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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용의 추억
담임목사 허태성
1980년 4월에 저는 안면도 방포초등학교에 교사로 처음 발령을 받아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 해말에 농한기를 맞아 태안의 한 자동차 운전학원이 안면도에 임시로 분원을 내고 농민들을 대상으로 운전교육을 시키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그 학원의 강사들이 저와 같은 하숙집에 머물게 되어 저는 계획에도 없던 운전교육을 받게 되었고 1981년 초봄에 이틀을 결근하면서 대전까지 가서 시험을 보고 한 번에 운전면허를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면허를 취득하게 되어 기뻤지만 과연 내가 차를 소유하고 운전을 하게 되리라고는 믿기 어려웠습니다.
<3186>
면허를 얻은 지 10년이 지나서 처음으로 차를 갖게 되었습니다. 1991년에 저는 당시에 공주에서 개척교회를 막 시작한 때였습니다. 차가 필요했지만 차를 구할 수 있는 형편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 때 친구의 형님이 가지고 있던 차를 폐차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오래되어서 언제 멈출지도 모르는, 계기판도 고장이 나서 기름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도 알 수 없는 15인승 ‘토픽’(3186)이었습니다. 그 차를 인수받아서 ‘금강교회’라고 크게 써 붙이고 개척교회를 시작하였습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서 공주시내 한 바퀴를 돌아 교우들을 모시고 와서 기도회를 인도하고 또 모셔다 드리곤 했습니다. 주일에는 주일학교 어린이들과 장년들을 서너 번씩 실어 나르곤 했습니다. 얼마나 엔진 소리가 컸던지 성도들이 ‘탱크’라고 불렀습니다. 엔진 문제로 가끔씩 멈추어 서기도 하였습니다. 어떤 때는 기름이 바닥이 나서 차를 길에 세워 놓고 주유소에 가서 기름을 사다가 넣으면 다시 가는 차였습니다. 1993년 여름에 교인수련회를 위하여 교우들을 싣고 지리산으로 올라가다가 엔진에 불이 나서 당황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한 번은 난곡에 살고 있던 동생의 집을 방문했는데 내리막길에 세워 놓은 토픽의 주차 브레이크가 풀려서 하마터면 큰 사고를 낼 뻔 하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더 이상 사용할 수가 없어서 논산에 있는 폐차장으로 마지막 운전을 하고 가서 폐차를 시켰습니다. 그 차를 뒤로 하고 폐차장을 나오면서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았습니다. 마음속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저의 첫 자가용을 묻었습니다. 그 늙은 몸으로 개척교회를 위해서 많은 수고를 하고서 고철로 사라져 갔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교회는 조금씩 성장하여 갔습니다.
<9413>
토픽을 보내고 나서 차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도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서울 정릉에 있는 동암교회를 은퇴하신 장흥재 목사님께 연락이 왔습니다. 어떤 분이 당신에게 좋은 일에 쓰라고 천만원을 맡겨 주셨는데 그중에서 오백만원을 저에게 보내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돈과 부족한 것은 할부로 하여 12인승 ‘그레이스(9413)’를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GRACE)’였습니다. 고장이 안 나는 새 차, 계기판이 정상이어서 연료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를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는 새 차가 정말 좋았습니다. 새 차를 구입하여 몇 달을 지내다가 저는 그레이스와 또 이별을 해야만 했습니다. 강변교회 부목사로 부임하기 위해 1994년 12월 29일에 저는 그레이스를 후임자의 손에 넘겨주고 서울로 떠나왔습니다.
<7377>
강변교회에 부목사로 부임한지 며칠이 지나서 김명혁 목사님께서 어느 날 키를 하나 주시면서 오늘부터 심방용으로 사용하라고, 당신이 타시던 흰색 승용차 ‘액셀(7377)’을 넘겨주셨습니다. 액셀은 제가 처음으로 운전하게 된 승용차였습니다. 갑자기 강남에 와서 개인 승용차를 갖게 되었을 때 저는 큰 부자가 된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차는 김명혁 목사님의 체취가 묻어 있는 차였기에 특별한 애정을 느끼며 사용을 하였습니다. 당시 함께 사역하였던 이영란 전도사님과 심방 파트너가 되어 약 4년간을 부지런히 심방을 하며 다녔습니다. 그런데 액셀은 이미 나이가 많이 들어 있어서 자주 병원(카센터)에 가야만 했습니다. 추운 날은 시동이 걸리지 않을 때도 있었고 어떤 날은 고속도로를 주행 중에 시동이 꺼지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액셀은 청담동 한양아파트 앞에 위치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예상 치료비가 꽤 나와서 은근히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 때 비보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치료를 위해 리프트 위에 올려놓았는데 그만 리프트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액셀이 추락하여 회생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병원으로 달려갔을 때 액셀은 심하게 다쳐서 숨을 거둔 상태였습니다. 졸지에 저는 정이 많이 든 액셀과 이별을 하게 되었습니다.
