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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혁 목사
  “나를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
  

“나를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 2008.1.13
시23:1-6

제가 2005년 8월 21일 주일부터 “네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라는 제목으로 여덟 번 설교를 한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설교를 모아서 “내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라는 제목으로 설교집을 출판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나를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가리켜 자기를 인도하신 목자라고 고백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그가 나를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저의 한 평생을 돌이켜 볼 때 저도 목자 되시는 하나님께서 저의 한 걸음 한 걸음을 걷게 하시고 인도하신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사망의 음침한 골자기로 다닐찌라도 주님께서 저와 함께 하신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서 제게 상을 베푸신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저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저를 따른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앞으로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할 것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지 않을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 저는 목자 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대로 따르는 착하고 순한 양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제 멋대로 한 평생을 살아온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밖에 없습니다. 정욕의 길로 걸어간 때가 많았고, 불순종의 길로 걸어간 때가 많았고, 위선의 길로 걸어간 때가 많았고, 교만의 길로 걸어간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은퇴 예배의 인사를 다음과 같이 만들었습니다. “부족하고 허물 많은 죄인을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푸셔서 한 평생 목회와 선교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인해 무한한 감사를 드리며, 부족하고 허물 많은 죄인이 목회를 할 수 있도록 사랑과 기도로 받아주시고 도와주신 강변교회 성도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나를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저를 믿음의 길로 걷게 하시고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릴 때부터 저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셨고 믿음의 길로 걷게 하셨습니다. 믿음을 지키는 것을 학교에 다니는 것보다 더 귀하게 여길 수 있는 마음도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평양에 있을 때 주일날 학교에 가지 않고 교회에 간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벌을 받기도 했고 정학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믿음을 지키는 것을 가정과 고향에 머무는 것보다 더 귀하게 여길 수 있는 마음도 저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11살 때 38선을 혼자 넘어서 남한으로 왔습니다. 12년 동안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후 총신에서 교수할 때 박정희 군사정부는 주일 성수를 방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정부 시책을 비판하다가 남산에 끌려가서 밤새 심문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조금도 굴하지 않고 주일 성수의 신앙을 끝까지 지키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부족하지만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물려준 순수한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안간 힘을 쓰고 있습니다. 부족한 저를 믿음의 길로 걷게 하시고 믿음의 길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저를 슬픔과 아픔의 길로 걷게 하시고 인도하셨습니다.
