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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태성 목사
  정암 박윤선 목사님을 회고하며
  

정암 박윤선 목사님을 회고하며
강변교회 허태성 목사

지금으로부터 22년 전인 1987년 11월 나는 신학교에 가는 문제로 기도하며 고민하고 있었다. 문제는 '어느 신학교를 가야하나?'였다. 하나님께서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있는 나를 합동신학교로 인도하셨다. 아마 지금도 그러하리라 생각하는데, 당시 합신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타교파의 교회에서 신앙생활하고 있던 나는 두 분의 목사님의 추천서를 받아야만 했다. 처음 내가 집사로 섬기며 몸담고 있던 감리교회의 담임목사님은 내가 합신을 지원하는 것을 반대했다. 그 이유는 그 목사님이 이해하기로는 합신은 무인가(?) 지방 신학교인데다 박윤선 목사님이 근본주의자라는 것이었다. 한국에 많은 신학교가 있는데 왜 하필이면 박윤선 목사님이 세운 학교를 가려고 하느냐는 질문에 나는 뭐라고 딱히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왜냐하면 나는 정암 박윤선 목사님을 잘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 목사님은 마지못해 하면서 추천서를 써 주셨다. 또 하나의 추천서를 받기 위하여 이번에는 대학생 시절에 잠시 신앙생활을 했던 성결교회의 목사님을 찾아갔다. 그 목사님은 내가 합신을 지원하려 한다는 말을 들으시고는 박윤선 목사님이 계신 학교라면 다른 것은 아무것도 묻지 말고 무조건 합신을 가라고 기뻐하며 추천서를 써 주셨다. 아무튼 나는 두 분의 추천서와 함께 합신을 지원했고 하나님의 은혜로 합격이 되어 '합신가족'의 일원이 되었다. 나는 신학교에 들어올 때까지도 박윤선 목사님을 직접 뵌 적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잘 알지를 못했다. 당시 어떤 동급생 학우는 멀리 부산에서부터 박윤선 목사님에게 배우기 위하여 합신을 지원했다는 말을 들을 때 나는 그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아마 나처럼 신학계의 물정을 모르고 둔했던(?) 사람이 또 있었을까? 나도 박목사님으로부터 한 학기라도 배웠으니까 그 분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게 되었고 어디를 가든지 내가 그 분의 마지막 제자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게 된 것을 생각하면 나의 합신 지원을 반대했던 그 목사님을 어쩌면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내 생각에 박 목사님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진 존경스런 학자요 목사님이셨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많이 오해되거나 전혀 알려지지 않은 분이라고 여겨진다.

그 유명한 88서울 올림픽이 개최되던 해에 합신에 입학하여 공부하게 된 나를 비롯한 합신 12기 학우들은 정암 박윤선 목사님의 마지막 학기 제자가 되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다. 박목사님은 우리들에게 변증학을 가르쳐 주셨다. 목사님은 어쩌면 당신께서 이번 학기가 마지막이 될 것을 아시고 계셨던 것처럼 온 힘을 다하여 강의실이 떠나갈 것 같은 우렁찬 음성으로 열강을 하셨다. 우리들에게 개혁주의 신학 사상을 심어주시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셨다. 지금도 나는 박목사님의 강의 내용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특히 많이 강조하신 내용이 '인간의 마음이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하다는 것'(렘17:9)과 '자기의 마음을 믿는 것은 미련하다는 것'(잠28:26)이었다. 그래서 성경말씀을 따라 '계시의존사색'에 힘써야지만 바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 등이다. 내가 합신에 와서 처음 뵙게 된 박목사님의 얼굴 표정은 기대했던 것처럼 환하거나 밝은 것이 아니었다. 내가 느끼기에는 무엇인지는 몰라도 박목사님의 얼굴에는 근심이 있었고 고통이 있었다. 아마 그것이 한국교회에 대한 거룩한 염려와 자신의 생명이 다하여 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제는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이 표출된 것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주는 아니지만 어떤 날은어린 아이처럼 환하게 웃으실 때가 있으셔서 그나마 우리들도 긴장을 풀고 웃을 수가 있었다.

