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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대한 교회의 역할” 목회와 신학(07.1)
김명혁 목사(강변교회 담임)
리차드 니버가 그의 명저 「그리스도와 문화」 (Christ and Culture)에서 그리스도와 문화와의 관계는 쉽게 풀 수 없는 ‘영속적인’ (enduring) 문제라고 지적한 것처럼, 교회와 정치와의 관계도 쉽게 풀 수 없는 ‘영속적인’ 문제라고 하겠다. 글 서두에서 나 본인의 입장을 요약하여 피력하면 다음과 같다. 나는 1974년 로잔 대회 이전까지는 정치 참여에 대해서 거의 부정적이었다. 보수주의 또는 근본주의의 영향 때문이었다. 그러나 1974년 로잔 대회 이후부터 나는 존 스토트 박사의 입장에 동조하며 손봉호 박사 등과 함께 어느 정도 정치 참여에 긍정적이었다. 그래서 군사 독재를 비판하는 성명을 수 차례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1년 9.11 사태 이후부터 나는 정치 참여에 대해서 차츰 부정적이 되었다. 부시 대통령의 소위 종교적인 신념에 바탕을 둔 정치 및 군사 참여와 개입이 엄청난 불행을 초래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는 교회의 목회자인 동시에 신학자이다. 정치가로서의 ‘나’의 입장은 물론 다를 수 있다. 여기서 목회자와 신학자로서의 ‘나’의 생각을 역사의 흐름을 살피며 수필 식으로 소박하게 기술하려고 한다.
1. 예수님과 사도들과 속사도들의 입장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자기 제자들에게 나타나서 말씀하시면서 정치에 대해 관심을 두지 말라고 경계하셨다. 저들은 이스라엘 나라의 정치적 독립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에 관심을 두지 말고 하나님 나라 건설에만 관심을 두어야 한다고 말씀했다.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는 일은 “너희의 알 바가 아니라”고 잘라서 말씀하시면서 “땅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되라”고 분부하셨다. 예수님은 또한 그 당시 하나님의 아들을 대적하며 잡아 죽이려고 한 가장 악독한 ‘테러’ 집단이었던 로마 군인들과 그 동조자들을 하늘의 군대를 동원해서 처벌하시지 않고 도리어 그들을 그대로 내 버려두셨고 마지막에는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로마 군인들을 위해서 다음과 같이 중보의 기도를 하셨다.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2:34). 예수님께서 고대 세계의 정치 사회 문화 구조를 바꾸어 놓으신 것은 정치적인 또는 군사적인 행동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나타난 용서와 사랑의 행위에 의한 것이었다.
베드로와 바울을 비롯한 주님의 제자들은 주님의 분부를 따라서 이스라엘의 독립이나 하나님 나라의 실현을 앞당기기 위해서 그 당시 ‘악의 축’이었던 포악한 로마 정부를 대항해서 싸우거나 정치적인 데모를 한 일이 한 번도 없었다. 인권 유린을 항의하는 시위를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정치적인 구호를 외치면서 길 거리나 광장에 나가서 정치적인 시위를 한 일이 한 번도 없었다. 그와 같은 비 정치적이고 무 저항적인 자세는 300여 년 동안 지속되었다. 저들은 그저 악을 선으로 갚고 십자가에 나타난 용서와 사랑의 복음을 전하면서 기쁘게 죽어갔다. 서머나의 감독 폴리캅은 죽어가면서 다음과 같이 감사의 찬양을 하나님께 돌렸다. “나는 당신을 찬양하며 당신을 송축하며 당신께 영광을 돌립니다.” 안디옥의 감독 이그나시우스는 주님을 위한 죽음을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사모하고 기뻐하면서 죽어갔다. “불이여 오라! 십자가여 오라! 잔인한 마귀의 고문이여 오라!” 저들은 모두 정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정치적인 행동을 전혀 취하지도 않았다. 그저 순교의 피를 흘린 것뿐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그 피를 통해서 고대 세계와 로마 제국의 정치 사회 문화 구조가 거의 완전하게 바꾸어진 것이었다. 그래서 크리스토퍼 도슨을 비롯한 현대의 대표적인 기독교 역사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지난 2천여 년 동안 기독교가 제 역할을 하면서 정치 사회 문화 구조를 기독교적으로 바꾸어 놓은 시대는 처음 300여 년 동안이었다고 지적했다. 그것은 전혀 정치적인 참여나 군사적인 힘에 의한 것이 아니었고 묵묵히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주님의 모습을 따라서 바보처럼 죽어간 순교의 제물과 피의 힘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2. 어거스틴과 루터의 입장