저는 일찍이 어머니와 아버지를 이별하는 슬픔과 아픔을 지니고 살게 되었고 후에는 사랑하는 어린 아들을 먼저 천국으로 보내는 슬픔과 아픔을 지니고 살게 되었는데 그것이 저로 하여금 가슴에 눈물을 지니고 살게 하는 은혜의 방편이 되었습니다. 슬픔과 아픔은 무감각한 저로 하여금 주님의 슬픔과 아픔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게 만들었고 많은 사람들의 슬픔과 아픔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게 만들었습니다. 어거스틴은 어머니와 아들과 친구를 잃는 삼중적인 슬픔과 아픔을 당했는데 그 삼중적인 슬픔과 아픔이 어거스틴으로 하여금 주님에게로 가까이 다가가게 만들었고 많은 사람들에게로 가까이 다가가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지금 한 평생을 돌이켜 볼 때 하나님께서 저로 하여금 슬픔과 아픔의 길로 걷게 하시고 그 길로 인도하신 것을 인해 무한한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슬픔과 아픔은 강퍅한 저의 마음을 조금은 부드럽게 만드는 역할을 했고 무정한 저로 하여금 눈물을 지니고 살게 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부족한 저를 슬픔과 아픔의 길로 걷게 하시고 슬픔과 아픔의 길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저를 목회와 선교의 길로 걷게 하시고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로 하여금 어릴 때부터 목회의 길을 사모하게 하셨고 그 길로 걸어가게 하셨습니다. 성혜진 어린이가 어릴 때부터 목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것처럼 저는 어릴 때부터 목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제가 11살 때 북한을 떠나 남한으로 온 가장 중요한 이유는 신앙을 지키고 공부를 열심히 해서 목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서울대학교 문리대 사학과에 들어가서 공부하게 된 이유도 좋은 한경직 목사님의 조언을 따라 목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미국에 가서 12년 동안 공부한 목적도 훌륭한 목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교수가 되는 것은 둘째였고 목사가 되는 것이 첫째였습니다. 저는 귀국하자 마자 먼저 목사의 길을 걸었고 그 다음으로 교수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귀국하기 1년 전부터 선교의 길을 걷기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선교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로 하여금 목회와 선교의 길로 걷게 하신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저는 은퇴 후에도 작은 교회의 목회자들을 돌아보는 일과 어려운 형편에 처해 있는 선교사들을 돌아보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얼마나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넷째로 하나님께서 저를 건강과 풍부의 길로 걷게 하시고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평생 저로 하여금 건강과 풍부의 길로 걷게 하시고 그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저는 한 평생을 살아오는 동안 건강 때문에 걱정한 일은 없었고 돈 때문에 걱정한 일도 없었습니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마쳤을 때 폐 결핵이라는 진단을 받고 잠시 병원에 입원한 일이 있었지만 오히려 그 일로 잠시 쉴 수가 있었고 이중 보험을 들었기 때문에 그 때 병원비를 이중으로 받아서 돈을 좀 번 일도 있었습니다. 저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날 때 단 돈 100불을 가지고 배를 타고 미국으로 가서 12년 동안 공부하는 동안 한국으로부터 한 푼의 도움도 받지 않았지만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한국의 개척교회를 도우면서 공부했고 때로는 신학교에 장학금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물론 결혼 후에는 아내가 일을 해서 경제적으로 조금 도움을 받았지만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했습니다. 귀국 후 지난 34년 동안 저는 경제적으로 부족을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면서 살 수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항상 누군가의 손을 통해 넘치게 채워주시므로 여유 있게 다른 사람들을 도우면서 살고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다섯째로 하나님께서 저를 화해와 사랑의 길로 걷게 하시고 인도하셨습니다.
저는 본래 이기적인 사람이었고 보수적인 사람이었고 비판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반일주의자였고 반공주의자였습니다. 반모슬렘주의자였습니다. 강원용 목사님도 비판하고 조용기 목사님도 비판했습니다. 그런데 조금씩, 조금씩 바꾸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교회와의 화해와 협력을 주도하게 되었고 북한 동포 돕는 일에도 앞장을 서게 되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을 동족으로 인정하고 받아드리게 되었습니다.
북아프리카 부르키나 파소에 가서 가뭄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10여 개 이상의 우물을 파주었고, 방글라데시에 가서 안과 진료소를 세워주었고, 아프간에 가서 학교를 세워주었고, 연변 조선족 어린이들에게 사랑과 격려의 손길을 펴기도 했습니다. 제가 비판하던 강원용 목사님과 조용기 목사님을 존경하게도 되었습니다. 양극화된 한국교회 안에 화해와 연합을 이루는 일에 심부름을 하게도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부족하고 부족하지만 정치 종교적인 입장이 다른 사람들이라도, 나에게 해를 끼치려는 사람들이라도 주님의 사랑으로 품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고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하고픈 마음이 간절합니다. 