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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대한 교회의 자세와 역할” 한복협 월레 모임(07.4) 발표문
김명혁 목사(강변교회 담임)
리차드 니버가 그의 명저 「그리스도와 문화」 (Christ and Culture)에서 그리스도와 문화와의 관계는 쉽게 풀 수 없는 ‘영속적인’ (enduring) 문제라고 지적한 것처럼, 교회와 정치와의 관계도 쉽게 풀 수 없는 ‘영속적인’ 문제라고 하겠다. 글 서두에서 나 본인의 입장을 요약하여 피력하면 다음과 같다. 나는 1974년 로잔 대회 이전까지는 정치 참여에 대해서 거의 부정적이었다. 보수주의 또는 근본주의의 영향 때문이었다. 그러나 1974년 로잔 대회 이후부터 나는 존 스토트 박사의 입장에 동조하며 손봉호 박사 등과 함께 어느 정도 정치 참여에 긍정적이었다. 그래서 군사 독재를 비판하는 성명을 수 차례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1년 9.11 사태 이후부터 나는 정치 참여에 대해서 차츰 부정적이 되었다. 부시 대통령의 소위 종교적인 신념에 바탕을 둔 정치 및 군사 참여와 개입이 엄청난 불행을 초래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 한국교회의 보수층이 정치에 너무 깊이 관여하고 있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는 교회의 목회자인 동시에 신학자인 ‘나’이다. 정치가로서의 ‘나’의 입장은 물론 다를 수 있다. 여기서 목회자와 신학자로서의 ‘나’의 생각을 역사의 흐름을 살피며 소박하게 기술한다.
1. 예수님과 사도들과 속사도들의 입장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자기 제자들에게 나타나서 말씀하시면서 ‘정치’에 대해 관심을 두지 말라고 경계하셨다. 저들은 이스라엘 나라의 정치적 독립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에 관심을 두지 말고 하나님 나라 건설에만 관심을 두어야 한다고 말씀했다.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는 일은 “너희의 알 바가 아니라”고 잘라서 말씀하시면서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분부하셨다. 예수님은 또한 그 당시 하나님의 아들을 대적하며 잡아 죽이려고 한 가장 악독한 ‘테러’ 집단이었던 로마 군인들과 그 동조자들을 하늘의 군대를 동원해서 처벌하시지 않고 도리어 그들을 그대로 내 버려두셨고 마지막에는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로마 군인들을 위해서 다음과 같이 중보의 기도를 하셨다.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2:34). 예수님께서 고대 세계의 정치 사회 문화 구조를 바꾸어 놓으신 것은 정치적인 또는 군사적인 행동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나타난 용서와 사랑과 속죄의 행위에 의한 것이었다.
베드로와 바울을 비롯한 주님의 제자들은 주님의 분부를 따라서 이스라엘의 독립이나 하나님 나라의 실현을 앞당기기 위해서 그 당시 ‘악의 축’이었던 포악한 로마 정부를 대항해서 싸우거나 정치적인 데모를 한 일이 한 번도 없었다. 인권 유린을 항의하는 시위를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정치적인 구호를 외치면서 길 거리나 광장에 나가서 정치적인 시위를 한 일이 한 번도 없었다. 그와 같은 비 정치적이고 무 저항적인 자세는 300여 년 동안 지속되었다. 저들은 그저 악을 선으로 갚고 십자가에 나타난 용서와 사랑의 복음을 전하면서 기쁘게 죽어갔다. 서머나의 감독 폴리캅은 죽어가면서 다음과 같이 감사의 찬양을 하나님께 돌렸다. “나는 당신을 찬양하며 당신을 송축하며 당신께 영광을 돌립니다.” 안디옥의 감독 이그나시우스는 주님을 위한 죽음을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사모하고 기뻐하면서 죽어갔다. “불이여 오라! 십자가여 오라! 잔인한 마귀의 고문이여 오라!” 저들은 모두 정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정치적인 행동을 전혀 취하지도 않았다. 그저 순교의 피를 흘린 것뿐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그 피를 통해서 고대 세계와 로마 제국의 정치 사회 문화 구조가 거의 완전하게 바꾸어진 것이었다. 그래서 크리스토퍼 도슨을 비롯한 현대의 대표적인 기독교 역사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지난 2천여 년 동안 기독교가 제 역할을 하면서 정치 사회 문화 구조를 기독교적으로 바꾸어 놓은 시대는 처음 300여 년 동안이었다고 지적했다. 그것은 전혀 정치적인 참여나 군사적인 힘에 의한 것이 아니었고 묵묵히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주님의 모습을 따라서 바보처럼 죽어간 순교의 제물과 피의 힘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2. 어거스틴과 루터의 입장
초대 교회의 완성자 어거스틴도 정치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4,5세기 초대 교회의 지도자들은 기독교화된 로마를 ‘영원한 도성’으로 간주하며 로마에 대한 기대와 충성심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410년 로마가 고트족의 알래릭에 의해서 함락되었을 때 성 제롬은 “온 세상이 한 도성과 함께 망했구나” 라고 부르짖으며 탄식했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달랐다. 로마 제국에 대한 초연한 자세를 유지했다. 제롬을 비롯한 상당수의 신자들이 로마가 망했다고 ‘정체성 위기’에 빠졌을 때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했다. “제국은 과거에도 망했다가 다시 일어나곤 하지 않았는가? 하나님께서 로마를 다시 회복시킬지 누가 아는가?” 어거스틴의 관심은 철두철미 하나님의 도성과 하나님의 나라에 있었다. 결국 어거스틴은 종말 지향적인 세계관과 역사관을 지녔다.