초대 교회의 완성자 어거스틴도 정치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4,5세기 초대 교회의 지도자들은 기독교화된 로마를 ‘영원한 도성’으로 간주하며 로마에 대한 기대와 충성심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410년 로마가 고트족의 알래릭에 의해서 함락되었을 때 성 제롬은 “온 세상이 한 도성과 함께 망했구나” 라고 부르짖으며 탄식했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달랐다. 로마 제국에 대한 초연한 자세를 유지했다. 제롬을 비롯한 상당수의 신자들이 로마가 망했다고 ‘정체성 위기’에 빠졌을 때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했다. “제국은 과거에도 망했다가 다시 일어나곤 하지 않았는가? 하나님께서 로마를 다시 회복시킬지 누가 아는가?” 어거스틴의 관심은 철두철미 하나님의 도성과 하나님의 나라에 있었다. 결국 어거스틴은 종말 지향적인 세계관과 역사관을 지녔다.
루터에게 있어서도 정치는 결코 그의 중요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의 중요 관심사는 철두철미 그리스도와 십자가와 그리스도의 말씀이었다. 루터는 지상의 두 통치 기관인 국가와 교회의 기능과 영역을 혼동하는 것을 커다란 오류를 범하는 일이라고 지적하며 두 통치 기관의 분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개혁 운동의 초기 독일 민중의 지도자 후텐과 지킨겐이 루터에게 무력적 원조를 제공하려 했을 때 루터는 고맙게 여기면서도 그것을 단호히 거부했다. 종교 개혁은 정치적 힘이나 무력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능력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루터는 세속 통치 기관인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는 단지 타락한 인간들을 억제하고 질서와 평화를 유지하는데 있다고 했다. 그리고 국가가 신앙적인 자유를 억제할 때 국가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불순종의 타당성을 인정하면서도 루터는 혁명적 반항이나 무력적 투쟁을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
3. 길선주 목사와 주기철 목사의 입장
한국 교회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길선주 목사도 정치에는 관심이 없었다. 길선주 목사는 회개와 중생과 천국 복음만 전했다. 그는 부흥 사경회를 인도할 때 언제나 아침 시간에는 요한 계시록을 강해했다. 그래서 강원용 목사는 1975년 9원 24일 밤 기독교 방송국에서 행한 강연에서 1907년 부흥 운동을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땅 위에 있는 모든 권세는 일본에 하늘에 관한 것은 선교사들과 교회에게, 육체를 통치하는 것은 일본 정부가, 영혼을 통치하는 것은 선교사들과 교회에게, 이러한 방식의 협상이 여기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1907년의 대부흥 사건은 바로 이와 같은 협상의 결과로 생겨졌던 것입니다. 애국적인 반일 운동에 대한 것을 영적인 면으로 돌이키는 세뇌 공작이 바로 그 당시의 대부흥 운동이었습니다.” 그러나 길선주 목사는 옳았다. 지상 정치에 관심을 기울이는 대신 회개와 중생과 천국 복음만을 전한 길선주 목사는 조선의 정치 사회 문화의 구조를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일사 각오의 신앙을 지키며 순교의 제물이 된 주기철 목사도 정치에는 추호의 관심도 없었다. 물론 그는 신사 참배를 강요하는 일본 ‘천황’에 대항해서 싸웠다. “여러분 오늘도 예레미야의 입장에 서 있지 아니한가? 대중과 시대에 아부하는가?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외치는가? 여러분, 몰라서 말 못하는가? 왜 벙어리 개가 되었는가? 오늘 목사도 일사 각오 연후에 할 말을 하고 목사의 권위 예언자의 권위가 서는 것이다. 그런데 일개 순사 앞에서 쩔쩔 매고서야…” (여기까지 듣고 있던 일제 순사는 격노하여 “중지 해산”하고 소리치며 호루라기를 불어댔다. 주 목사는 설교를 다 끝내지 못한 채 강단에서 끌려 내려왔다.) 그러나 주기철 목사는 일제에 항거하는 정치운동은 하지 않았다. 주기철 목사는 산정현 교회에 부임한 후에 ‘세 가지 신앙’이란 제목으로 설교를 했는데 1) 민족 운동과 정치운동을 하기 위해서 교회에 오는 신앙과 2) 인격을 높이고 도덕적 생활을 하기 위해서 교회에 오는 신앙과 3) 거듭 나고 그리스도의 속죄를 받아 감사 생활을 하기 위해서 교회에 오는 신앙이 있다고 말하면서 “첫 번째와 두 번째의 경우는 그리스도와 관계가 없으니 여기에서 나가주시오!” 라는 말까지 했다. 그래서 민경배 교수는 이렇게 잘라서 말했다. “주기철 목사는 민족 운동이나 항일 투쟁을 염두에 둔 일이 없었다.” 그러나 주기철 목사는 옳았다. 지상 정치에 관심을 기울이는 대신 기도와 말씀과 하나님 중심적 신앙과 삶과 죽음을 지녔던 주기철 목사는 기울어져가던 조선의 교회는 물론 조선 나라를 바로 세우는 건축자의 역할을 수행했다.