<9399>
병원장(카센터 사장)은 저에게 애도의 뜻을 표하면서 한 가지 제안을 하였습니다. 자신이 사용하던 승용차를 대신하여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차는 7377과 나이와 출생 집안이 같은 회색 승용차 ‘액셀(9399)’이었습니다. 마치 죽은 7377이 살아 돌아 온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인이 잘 수리해하며 사용하였기에 7377보다 고장도 적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강변교회는 도곡동에 예배당을 짓고 1998년 3월에 이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9399를 타고 청담동에서 도곡동으로 출퇴근을 하며 지내는 중에 저는 또 하나의 차를 운전하게 되었습니다. 청담동 지역 강변교우들의 새벽기도회 참석을 돕기 위하여 승합차 ‘이스타나( )를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격주로 허기정 목사님과 함께 이스타나를 운행하며 교회를 섬겼었는데 그 이스타나가 지금도 여전히 건재하여 큰 몫을 감당하고 있는 것을 보면 대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이스타나를 구입하는 심부름을 당시 부목사였던 제가 직접 하였기에 남달리 더 애정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1999년 8월 말에 저는 갑자기 은곡교회 담임목사로 청빙을 받아 강변교회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9399와 이별을 또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은곡교회에 담임목사를 위한 승용차가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신 김명혁 목사님은 9399를 가지고 가도록 배려하여 주셨습니다. 낮선 곳으로 시집을 가는 저를 9399가 따라온 것입니다. 9399를 타고 다니며 강변교회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달래 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9399와의 생활도 오래 가지를 못했습니다. 9399 역시 나이가 너무 많아서 앓아누워 병원에 가는 날이 많았습니다. 9399는 그 후 어느 집사님의 초보 운전 실습용으로 1년을 더 지내다가 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6106>
제가 은곡교회에 부임한지 몇 달이 못 되어서 장로님 한 분이 뉴질랜드로 이민을 가시게 되었습니다. 그 장로님은 떠나시면서 당신이 타시던 다섯 살 된 승용차 ‘크레도스(6106)’을 저에게 선물로 주고 가셨습니다. 그 차는 이제까지 탔던 승용차와는 달리 중형의 등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 자란 자녀들과 함께 타도 전혀 부족함이 없는 과분한 차였습니다. 당신이 아끼던 차를 주고 가신 그 장로님의 따뜻한 마음으로 탈 때마다 고마움을 느끼게 하는 6106이었습니다. 그 차에는 그 장로님의 가족사진이 햇빛 가리개 안쪽에 붙어 있었는데 저는 그 사진을 보며 그 가족을 위해 가끔씩 기도하곤 했습니다. 크레도스는 약 7년 동안 저를 싣고 봉천동의 좁은 골목은 물론이고 전국 어디든지 거침없이 달려가곤 하였습니다.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크레도스와의 이별도 예상치 않게 갑자기 찾아왔습니다. 강변교회가 저를 김명혁 목사님 후임으로 결정하게 됨에 따라 여러 날의 고민과 기도 끝에 2007년 7월 1일 저는 은곡교회 담임목사직을 사임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으로 크레도스와의 7년여 사랑도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2007년 8월 18일 오후 6시 경에 저는 미시시피 잭슨공항에 가족들을 이끌고 도착하였습니다. 미리 와 계시던 어느 목사님의 차를 타고서 숙소인 리폼드신학교 영빈관인 화이트하우스에 도착하여 짐을 푸는 것으로 미국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도착 다음날이 토요일이었는데 차가 없어서 아무 곳도 가지 못하고 학교 안에 갇혀 지내야 했습니다. 약 2주간 동안은 차가 없이 지냈습니다. 교회에도, 마트에도 누군가의 차를 얻어 타야만 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렌트카를 사용하기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만난 차가 'IMPALA'였습니다. 지금은 차량 번호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 차는 우리들의 발이 되어 주었습니다. 딸을 학교에 아내와 아들을 ESL 강의에 데려다 주고 데려 오는 것이 저의 새로운 일과가 되었습니다. 그 차를 운전하여 뉴올리언즈, 오클라호마주 털사에 다녀오기도 하며 9월 한 달을 사용하다가 애틀란타 공항에 반납하는 것으로 헤어졌습니다. 10월 한달은 아이들을 잭슨에 두고 캐나다와 미국 일부를 비행기로 여행하느라 차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10월 31일에 다시 잭슨으로 돌아오면서 두 번째 렌트카를 만났습니다. 이번 차는 'MALIBU'였습니다. 그 차에 가족들을 다 태우고 잭슨을 출발하여 애틀란타, 샬럿, 버지니아, 워싱턴DC, 필라델피아, 뉴저지, 뉴욕, 시라큐스, 나이아가라, 토론토, 디트로이트, 멤피스 등을 여행하였습니다. 저는 귀국하기 위해서 11월 말에 여행용 백 8개를 다시 그 차에 싣고 그 위에 가족들을 앉히고서 플로리다 주의 몇 개 도시를 더 여행한 후에 12월 10일 애틀란타 공항에서 그 차와 이별을 하였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하와이에 들렸는데 친구 목사님이 게스트하우스와 밴을 제공해 주어서 하와이 전역을 구석구석 둘러보고 12월 18일 인천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조인성 장로님과 정영휘 장로님께서 마중을 나와 주셨습니다. 그 날 처음으로 '스타렉스'4692를 만났습니다. 요즈음 장영환 전도사님의 운전으로 심방 때마다 잘 이용하고 있습니다.
<1984>
지난 5월 7일 저는 1894를 만났습니다. 제가 타기에 너무도 좋은 차였습니다. 특히 놀란 것은 1984는 제가 결혼한 해라는 사실입니다. 이제 1984와 함께 펼쳐질 새로운 역사를 기대하며 잘 사용하여 주님께 영광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성도 여러분도 위하여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잘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안에서 평안하십시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