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난절에 되새기는 교회의 지도자상" (자명고 01.4)
김명혁 목사 (강변교회 담임 목사, 합동신학교 겸임교수)
"내가 받은 것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니"(고전15:3).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딤후3:14). 우리가 물려 받은 유산 중 가장 귀중한 유산은 믿음의 선배들이 물려준 믿음의 유산이다. 명성교회의 김삼환 목사가 이런 고백을 한 일이 있다. "제가 지금 이렇게 교회를 크게 하고 있는 것은 제가 설교를 잘하기 때문도 아니고 행정을 잘 하기 때문도 아니고 목회를 잘하기 때문도 아닙니다. 순교자들의 피의 유산 때문입니다." 옳은 지적이고 옳은 고백이다. 그 고백은 바로 나의 삶에 대한 나의 고백이다. 나는 신학자로서도 부족하고 목회자로서도 부족하고 선교 사역자로서도 부족하지만 그래도 오늘의 내가 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앞 서 간 믿음의 선배들이 물려준 기도와 헌신과 부흥과 순교의 유산 때문인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참으로 훌륭한 믿음의 지도자들이었다. 주님만 안 사람들이었고 주님만 사랑하고 주님만 섬긴 충성스러운 사람들이었다. 신앙의 절개를 지키기 위해서는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은 순교적 신앙의 소유자들이었다. 돈이나 명예와는 거리가 먼 순결한 사람들이었다. 교회와 양무리들을 위해서는 재물이나 몸을 허비하기를 기뻐했던 선한 목자들이었다. 목회를 위한 기술 습득이나 방법 개발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저 몸으로 그리고 가슴과 눈물로 목회한 순수한 지도자들이었다. 물론 기도와 말씀에는 생명을 건 사람들이었다. 죽음을 초월한 사람들이었고 천국을 가까이 느끼면서 산 종말신앙의 사람들이었다. 나를 오늘의 나로 만들어 준 믿음의 선배들이 보고 싶다. 물론 지금도 유창한 설교나 눈부신 교회성장에 목이 굳어지지 않은 순수한 주님 사랑의 지도자들이 여기 저기 있기는 하다. 나는 그런 분들을 대하면서 믿음의 선배들에 대한 향수를 느끼곤 한다.
나에게 믿음의 유산을 물려준 믿음의 선배들 중 한 분은 나의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이다. 나의 부친은 일제와 공산 치하에서 신앙의 절개를 지키기 위해 감옥 생활을 여러 차례 하다가 결국 순교를 당했다. 신앙적으로는 극히 강직하고 인품적으로는 극히 부드러운 북한교회 지도자의 한 분으로 살다가 주님 품으로 가셨다. 나는 아버지가 나에게 물려준 신앙의 절개와 목회의 사랑과 순교의 피의 유산 때문에 지금도 살아가고 있다고 고백한다. 아버지께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나에게 믿음의 유산을 물려준 또 다른 믿음의 선배들이 있다. 나에게 믿음을 지키는 법과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준 주일학교 선생님들이다. 명선성 최병목 이인복 선생님들은 내가 평양 인민학교 4학년 5학년 시절 나의 신앙의 인격과 인생의 방향을 설정해 준 귀한 선생님들이었다. 그분들은 말이 아닌 뜨거운 가슴과 삶으로 나에게 믿음으로 사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그래서 나는 공산주의의 위협에 굴하지 않을 수 있었고 새벽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간절하게 기도할 수 있었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 38선을 넘을 수 있었다.
월남 후 6.25 피난시절 중학생 때 나에게 뜨거운 믿음의 유산을 물려준 믿음의 선배는 이성봉 목사님이다. 나는 이성봉 목사님이 인도하는 집회에 거의 빠지지 않고 참석하면서 은혜의 말씀을 헐떡거리며 받아 삼키곤 했다. 이성봉 목사님은 "말로 못하면 죽음으로" 십자가의 복음을 온 몸으로 뜨겁게 전하신 너무나 귀중한 믿음의 스승이다. 이성봉 목사님은 돈과 명예와는 상관이 없는 깨끗한 삶을 살았다. 그분은 나에게 회개와 기도와 믿음과 헌신과 성결의 유산을 고스란히 물려주신 너무나 귀중한 믿음의 스승이다.
나에게 믿음의 유산을 물려준 또 다른 믿음의 선배는 손양원 목사님이다. 서울에 돌아와 서울고등학교 1학년에 다니던 어느날 오전 남대문 네거리 기독교 서점에 들러 「사랑의 원자탄」이란 책을 발견하고 너무나 반가워 그 책을 가지고 남산으로 올라갔다. 내가 자주 가던 조용한 숲 속 그늘에 앉아 첫 페이지로부터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는 그 책을 계속해서 읽을 수가 없었다. 눈물의 기도와 찬송이 거듭되어 책 읽는 것을 중단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두움이 깃 들어 오는 저녁이 될 때까지 나는 온 종일 읽고 기도하고 찬송하는 감격의 시간을 가졌다. 그 후부터 손양원 목사님은 내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신앙의 선배 목사님이 되었다.
나에게 믿음의 유산을 물려준 또 다른 믿음의 선배는 한국의 예레미야 라고 불리던 김치선 목사님이다. 그 분은 고등학교 시절과 대학교 시절에 나에게 깊은 신앙의 감화를 준 신앙의 스승이다. 김치선 목사님은 설교할 때마다 회개를 촉구하며 우시었고 새벽기도 때마다 "성령이여 강림하사 나를 감화하시고" 찬송을 부르면서 회개와 성령충만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곤 했다. 나는 김치선 목사님이 인도하는 부흥회와 산상기도회를 좇아 다니며 은혜를 사모하곤 했는데 그때 체 받은 은혜와 신앙은 나의 일부를 형성했다고 하겠다.
나에게 고귀한 믿음의 유산을 물려준 또 다른 믿음의 선배는 기도와 말씀의 사람 박윤선 목사님이다. 박윤선 목사님은 기도와 말씀에 파묻힌 사람이었고 하나님만 아신 분이었다. 그 분은 또한 어린 아이처럼 소박하고 단순하고 따뜻한 분이었다. 그 분은 또한 겸손과 진실의 인격을 소유한 분으로 가식이나 꾸밈을 모르는 분이었다. 나는 그분의 기도가 좋았고 그분의 삶이 좋았고 그분이 하는 것은 무엇이나 다 좋았다. 감히 그분을 따를 수는 없지만 그분의 신앙과 삶의 향기는 오늘의 나의 일부를 형성했다고 하겠다.
이분들 외에도 내가 존경하고 내가 깊은 감화와 영향을 받은 신앙의 선배들과 스승들 가운데는 주기철 목사님, 한경직 목사님, 정진경 목사님, 박종렬 목사님, 장경재 목사님 장기려 박사님 같은 분들이 있다. 나는 이처럼 귀한 신앙의 선배들과 교회의 지도자들을 주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고 교회와 사회의 존경과 신뢰와 사랑을 받는 선하고 겸손하고 진실한 지도자들을 더 많이 일으켜 주시기를 소원하며 간구한다. 그리고 우리도 우리의 선배와 스승의 발자취를 따라갈 수 있기를 소원하며 간구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시기를 기도 드린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