루터에게 있어서도 정치는 결코 그의 중요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의 중요 관심사는 철두철미 그리스도와 십자가와 그리스도의 말씀이었다. 루터는 지상의 두 통치 기관인 국가와 교회의 기능과 영역을 혼동하는 것을 커다란 오류를 범하는 일이라고 지적하며 두 통치 기관의 분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개혁 운동의 초기 독일 민중의 지도자 후텐과 지킨겐이 루터에게 무력적 원조를 제공하려 했을 때 루터는 고맙게 여기면서도 그것을 단호히 거부했다. 종교 개혁은 정치적 힘이나 무력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능력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루터는 세속 통치 기관인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는 단지 타락한 인간들을 억제하고 질서와 평화를 유지하는데 있다고 했다. 그리고 국가가 신앙적인 자유를 억제할 때 국가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불순종의 타당성을 인정하면서도 루터는 혁명적 반항이나 무력적 투쟁을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
3. 길선주 목사와 주기철 목사의 입장
한국 교회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길선주 목사도 정치에는 관심이 없었다. 길선주 목사는 회개와 중생과 천국 복음만 전했다. 그는 부흥 사경회를 인도할 때 언제나 아침 시간에는 요한 계시록을 강해했다. 지상 정치에 관심을 기울이는 대신 회개와 중생과 천국 복음만을 전한 길선주 목사는 조선의 정치 사회 문화의 구조를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일사 각오의 신앙을 지키며 순교의 제물이 된 주기철 목사도 정치에는 추호의 관심도 없었다. 물론 그는 신사 참배를 강요하는 일본 ‘천황’에 대항해서 싸웠다. 그러나 주기철 목사는 일제에 항거하는 정치운동은 하지 않았다. 주기철 목사는 산정현 교회에 부임한 후에 1) 민족 운동과 정치운동을 하기 위해서 교회에 오는 신앙과 2) 인격을 높이고 도덕적 생활을 하기 위해서 교회에 오는 신앙과 3) 거듭 나고 그리스도의 속죄를 받아 감사 생활을 하기 위해서 교회에 오는 신앙이 있다고 말하면서 “첫 번째와 두 번째의 경우는 그리스도와 관계가 없으니 여기에서 나가주시오!” 라는 말까지 했다. 그래서 민경배 교수는 이렇게 잘라서 말했다. “주기철 목사는 민족 운동이나 항일 투쟁을 염두에 둔 일이 없었다.” 그러나 주기철 목사는 옳았다. 지상 정치에 관심을 기울이는 대신 기도와 말씀과 하나님 중심적 신앙과 삶과 죽음을 지녔던 주기철 목사는 기울어져가던 조선의 교회는 물론 조선 나라를 바로 세우는 건축자의 역할을 수행했다.
