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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태성 목사 [ E-mail ]
  더 좋은 예배(사6:1-8)
  

2008. 1. 27(주일) 허태성 목사

더 좋은 예배 (사 6:1-8)

만일 누군가가 교회가 무엇을 하는 곳이냐는 질문에 꼭 한 가지만 답을 한다면 무어라고 답을 할 수 있을까?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조차도 '교회는 예배드리는 곳'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교회에 간다'라는 말은 '예배드리러 간다'는 말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교회의 사명이 여러 가지 있지만 가장 으뜸 되는 것이 '살아계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신 목적이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함이라(사43:21)'는 말씀처럼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당신에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요4:23-24). 오늘 나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린 한 사람을 소개하며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그 사람은 주전 7세기경에 남왕국 유다에서 활동했던 이사야 선지자이다. 그가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성전에 올라가 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그 내용이 오늘의 본문이다. 이사야가 예배를 드리며 체험한 상황은 마치 바울 사도의 삼층천 체험처럼 신비롭고 놀라운 것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그것을 똑 같은 방법으로 체험할 수는 없지만 그가 예배를 드리며 발견한 3가지 축복은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반드시 체험되어야 할 것들이다.
이것들을 '3M'으로 요약하여 설명해 보고자 한다.

첫째, 이사야는 모든 것의 주인(Master)되시는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는 축복을 받았다. 이사야는 이미 전부터 하나님을 섬기고 있으면서 예배를 드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예배를 드리면서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전과 달리 새롭게 뵈옵는 체험을 하게 된 것이다. 그가 성전에서 본 것은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아 계셨으며 그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한 것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스랍들이 모셔 선 가운데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3절)." 신 자가 보좌에 앉으신 주님을 뵙게 될 때 그는 온 세상을 주관하시는 통치자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세상이 혼돈스럽고 무질서한 것처럼 느껴져서 마음이 답답하고 괴롭다가도 예배를 드리면 마음이 평안해 지는 것은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다스리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시73편에 보면 아삽이라는 사람이 세상의 불의를 보고 거의 시험에 들었다가 성소에 들어가 하나님을 만나면서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을 볼 수 있다.

둘째, 이사야는 자신(Myself)의 내면을 새롭게 발견하는 축복을 받았다.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이사야는 거룩한 빛 앞에 노출되면서 자신이 얼마나 부정하고 부족한 사람인가를 발견하게 되었다. 특히 남에게 '화 있을진저!(3:18,20,21,22,23)'라고 죄를 책망하던 자신의 입술이 부정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신자가 거룩하신 하나님께 온전히 예배를 드리다 보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보게 된다. 그 거룩하심을 보게 되면 필연적으로 자신을 보게 된다. 그런데 더욱 감사한 것은 자신의 죄를 발견하고 통회하는 자에게 사죄의 은총을 내려주신 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시켜 제단의 숯불을 가지고 가서 이사야의 입술을 정결케 하시며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7절)"고 선언하셨다. 따라서 계속하여 예배를 드릴수록 인간은 자신의 죄와 누추함과 부족함을 발견하면서 더욱 겸손하게 되는 것이다. 청교도 존 플라벨은 말하기를 "곡식이 익으면 머리를 숙인다.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도 천국에 들어 갈 정도로 성숙하면 더 겸손해지고 더욱 더 자기를 부인하게 된다."고 했다.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바울은 주후 54년에는 자신을 가리켜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고전15:19)'라고 고백하더니 주후 61년에는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엡3:8)',라고 자신을 표현했고, 주후 64년에는 자신을 '죄인 중의 괴수(딤전1:15)'라고 까지 표현할 정도로 계속하여 겸손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도 예배를 드리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자신의 부족함을 계속 발견해가면서 더욱 겸손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셋째, 이사야는 자신의 사명(Mission)을 새롭게 발견하는 축복을 받았다. 그는 예배 중에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8절)" 그는 일할 사람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어떤 의미에서 발이 없으시다. 그래서 대신 갈 사람을 필요로 하신다. 하나님은 입이 없으시다. 그래서 대신 말씀을 전해 줄 사람을 찾고 계신다. 예배는 우리들의 필요와 소원만을 아뢰는 시간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부르심,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시간이다. 그것이 참된 예배이다. 그것이 신령과 진정의 예배이다. 이런 예배가 더 좋은 예배이다. 뿐만 아니라 이사야는 그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자원하는 심정으로 헌신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사야는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발견함과 동시에 그 사명을 위하여 자신을 스스로 드리는 결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부족하기에 하나님의 일에 스스로가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을 하여 어떤 일이 주어질 때 안하려고 한다. 못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반응해야 한다. '하나님 나 같이 부족한 자라도 쓰시겠습니까? 그러시다면 나를 드리겠습니다. 나를 보내시옵소서.'

어떻게 이사야와 같은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릴 때 가능한 것이다. 신령이란 말은 '성령을 통하여'란 말이다. 성령의 역사와 도우심을 통해서만 이런 예배가 가능한 것이다. 전정이란 말은 '진리의 말씀 안에서'란 뜻이다. 우리의 예배가 단순히 종교적 의식이나 인간적 생각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말씀이 선포되는 가운데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을 따라서 예배할 때 말씀 가운데 당신을 계시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며 자신을 다시 보게 되며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고 자신의 사명을 발견하고 자원하여 자신을 드리는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단지 예배를 '보러' 오는 자가 아니라 예배를 드리러 오는 강변의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이사야의 이번 예배체험은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이루어졌다. 선한 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나라를 다스리던 웃시야 왕이 죽자 나라는 약해져가고 사회는 혼란스러워졌다. 이사야의 마음이 몹시 답답한 가운데 성전에 들어왔다가 이런 놀라운 예배를 드리게 된 것이다. 강변교회를 28년간 목회하시던 김명혁 목사님이 지난 13일에 은퇴를 하셨다.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김명혁 목사님의 은퇴는 우리들의 마음을 허전하게 만들고 있다. 그런데 바로 이 때가 이 교회의 주인이시며 우리들의 왕이 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며 더 좋은 예배를 드릴 때임을 기억하고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예배함으로 이사야가 체험한 3M을 발견하는 축복을 누리는 강변의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인쇄하기] 2008-02-02 18:5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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