이것은 본래적인 저의 마음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결국 저로 하여금 화해와 사랑의 길로 걷게 하시고 그 길로 인도하시는 것을 생각할 때 얼마나 감사하고 얼마나 황송한지 모르겠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선한 목자 되시는 하나님께서 저의 한 평생을 걷게 하시고 인도하신 것을 생각할 때 무한한 감사와 영광을 돌리지 않을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선한 목자 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대로 따르는 착하고 순한 양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제 멋대로 한 평생을 살아온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밖에 없습니다. 정욕의 길로 걸어간 때가 많았고, 불순종의 길로 걸어간 때가 많았고, 위선의 길로 걸어간 때가 많았고, 교만의 길로 걸어간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저를 가장 좋은 길로 가장 선한 일로 인도하셨습니다. 좋은 스승들과 동역자들을 붙여주셨습니다. 좋은 성도들을 붙여주셨습니다. 좋은 협력자들을 붙여주셨습니다. 부족한 저에게 감사와 사랑을 표하는 사람들도 많이 붙여주셨습니다. 어제도 강변교회 성도 한 사람이 저에게 감사의 사랑의 글을 길게 써서 보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사실 저는 감사와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위선된 사람입니다. 그 긴 편지의 마지막 부분을 여기 그대로 옮깁니다. 사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사랑을 주고 받으면서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사랑하는 김명혁 목사님! 목사님이 은퇴를 하셔서 지금보단 자주 못 볼지라도 목사님은 여전히 우리 네 식구의 영원한 목사님이십니다. ‘목사님, 목사님, 사랑하는 우리 목사님’이십니다.^^ 늘 강건하셔서 더욱 더 아름다운 노후를 보여주시리라 믿습니다. 목사님도 사모님도 늘 온화하게 웃으시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저희 네 식구도 목사님처럼 축복의 통로가 되게 금 이미 우리 안에 주신 하나님의 지혜 능력 사랑 충만함을 잘 활용하며 우리 분량의 훈련을 잘 감당하겠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을 통해 이미 넘치게 받은 하나님의 사랑을 잘 나누며 나눔의 기쁨과 적은 소유에서 오는 자유함을 잘 누리는 사람들이 되겠습니다. 사랑하는 김명혁 목사님!! 목사님도 사모님도 오래 오래 강건하셔서 우리 네 식구가 하나님의 온전한 사람으로 성장 변화 성숙하는 모습을 사랑의 눈길로 지켜봐 주시길 부탁드려요.^^ 사랑합니다. 마음 깊이 감사의 눈물이 흐릅니다. 아무도 손 잡아주는 이 없는 서러움의 눈물이 아니라 넘치게 받은 사랑에 감사해서 흐르는 눈물이기에 이 시간 저는 진정 행복자입니다. 목사님, 오래 사셔서, 장차 우리 네 사람의 사랑표현을 만끽하세요.^^ 저도 목사님을 통해 넘치게 받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제가 일하는 학교의 친구들에게 섬김의 자세로 잘 전하고 안 믿는 동료들을 잘 섬기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제대로 전하겠습니다. 사랑 받기 위해서, 그 사랑 전하기 위해서 주께서 저를 택하시고 지금 삶의 현장에 저를 심으신걸 잘 알기에 겸허히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우리 네 식구가 광야에서 떨며 지낼 때 늘 품어주신 목사님, 감사드립니다. 목사님께 그 마음 주신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우리 네 식구도 또 하나의 우수한 열매가 될 것입니다. 또 하나의 열매를 바라시는 하나님 말씀에 귀 기울이며,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축복의 통로가 되겠습니다.^^ 우리 가족을 통하여서 많은 이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게 금 지금 제 삶의 현장에서 축복의 통로 역할을 잘 하겠습니다.^^ 오늘은 이만 줄입니다. 다음에 또 편지드릴께요. 사랑합니다. ♬~~ 2008년 1월 12일 토요일 새벽에 사랑에 빚진 ㄱ ㅅ ㅎ 드립니다.♥” 너무너무 착하고 아름다운 마음의 글입니다.
제가 작년 1월 3일 차를 타고 교회로 오면서 차 안에서 쓴 사랑에 관한 글을 다시 여러분들에게 읽어드리므로 설교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사랑하고 싶어라. 나는 요사이 주님을 생각하면 가슴에 눈물이 흐른다. 한 평생 나를 향하신 주님의 생각과 사랑이 어찌 그리 크고 어찌 그리 많은지! 실로 모래알보다 더 많은 주님의 긍휼과 용서와 사랑이 나의 가슴에 눈물을 자아낸다. 사랑하고 싶어라. 주님을 사랑하고 싶어라. 나의 맘 나의 몸 나의 정성 다 쏟아 주님을 사랑하고 싶어라. 나는 요사이 사람들을 생각하면 가슴에 눈물이 흐른다. 어린이들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너무너무 귀엽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성도들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너무너무 예쁘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이 세상 곳곳에 흩어져 사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만날 때도 비슷한 느낌을 가진다. 저들의 얼굴과 마음과 영혼 속에 창조주 하나님께서 심어놓으신 고귀한 인성과 신성의 흔적을 보기 때문이다. 저들을 모두 사랑하고 싶어라. 모슬렘도 공산주의자도 상관이 없다. 저들은 모슬렘이나 공산주의 라는 불행한 유산에 쌓여있는 가련한 영혼들일 따름이다. 사랑하고 싶어라. 사람들을 사랑하고 싶어라. 나의 맘 나의 몸 나의 정성 다 쏟아 사람들을 사랑하고 싶어라.” 함께 기도 드리겠습니다.
[인쇄하기] 2008-01-13 10: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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