4. 히스기야와 하박국의 입장
나는 최근(2006년 9월과 10월) 히스기야왕과 하박국 선지자에 대한 설교를 하면서 두 사람이 정치 군사적인 위기에 처했을 때 정치 군사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은 사실을 새삼 발견했다. 두 사람은 모두 신앙 일관 기도 일관의 입장을 취했다. 설교의 요점을 옮겨본다.
“히스기야 왕이 국가적인 위기와 군사적인 위기에 처했을 때 한 것은 군사적인 행동이나 외교적인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기도뿐이었습니다. 굵은 베를 입고 하나님의 전으로 올라가서 회개의 기도를 드렸고 하나님의 사람 이사야에게 사람을 보내어 기도를 부탁한 것뿐이었습니다. 군사적인 견지에서 볼 때 어리석은 행동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 왕의 어리석어 보이는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그날 밤에 나타나서 이스라엘과 하나님을 대적하고 조롱한 앗수르의 군인 십팔만 오천 명을 쳐서 죽였고 앗수르 왕 산헤립은 죽임을 당했습니다. 우리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불행은 국가적 위기도 개인적 위기도 아닙니다. 회개와 기도를 상실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불행은 모든 것이 잘 되는 만사 형통입니다. 우리는 우리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자기 자랑과 자기 과시에 익숙해졌습니다. 목사들이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의 축하를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오늘의 이성봉 목사님과 김치선 목사님을 다시 보내주셔서 우리들을 다시 회개와 기도의 길로 눈물의 길로 이끌고 가실 수 있게 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선지자 하박국은 ‘어찌하여’ ‘어찌하여’ ‘어찌하여’ 라고 세 번이나 부르짖으면서 하나님을 향해 강한 의문과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범죄한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무섭게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을 듣고 하박국은 너무 속이 상해서 '어찌하여' 라고 탄식하며 부르짖었습니다. ‘어찌하여’ 라고 처절하게 부르짖던 하박국이 그 답을 얻기 위해 성루에 올라서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렸습니다. 한 나라가 영적이고 도덕적이고 군사적인 위기와 재난에 처했을 때 그 궁극적인 해결은 정치나 경제나 군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궁극적인 해결은 언제나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박윤선 목사님과 한경직 목사님처럼 6.25 전쟁의 국가적인 위기에 처했을 때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가장 지혜롭고 가장 겸손하고 가장 올바른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성루에 올라서서 무릎을 꿇고 고요히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리는 하박국에게 하나님께서 자신의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정한 때’에 즉 ‘종말의 때’에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선지자 하박국은 이제는 절망적인 현실에 붙잡혀 살지 않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종말의 때’를 바라보는 ‘종말론적인 초연’의 자세를 지니고 살게 되었습니다. 이제 하박국은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외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국 하박국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없을찌라도’ ‘없을찌라도’ ‘없을찌라도’ 라고 고백하면서 감사와 기쁨의 찬송을 부르게 되었습니다.”