4. 오늘의 한국교회의 상황
나는 2005년 6월 18일 대한민국 국가 조찬 기도회의 초청을 받아 나라와 민족을 위한 지도자 기도회에서 “하나님이 차지하실 자리는?”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한 일이 있다. 그 때 이런 말을 했다. “지금 한국 교회와 사회가 국가적 위기를 의식하면서 곳곳에서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회를 개최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가 오늘 아침 감히 말씀 드리고자 하는 것은 오늘날 한국 교회를 바라보면서 아쉬운 마음과 안타까운 마음과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씀 드려서 하나님을 믿는 한국 교회의 지도자들이 우리들이 범한 영적 및 도덕적 죄악 위에 임할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는 것보다는 북한의 핵 위협에 떨고 있고 미국의 힘을 하나님의 힘처럼 전적으로 의지하려는 모습에 저는 허탈감을 느낍니다. 제가 감히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북한이 너무 크게 보이고 미국이 너무 크게 보이고 하나님께서 차지하실 자리가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심판하실 분은 하나님 자신이신데 마치 북한의 핵이라고 생각하고, 도우실 분은 하나님 자신이신데 마치 미국의 군사적 힘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물론 저는 북한의 핵을 묵인하고 인권 탄압을 묵인하자는 말이나 반미를 하자는 말은 결코 결코 아닙니다. 저는 신앙적인 관점에서 말씀 드리면 주님의 초림과 재림을 믿고 주님을 사모하고 사랑하는 성도들에게는 정치적인 위기도 없고, 경제적인 위기도 없고, 군사적인 위기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직 영적인 위기와 도덕적인 위기가 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한국 교회 지도자들이 지녀야 할 위기감은 우리가 범한 영적 및 도덕적 죄악 위에 임할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위기감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회개하면서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한국의 일부 보수 교회들과 일부 보수 목회자들이 정치에 지나친 관심을 가질 뿐 아니라 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일들이 벌어지게 되었다. 일부 목회자들은 특정 정당의 지지자와 지도자로 자처하기도 한다. 물론 오늘의 정부와 정당이 정치를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벌어지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일부 보수 목회자들은 반 김정일의 기치와 친 부시 대통령의 기치를 높이 들기도 한다. 물론 북한 정권이 포악한 일을 자행하고 부시 대통령이 그 포악한 일들을 심판하는 심판자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도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또한 한국교회가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정치인들이 전면에 나타나도록 ‘배려’하는 것은 한국교회가 정치에 지나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으므로 이와 같은 ‘배려’를 재고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미국과 세계 교회의 대표적인 지도자인 빌리 그레함 박사는 최근에 “나는 정치에는 관심이 없다” 라고 고백했다. 진보 측에 속하는 경동교회의 박종화 목사는 최근에 “목회자들이 정치에 관여하는 것은 잘못이다” 라고 잘라서 말했다. 보수 측에 속하는 순복음노원교회의 유재필 목사도 최근에 “목회자들은 이 정부가 무너지고 이 정권이 물러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잘못이다” 라고 말했다.
5. 정치에 대한 교회의 자세와 역할
교회와 목회자들이 지녀야 할 정치에 대한 올바른 자세와 역할은 정치 문제에 직접적인 방식으로 개입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신자 개인으로서는 정치에 직접적으로 얼마든지 개입하고 참여할 수 있다. 그래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구조의 변혁을 시도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교회의 이름이나 목회자의 신분으로 정치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고 참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매우 위험하고 불행한 일이다. 정치는 절대적인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는 본질상 부패할 수 밖에 없는 상대적인 사안이기 때문이다. 중세의 교회가 그랬듯이 교회와 목회자들이 정치에 깊이 관여하거나 정권을 거머쥘 때 교회는 반드시 타락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사랑의 성자 손양원 목사님의 딸 손동희 권사가 지적한 대로 지금 한국교회는 “솔로몬의 영광 보다 욥의 인내”를 사모하며 지녀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교회와 목회자들의 정치에 대한 올바른 태도와 역할은 정치인들에게 영적이고 도덕적인 감동과 감화를 끼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인들이 잘못을 범할 때 충고나 책망은 할망정 ‘분노’와 ‘정죄’를 나타내 보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한경직 목사님은 정치에 거의 개입하지 않는 극히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다. 독재자들이 오라고 하면 가서 기도까지 해 주었다. 그러면서 그들을 향한 ‘긍휼’의 마음을 지녔다. 한경직 목사님이 그런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지만 그 누구보다도 독재자들에게 경외의 대상이 되었다. 나는 지금까지 이와 같은 소극적인 태도를 개혁주의적인 태도가 아닌 경건주의적인 태도라고 비판해왔다. 그러나 나는 최근에 와서는 이와 같은 소위 소극적인 경건주의적인 태도가 목회자들이 정치에 대해서 취할 올바른 태도라고 바꾸어 생각하게 되었다. 목회자들이 정치인들에게 영적이고 도덕적인 감동과 감화를 끼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리고 그들을 향한 ‘긍휼’의 마음을 지닐 수 있다면 그것으로 너무 족하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들에 다시 귀를 기울이며 이 글을 마무리한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5:44).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마26:52).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요18:36).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