴과 입으로 말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즉 가슴과 입에서 회개가 터져 나왔고, 가슴과 입에서 기도가 터져 나왔고, 가슴과 입에서 찬양이 터져 나왔고, 가슴과 입에서 전도가 터져 나왔습니다. 성령충만 했던 평양의 장대현 교회에는 방언이 터져 나온 것이 아니고 회개가 터져 나왔고, 기도가 터져 나왔고, 찬양이 터져 나왔고, 전도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회개와 기도와 찬양과 전도의 중심은 예수님이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행2:38). 스데반이 성령 충만해서 주목한 곳은 하나님 우편에 서신 예수님이었고 그가 가슴과 입을 열러 말 한 것도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본다는 말이었습니다.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세 서신 것을 보노라”(행7:55,56). 성도의 행복은 성령 충만입니다. 참된 교회의 표지는 성령 충만입니다. 우리 강변교회가 성령 충만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강변교회 성도들이 모두 성령 충만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은 사모하고 구하는 자에게 주신다고 말씀했습니다.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10:13). 강변교회 성도들은 모두 성령을 사모하고 구하므로 성령 충만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섯째, 교회는 날로, 날로 부흥하는 곳입니다.
초대 교회는 날로, 날로 부흥하는 교회였습니다.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 하게 하시니라”(행2:4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이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행6:7).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행9:31).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행11:24). 부흥이란 말은 본래 숫적인 증가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숫적인 증가도 포함했습니다. 부흥이란 말은 본래 영적으로 죽었던 사람이 살아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부흥의 한 모델이 에스겔 37장에 기록되어 있는데 에스겔 37장에 나타난 부흥은 마른 뼈들이 살아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과 나타난 부흥도 사실은 영적으로 죽었던 사람들이 살아난 것을 의미했습니다. 부흥이란 사람들이 살아나는 것을 말합니다.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죽었던 사람들이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살아나는 것을 말합니다. 구원 받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을 의미했고 제자 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초대교회에는 이와 같은 영적이고 도덕적인 부흥이 계속해서 일어났습니다. 숫적인 증가도 따랐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멋지고 화려한 교회당을 건축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습니다. 반드시 멋지고 튼튼한 제도와 조직을 만드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습니다. 죽었던 사람들이 많이 살아나는 것을 의미했고 구원 받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을 의미했고 제자 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교회 안에는 이와 같은 부흥이 정지된 상태입니다. 양적인 부흥도 정지되었고 질적인 부흥도 정지된 상태입니다. 한국 교회는 지난 한해 동안 부흥 100주년을 맞아 새로운 부흥을 사모하면서 여러 가지 노력을 다 했습니다. 부흥 100주년 기념행사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성과가 별로 없었습니다. 행사에 그치고 만 느낌입니다. 우리 강변교회도 괄목할만한 부흥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지난 수년 동안 강변교회를 통해서 특히 새 가족반을 통해서 주님을 모르던 사람들이 주님을 알게 되었고, 예수님을 믿지 않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평안과 기쁨이 없던 사람들이 평안과 기쁨을 얻게 되었고, 사랑이 없던 사람들이 사랑을 지닐 수 있게 되었고, 봉사를 모르던 사람들이 봉사를 하게 된 것은 된 것은 너무너무 감사한 일입니다. 사실 이것이 부흥입니다.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죽었던 사람들이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살아나는 것이 부흥입니다. 새해에 강변교회 안에 이와 같은 부흥이 계속해서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새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날로, 날로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삶이 변하고 인격이 변하고 가치관이 변하는 부흥이 계속해서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전도가 필요합니다. 사랑이 필요합니다. 강변교회가 은혜가 충만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강변교회가 말씀이 충만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강변교회가 사랑이 충만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강변교회가 성령이 충만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강변교회가 날로, 날로 부흥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인쇄하기] 2008-01-06 09:42:36


   


관리자로그인~~ 전체 609개 - 현재 9/41 쪽
번호
제목
이름
파일
날짜
조회
489 허태성 목사 2008-02-16 1886
488 허태성 목사 2008-02-09 2080
487 허태성 목사 2008-02-04 1783
486 허태성 목사 2008-02-02 1851
485 허태성 목사 2008-01-23 2105
484 강변교회 2008-01-15 1921
483 김명혁 목사 2008-01-13 1879
김명혁 목사 2008-01-06 1964
481 김명혁 목사 2007-12-31 2217
480 김명혁 목사 2007-12-30 1690
479 김명혁 목사 2007-12-23 1676
478 김명혁 목사 2007-12-16 1707
477 김명혁 목사 2007-12-09 1601
476 김명혁 목사 2007-12-02 1714
475 방지일 목사 2007-11-28 1526
[6] [7] [8] 9 [10] [11]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