5. 오늘의 한국교회의 상황
나는 2005년 6월 18일 대한민국 국가 조찬 기도회의 초청을 받아 나라와 민족을 위한 지도자 기도회에서 “하나님이 차지하실 자리는?”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한 일이 있다. 그 때 전한 말씀의 내용을 요약해본다.
“지금 한국 교회와 사회가 국가적 위기를 의식하면서 곳곳에서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회를 개최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가 오늘 아침 감히 말씀 드리고자 하는 것은 오늘날 한국 교회를 바라보면서 아쉬운 마음과 안타까운 마음과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씀 드려서 하나님을 믿는 한국 교회의 지도자들이 우리들이 범한 영적 및 도덕적 죄악 위에 임할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는 것보다는 북한의 핵 위협에 떨고 있고 미국의 힘을 하나님의 힘처럼 전적으로 의지하려는 모습에 저는 허탈감을 느낍니다. 제가 감히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북한이 너무 크게 보이고 미국이 너무 크게 보이고 하나님께서 차지하실 자리가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심판하실 분은 하나님 자신이신데 마치 북한의 핵이라고 생각하고, 도우실 분은 하나님 자신이신데 마치 미국의 군사적 힘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물론 저는 북한의 핵을 묵인하고 인권 탄압을 묵인하자는 말이나 반미를 하자는 말은 결코 결코 아닙니다. 북에 대해 강 온 정책을 구사하며 북을 설득하므로 핵을 포기하도록 하여야 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저는 신앙적인 관점에서 말씀 드리면 주님의 초림과 재림을 믿고 주님을 사모하고 사랑하는 성도들에게는 정치적인 위기도 없고, 경제적인 위기도 없고, 군사적인 위기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직 영적인 위기와 도덕적인 위기가 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한국 교회 지도자들이 지녀야 할 위기감은 우리가 범한 영적 및 도덕적 죄악 위에 임할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위기감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회개하면서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위대한 선지자 이사야는 이렇게 훈계했습니다.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찐저…’(사31:1-3). 이사야는 그 당시 이스라엘을 도울 수 있는 우방 동맹이 애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애굽을 의지하지 말라고 훈계했고, 가장 적대적인 위험 세력이 앗수르였음에도 불구하고 앗수르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훈계했습니다. ‘앗수르 사람이 너를 칠찌라도 그를 두려워 말라’(사10:24, 사37:6). 미국과의 우호 관계를 약화시키자는 말은 결코 결코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차지하실 자리를 만들어 드리자는 말뿐 입니다. 심판하실 분도 구원하실 분도 열국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심을 분명하게 인정하고 고백하자는 말뿐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 합니다. 역사의 종말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한국 교회가 역사의 종말을 준비할 수 있도록 기도하자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범한 영적 및 도덕적 타락의 죄와 함께 세상 정치와 경제와 군사 문제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들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면서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의 ‘회개의 제사’를 함께 드리기를 소원하는 것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을 긍휼히 여기시고 치료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6.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입장
