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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태성 목사 [ E-mail ]
  제 11회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수련회 설교 (2009. 6. 15)
  

잘 박힌 못
허태성 목사 (강변교회)
<전도서 12장 11절>
지혜자들의 말씀들은 찌르는 채찍들 같고 회중의 스승들의 말씀들은 잘 박힌 못 같으니 다 한 목자가 주신 바이니라

순종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만 도무지 제가 설 자리가 아닌 것 같은 불편한 마음이 이 시간까지 제 마음에 있습니다. 제가 여러 목사님들 앞에서 설교를 하는 것은 제 생애에 있어서 첫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여러 선배 목사님들이 많이 계신 이 자리에서 감히 무슨 설교를 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어떻게 이 시간을 감당할 수 있을까 기도하는 중에 성령께서 저에게 깨닫게 하시고, 가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좋겠다 하는 그런 생각을 주신 것을 잠깐 여러분과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잘 아시는 대로 솔로몬의 전도서에 나오는 마지막 한 부분입니다. 솔로몬은 전도서에서 인생의 허무함 등등 여러 가지를 주욱 설명하다가 마지막에 가서 그동안 자기 자신이 말해온 여러 가지 것들이 자기 스스로 생각해낸 것이 아니고 아마 어떤 스승의 말씀을 모아서 받아서, 자기도 깨닫고 그 깨달은 것을 전한 것임을 이야기합니다. "지혜자들의 말씀들은 찌르는 채찍 같고, 회중에 스승들의 말씀은 잘 박힌 못 같으니 다 한 목자가 주신 바이니라" 여기 말씀 중에 '잘 박힌 못'이라는 부분이 있어서 그것을 그냥 제목으로 잡았습니다.

올 봄에 남산에 오랜만에 갔다가 거기서 컴퓨터로 그림을 그려주는 분이 계셔서 제 아내랑 컴퓨터로 사진을 하나 찍었습니다. 액자에 넣어서 집에 와서 벽에다 걸었습니다. 그런데 불과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뭔가 쨍그랑 소리가 나더니 벽에 걸었던 액자가 떨어졌습니다. 콘크리트 벽이었기 때문에 못이 잘 박히지 않아 그만 그 액자는 떨어지고 유리는 깨지고 말았습니다. 그랬던 일이 얼마 전에 있었습니다. 못이 좀 잘 박혔더라면 그 액자가 안전했을텐데, 못이 잘 박히지 못해서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한국 사회는 요즘 많이 요동치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가 이렇게 요동치는 것은 사실 한국 교회가 흔들리고 있는 반증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한국 교회가 흔들리고 있다고 하는 것은 한국 교회의 말씀과 또 목회를 맡은 목회자들이 어쩌면 잘 박힌 못처럼 견고하게 하나님 말씀 가운데 서있지 못해서 그런 것은 아닌지, 저도 한국 교회 목회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 한국 사회의 혼란스런 모습을 볼 때마다 제게 못이 잘못 박혀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여기 '잘 박힌 못'이라고 하는 '못'을 공동번역 성서는 '말뚝'이라는 말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말뚝. 저는 어렸을 때 시골에서 자랐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거나 여름방학이 되면 소를 몰고 들판에 나가서 풀을 뜯기는 그런 일을 하곤 했습니다. 어떤 때는 아침에 소를 몰고 나가서 소가 풀을 뜯어먹을 수 있는 곳에 매어 놓았다가 저녁이 되면 소를 끌어오는 그런 일을 했습니다. 그때 말뚝을 단단히 박지 아니하고 저녁에 가보면 소가 그 말뚝에서 고삐를 빼가지고 어디론가 다른 데로 도망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소를 찾느라 참 애를 먹었던 적이 있습니다. 말뚝이 잘 박혀 있으면 소가 제자리에 있을 텐데 하는 후회를 하곤 했습니다.

이 앞에 나오는 '채찍'은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천천히 가는 말이나 소를 좀 빨리 가도록 하기 위해서 사용합니다. 이렇듯 '채찍'은 게으르고 제자리에 머무르려고 하는 자에게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채찍'이라는 말을 공동번역 성서는 '송곳'으로 번역했습니다. 송곳의 용도는 여러분도 이런 경험도 해보셨겠지만 공부하다가 졸리거나 할 때 송곳으로 살짝 찔러줘서 정신을 차리게 하는 용도로 사용한 적이 있을 줄 압니다.

이렇게 비유로 나오는 '채찍'이나 '못'을 통해서 교훈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목회자가 정말 하나님 말씀을 송곳으로 알아서, 또 채찍으로 알아서 못으로 말뚝으로 이해를 하고, 목회자들부터 정신을 차리고 게으르지 않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고 제자리에 있어야 할 그곳에 견고히 있다면, 아마 한국 교회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쓰임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솔로몬은 그런 생각에서 회중에 스승들의 말씀을 모아서 전도서나 잠언집을 낸 것으로 보여집니다.

