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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조 단군싱앙"의 허구성
김명혁 목사(합동신학대학원 교수, 강변교회 목사, 한기총 국제위원장)
최근 시인 김지하는 단군조선의 상고사에서 인류의 원형을 찾아서 민족정신을 회복하고 나아가서 인류의 정신적 방향을 제시하자는 주장을 했다. 다시 말해서 상고사에 나오는 마고성은 인간 본원의 이상향이며 홍익인간의 이념이 실현되는 신시(神市)인데, 지금 우리는 우리 몸 안에 울리는 우주의 음률이며 질서인 '율려'(律呂)에 따라 살아감으로써 마고성과 같은 이상세계를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조 단군의 뿌리와 줏대를 찾아 민족 고유의 주체적 사상을 건설하고 물질적 정신적 공황에 빠진 현실에 활로를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 민족이 이제 IMF를 만나 벽에 부딪혀 고대로 돌아가는 전 인류적 르네상스를 일으킬 때가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김지하는 이와 같은 깨달음을 지금 단군상 건립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단학의 일지 이승헌에게서 터득하게 되었다고 고백하며 자기는 '단학' 수련과정에서 정신적 원류와의 합일이라는 신비적 체험을 통해 정신적 혼돈에서 벗어났다고 말했다. 지금 현대인들도 이와 같은 '단학' 체험 또는 '율려' 수련을 통해 정신 문화적 혼돈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신은 우주 안에 그리고 인간 특히 인간의 뇌 안에 있는 천기 즉 천지기운인데 '단학' 체험 또는 '율려' 수련을 통해 수운 최제우와 이승헌이 체험한 신인합일의 종교적 체험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필자는 김지하와 이승헌의 주장의 세 가지 오류를 지적하고 싶다. 첫째 오류는 단군조선의 상고사에서 민족정신의 회복을 추구하고 인류정신의 방향을 모색하자는 복고주의적 발상이다. 이는 거의 모든 국수주의적 민족주의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반 세계주의적 발상이다. 이와 같은 배타적 민족주의는 히브리민족의 선민사상에서부터 현대 독일의 나치주의와 일본의 신도주의 그리고 북한의 주체사상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기독교는 복고주의적 민족주의를 넘어서는 미래지향적 세계주의를 지향한다. 정치 문화 종교적으로 세계화를 지향하는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김지하의 복고주의적 민족주의 발상은 시대를 역행하는 반 자유민주주의적 발상이다.
둘째 오류는 신화적 인물인 고조선의 단군왕검을 역사적 실존 인물로 지나치게 과장해서 부각시킨 것이다. 단군왕검이 주전 10세기경 고조선을 건국한 실존 인물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으나 육당 최남선, 이병도, 이기백 교수 등이 한결 같이 주장해 온 역사적 입장은 단군왕검이 제정일치시대에 있었던 제사장 겸 군주를 호칭한 보통 명사적 고유명사라는 것이다. 애굽의 파라오와 같은 호칭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단군에 관한 삼국유사의 이야기는 건국왕실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서 만들어진 건국신화라는 것이다. 그래서 단군의 할아버지를 하나님으로 아버지를 하늘에서 내려 온 분으로 신화화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행 고등학교 국사교과서도 "고조선은 단군왕검에 의해 건국되었다고 한다"라고 기술하고 "단군왕검은 당시 지배자의 칭호였다"고 기술하며 "단군 이야기는 우리 민족의 시조신화로 널리 알려져 있다"고 분명하게 신화적 성격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김지하의 "민족정신회복 시민운동연합"과 이승헌의 "한문화운동연합" 등이 단군과 단군신화를 실존 역사로 단정하는 것은 비 역사적이고 반 지성적인 처사이다. 국사학계의 원로인 이기백 교수도 "학문의 진리와 이치를 무시하고 신화적인 세계에서 정신적 구심점을 찾는 것은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셋째 오류는 단군을 종교적 대상으로 신격화하는 종교운동을 펴고 있다는 것이다. 1910년경 단군교 또는 대종교가 생기면서 단군을 종교적 대상으로 신격화하기 시작했다. 단군이 실존 인물이었던지 신화적 인물이었던지 간에 그를 종교적 대상으로 신격화하는 것은 자유 민주사회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최근에 "민족정신회복 시민운동연합"과 "한문화운동연합" 등이 단군을 종교적 대상으로 삼고 단군의 선 사상을 수련하는 단학 종교운동을 일으키고 있다. "한문화운동연합"은 1999년 1월 "통일기원국조 단군상을 건립하며"의 취지문에서 다음과 같이 그 운동의 종교성을 밝혔다. "이승헌 님의 제안으로 민족사 바로 세우기의 정신을 담아 전국에 360개의 통일기원 국조 단군상을 세운다. 이곳을 참배하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의 뿌리를 기억하며 가슴속에 홍익인간 제세이화의 큰 정신을 간직하고 겨레의 얼을 되새겨 밝고 강한 민족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한문화운동연합"의 총재인 이승헌은 "단학의 목적은 천지 기운과 천지 마음을 아는 것, 그럴 때 혼이 살아나고 하늘의 마음을 알 수 있고 신인이 합일돼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 이승헌은 또한 단학선원 회원들에게 단군신과 황웅 천황 그리고 이승헌 자신에게 103번의 절을 100일간 하도록 시켰다. 심지어 이승헌은 회원들에게 "나는 절대자 하느님이다. 다른 생각은 절대 하지 말고 무조건 믿어라. 그것만이 살 길이다. 나는 살아 있는 단군이다"라는 글까지 보냈다. 김지하도 '단학' 수련과정에서 정신적 원류와의 합일이라는 신비적 체험을 통해 정신적 혼돈에서 벗어났다고 고백했다. 김지하는 지금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사회구조나 경제구조를 혁파하기 전에 마음을 혁파하는 종교적 체험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지금 김일성 주체 사상을 민족과 세계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하며 김일성 주석을 조국의 수호신, 지구촌의 한울님, 인류의 구세주라고 호칭하며 신격화 하고 있다. "민족정신회복 시민운동연합"과 "한문화운동연합" 등이 지향하는 종교운동이 북한의 주체사상적 종교운동과 비슷하다고 하겠다.
21세기의 문턱에 선 우리가 힘써 해야 할 일은 복고적 민족주의적 종교운동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자유민주주의 원리를 존중하며 이를 실현하는 것이다. 즉 종교 정치 경제 문화 등의 영역에서 다양성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가운데 조화와 통일을 이루며 우리 사회와 인류 사회를 보다 나은 조화로운 사회로 발전시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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