나는 북한의 핵 실험 후 다음과 같은 짧은 성명을 발표한 일이 있다. “북한의 핵실험은 한반도를 비롯한 세계 평화를 위협하고 그리고 북한은 물론 남한과 아시아에 재난을 가져올 수도 있는 매우 어리석고 무모하고 위태롭고 불행한 일이다. 이와 같은 무모한 행동의 책임은 전적으로 북한에 있지만, 미국 일본 등이 북한에 대해서 강경 압박 정책을 쓴데도 부분적인 책임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를 빌미로 일본 등의 주변국들이 핵무장을 하려는 시도를 한다면 이는 아시아와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또 하나의 불행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이번 불행한 사태로 세계는 성급하게 북한에 대한 군사적 제재 등 압박만 가할 것이 아니라 단호하면서도 유연한 대화와 설득의 방법을 구사하므로 북한을 평화와 공존의 마당으로 끌고 나오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국 교회는 이번 불행한 정치 군사적 사태에 대해 지나치게 민감하고 성급한 ‘정치적’ 반응을 나타내 보이기보다는,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앞에 조용히 나아가 우리 자신의 죄를 살피고 하나님의 긍휼을 간구하면서 그분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려는 하박국 선지자와 같은 ‘신앙적’ 자세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합2:1). 한국 교회가 하나되어 하나님의 얼굴을 구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긍휼을 베푸실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
7. 정치에 대한 교회의 역할
“정치에 대한 교회의 역할” 이라는 제목의 글을 마무리한다. 교회와 목회자들의 정치에 대한 올바른 태도와 역할은 정치 문제에 직접적인 방식으로 개입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신자 개인으로서는 정치에 직접적으로 얼마든지 개입하고 참여할 수 있다. 그러나 교회의 이름이나 목회자의 신분으로 정치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고 참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매우 위험하고 불행한 일이다. 정치는 절대적인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는 본질상 부패할 수 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와 목회자들의 정치에 대한 올바른 태도와 역할은 정치인들에게 영적이고 도덕적인 감동과 감화를 끼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인들이 잘못을 범할 때 충고나 책망은 할망정 ‘분노’와 ‘정죄’를 나타내 보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한경직 목사님은 정치에 거의 개입하지 않는 극히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다. 독재자들이 오라고 하면 가서 기도까지 해 주었다. 그러면서 그들을 향한 ‘긍휼’의 마음을 지녔다. 한경직 목사님이 그런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지만 그 누구보다도 독재자들에게 경외의 대상이 되었다. 나는 지금까지 이와 같은 소극적인 태도를 개혁주의적인 태도가 아닌 경건주의적인 태도라고 비판해왔다. 그러나 나는 최근에 이와 같은 소위 소극적인 경건주의적인 태도가 목회자들이 정치에 대해서 취할 올바른 태도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목회자들이 정치인들에게 영적이고 도덕적인 감동과 감회를 끼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리고 그들을 향한 ‘긍휼’의 마음을 지닐 수 있다면 그것으로 너무 족하다.
그런데 최근에 한국의 일부 보수 교회들과 일부 보수 목회자들이 정치에 지나친 관심을 가질 뿐 아니라 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일들이 벌어지게 되었다. 일부 목회자들은 특정 정당의 지지자와 지도자로 자처하기도 한다. 물론 오늘의 정부와 정당이 정치를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벌어지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일부 보수 목회자들은 반 김정일의 기치와 친 부시 대통령의 기치를 높이 들기도 한다. 물론 북한 정권이 포악한 일을 자행하고 부시 대통령이 그 포악한 일들을 심판하는 심판자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도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미국과 세계 교회의 대표적인 지도자인 빌리 그레함 박사는 최근에 “나는 정치에는 관심이 없다” 라고 고백했다. 진보 측에 속하는 경동교회의 박종화 목사는 최근에 “목회자들이 정치에 관여하는 것은 잘못이다” 라고 잘라서 말했다. 보수 측에 속하는 순복음노원교회의 유재필 목사도 최근에 “목회자들은 이 정부가 무너지고 이 정권이 물러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잘못이다” 라고 말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들에 다시 귀를 기울이며 이 글을 마무리한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5:44).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마26:5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라”(마24:2).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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