여러분도 아마 정신이 좀 혼미해질 때라든지, 아니면 게을러질 때라든지 딴생각이 들 때, 다시 정신을 차리기 위한 잘 박힌 못과 같은 것들을 가지고 있을 줄로 압니다. 어떤 분은 성경을 읽다가 깨달은 것을 적어두고 늘 자기를 채찍질 하는 분도 있으실 것입니다. 또 선배 목사님이나 신학교 때 영향을 받은 교수님으로부터 들은 말씀을 평생 가슴에 품고서 처음 신학을 할 때, 아니면 처음 안수를 받을 때 그 초심이 사라지려 할 때마다 다시 그 말씀을 보면서 원위치로 돌아가는 그런 일을 누구든지 다 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가끔 나태해지거나 아니면 마음이 흐트러지거나 그럴 때 다시 정신을 차리는 못으로 사용하는 제 신학교때 스승님의 말씀을 소개하는 것으로 남은 설교의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참 감사하게도 저는 합동신학대학원에서 박윤선 박사님의 제자가 될 수 있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제가 입학해서 마지막 한 학기를 가르쳐 주시고 돌아가셨는데, 그 분의 제자가 되었다는 것이 굉장히 자랑스럽습니다. 또 지금 제 스승이자 전임자이신 김명혁 교수님의 가르침도 늘 마음에 새기고 그것을 따르려 하고 있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이 돌아가시기 3년 전, 졸업식장에서 졸업생들에게 이런 채찍을, 이런 송곳을 주고 가셨습니다. 그래서 합신에서 공부하신 박 목사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기억하면서 자신이 나태해지려 할 때마다, 딴 생각이 들려 할 때마다 자신을 채찍질하고 다시 정신을 차립니다. 제가 짧은 것이기 때문에 읽기만 해도 목사님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이 되어서 읽겠습니다.

"형제들이여, 나는 여러분들에게 몇 가지 중요한 것을 묻고 싶습니다. 세월은 빠르고 기회는 오직 한 번만 있는 것이니 옳은 길로만 매진하는 생활이 여러분의 한평생의 심장의 고동과 함께 계속 되어야 할 줄 압니다.

<마태복음 21장 13절>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강도의 굴혈'이란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 아시지요? 우리가 육체의 이익을 위해 성직을 이용하는 때에 주님이 우리를 책망하실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갈라디아서 6장 3절>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스스로 속임'이란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 아시지요? 우리가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알고 교만함이 아니겠습니까? 남에게 속는 것도 마음 아픈 일인데 스스로 속은 결과는 마침내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한 달란트 받았던 자, 영적 성장이 없는 자와 같이….

<유다서 1장 19절>
이 사람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은 없는 자'란 말씀이 누구를 가리키는지 아시지요? 성령의 감동에 대한 분별력은 없고 그것을 받으려고 힘쓰지도 않는 자가 아니겠습니까? 진정한 교역자는 성령의 감화로 행함이라.

<마태복음 23장 27절>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회칠한 무덤'이란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 아시지요?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오래전부터 막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문제시 하지 않고 인간관계만 앞세워 사람에게 아첨하며 외식하는 교역자를 가리키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요한복음 10장 12절>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삯꾼'이란 말씀이이 누구를 가리키는지 아시지요? 순전히 생계를 위하여 다니는 교역자를 가리키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사람들에 대한 책망의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라고 하신 그 말씀을….

<마태복음 25장 21절>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란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시지요? 적은 일을 할지라도 진실되이 행함이 큰 상급을 받을 만하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감당할 능력은 없으면서 큰 일을 맡는 자는 자동적으로 본의 아니게 외식할 수 밖에 없겠지요.

<고린도전서 15장 31절>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날마다 죽노라'란 말씀의 뜻 무엇인지 아시지요? 날마다 죽음 앞에서 나 자신을 검토해 보는 기회를 가짐이 참되이 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마태복음 6장 5절>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란 말씀의 뜻이 무잇인지 아시지요. 은밀 기도는 하기 싫어하고 공석 기도에만 잘 응하는 자가 있다면 그를 기도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기도는 신자의 환란계와 같습니다. 올바른 기도 생활의 정도는 그 사람의 성결의 정도를 보여줍니다."

박윤선 박사님은 저희를 가르치시면서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까 이럴 마음이 없는 사람은 지금이라도 신학교를 나가는게 좋다"고 심지어는 "3년 동안 공부를 다한 M.Div 과정을 마친 학생들에게도 이제라도 아직 늦지 않았으니까 안수 안 받는게 좋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선배 중에 한분은 정말 그 말에 도전을 받고 순종해서 신학 공부를 다 해놓고 안수를 안 받고 다른 직업을 가진 선배도 한분 나왔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어쨌든 목회자들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박힌 못처럼 마음속에 간직하고 흔들리지 않으면 우리가 목회하는 교회가 흔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흔들리지 않으면 사회도 교회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가지고 계속 교회를 바라보리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이 말씀처럼 그렇게 잘 살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제 심장에 잘 박힌 못처럼 박아놓고 가끔씩 이 말씀을 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성경 표지에다 이 말씀을 복사해서 넣고 목사로서의 자세가 흐트러지고 적당히 하려는 마음이 들고 또 세속적인 유혹이 저에게 닥쳐올 때마다 다시 이 말씀을 붙잡고 '내가 왜 이 길을 가는가', '내가 왜 목회자로서 지금 이 자리에 있어야 하는가'를 스스로 찔러 보고 채찍질해 봅니다.

사실 여기 오신 목사님들은 단순히 어떤 교회 성장 세미나에 오신 것이 아니고 어떻게 하면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된 목회를 감당할 것인가 하는 그런 깊은 고민이 있어서 여기에 오신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하나님께서 저와 사랑하는 목사님들에게 은혜를 주셔서 하나님 앞에 가는 그날까지 늘 자기를 돌아보면서 견고하게 서서 우리에게 맡겨진 양떼와 우리에게 부탁하신 이 나라를 정말 잘 이끌어가는 종된 책임을 잘 감당할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인쇄하기] 2009-09-22 16: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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