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시력을 잃은 마지막 일년동안은 때때로 “아빠 하늘이 보여,아빠 예수님이 오셨어”하고 말했다.하나님께선 세상의 것을 보는 아이의 눈을 가리고 천국을 볼 수 있는 눈을 여셨던 것을 깨닫는다．철원이를 묻고 돌아 오는 날 노회에 들러 강도사 인허를 받았다．철원이는 커서 목사님이 되어 기도도 많이 하고 전도도 많이 하겠다고 늘 말하곤 했다．철원이에게 난 훌륭한 목사가 되어 하나님께 많은 영광을 돌리게 되기를 바라는 기도를 해주곤 했다．이제 그 기도의 몫은 내가 짊어져야 한다．철원이를 가슴에 묻고나서 내 자신과 약속했다.
내 평생 가장 큰 아픔과 고통을 안겨준 사람이 있다면 아들 철원일 것이다.그리고 나에게 가장 큰 축복을 전해준 사람이 있다면 그도 철원일 것이다.또 이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뜨겁게 사랑한 사람이 있다면 그도 철원이다.난 아들로 말미암아 다른 인생을 열수 있었다.고통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었고 고난 중에 있는 이웃을 돌아 볼 수 있었다.그후 고통 중에 있는 말기암환자들을 찾아다니며 전도를 하기도 했다.
1975년 신학교 교수로서의 삶을 시작했다．처음 5년동안은 총신대에 몸담았다가 당시 신학교에 대한 교권의 지나친 간섭이 극에 달해 타협할 수 없다고 판단한 7명의 교수와 2백여명의 학생이 1980년에 따로 나와 설립한 합동신학교에서 새롭게 교수생활을 시작했다．
합동신학교는 한국교회 안에 만연된 교권과 지방색의 비리를 개혁하고 바르고 진실한 신앙 및 신학 운동을 조용히 펴나가고자 하는 소박한 염원에서 출발했다．개혁주의 신앙으로 목회에 전념하고 있던 1977년 9월 경으로 기억된다．어느날 아침 신반포 집에서 나와 총신대로 가려고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던 중이었다．어떤 사람이 다가와 공손히 인사했다．
“김박사님의 자문이 필요합니다．저희 회사에 가서 몇가지 도움 말씀을 좀 주십시오”
본래 귀가 커서 남의 말을 잘 듣는 편이라 그날도 그들의 말을 쉽게 믿고 차에 올랐다．그런데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중앙정보부의 남산지하실이었다．나중에 알았지만 당시 일요일 학도군사훈련 등 일요일 국가행사를 반대하며 그에 대한 교계지도자들의 의견을 수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위압감을 주려고 반말과 협박조로 심문했다．그러나 심문을 받는 동안 난 한 순간도 마음의 평온을 잃지않았다．그들은 나의 기를 꺾기 위해 미국에 있을 때 홍콩을 통해 북한에 계신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 사본을 내보였다．두사람이 심문하다 지치면 좀 쉬곤 했다．그러며 나는 책상에 앉아 글을 썼다．심문자가 나를 보며 무슨 글을 쓰냐고 물았다．
“다음 주일날 교회에서 설교할 원고를 씁니다”
한 사람이 기가막힌 듯 말했다．
“당신 도대체 정신이 있는거요?여기 한번 들어오면 언제 나갈지 모르는데 다음 주일 설교를 준비한다니 말이오”
나는 나가고 안나가는 것은 당신들의 소관이 아니니 걱정 말고 다음 주일날 후암교회에 나와 내 설교를 들어야 한다고 말하며 전도했다．그날 자정이 훨씬 지난 뒤에 심문이 끝났고 다음날 아침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정리=이지현 jeehl@kukminilbo.co.kr 99-1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