1988년 6월 30일 신학교 첫 학기 시험을 마친 우리들은 학교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기도원에 퇴수회를 갖기 위해서 모였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모임을 갖고 있던 우리들에게 비보가 들려왔다. 박윤선 목사님께서 운명하셨다는 소식이었다. 병원에 입원해 계신 것을 알고 건강회복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던 우리들을 포함한 합신의 교수, 직원, 동문, 학생 모두가 큰 충격을 받았다. 정말 큰 별이 떨어졌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았다. 학교로 돌아온 우리들은 곧 장례식 준비에 동참하게 되었다. 당시 1학년이었던 우리들에게 부여된 책임은 합신 뒷산에 학교에서부터 박목사님 묘지로 지정된 곳까지 길을 닦는 것이었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우리들은 나무를 베어내고 땅을 파고 리어카로 흙을 실어 나르는 일을 하였다. 삼일 후 많은 이들의 눈물과 탄식 속에 장례식이 치러졌고 합신 뒷산에는 소박하다 못해 초라한 묘지가 하나 생겨났다. 그 유명한 대 신학자가 아주 낮은 봉분 밑에 자신의 고단했던 육신을 뉘어 놓고 찾아오는 모든 이들에게 오늘도 설교 사역을 계속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마6:34) 여름방학을 마치고 2학기가 시작되어 다시 찾은 학교는 허전함과 쓸쓸함 그 자체였다. 교수님들도 힘이 쭉 빠져 있었고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합신이 과연 계속 존속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박목사님의 빈 자리가 그렇게 크게 느껴진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정말 우리들의 스승이셨으며 목자였던 것이다.

합신을 졸업한 후 나는 목회를 하면서 돈을 좀 모아서 박윤선 성경주석 전질을 구입하였다. 그리고 설교를 준비할 때마다 주석을 본다. 어떤 때는 설교의 영감을 얻기 위해서 미리 보기도 하고 어떤 때는 설교 원고를 다 작성해 놓고 내가 딴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에서 박목사님 주석으로 검사를 받는다. 공주에서 교회 개척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어느 날 노회 내의 한 선배 목사님으로부터 양면이 코팅되어 있는 종이 한 장을 선물로 받았다. 그것은 박목사님의 친필 휘호만을 모아서 축소 복사한 것인데 거기에는 다음 다섯 개의 글귀가 한자로 적혀 있다. "기도일관", "침묵정진", "진실노력", "추구성결", "지사충성"이란 글이 다. 나는 이것을 항상 내 방의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놓아두고 읽어보며 그 교훈을 따르고자 노력한다. 그 휘호가 지금도 이 글을 쓰고 있는 강변교회 담임목사실 탁자에서 여전히 나를 지켜보며 훈계하고 있다. 나는 박윤선 목사님 육성이 녹음되어 있는 설교 테잎을 구입하여서 가끔씩 듣는다. 그리고 목사님의 얼굴 표정을 떠올려 본다. 그 분명한 진리에 대한 확신, 그 열정, 그 간절함을 절반이라도 닮고 싶다.

지난 6월 15일 밤 나는 안성 사랑의교회 수양관에서 개최된 제 11회 한국목회자협의회(회장 손인웅 목사) 전국수련회 한목협의 밤에 설교자로 초청을 받아 가서 설교를 한 적이 있다. 한국의 유수한 교단에서 교회 갱신을 고민하며 목회하는 400여명의 목사님들에게 나는 나의 스승인 박윤선 목사님이 내 마음에 심어주신 교훈을 소개하였다. 그 설교의 내용은 박목사님께서 1986년 2월에 합신 제6회 졸업생들에게 훈사로 주신 내용을 원문 그대로 소개한 것이었다. 설교가 끝났을 때 많은 분들이 은혜를 받았다며 나에게 찾아와 감사의 인사를 하였다. 어떤 분들은 그 내용을 자신의 메일로 보내 달라고까지 부탁하였다. 그리고 내가 참 좋은 스승을 두고 있다고 부러워하기까지 하였다. 그 설교는 후에 합동측 교회갱신협의회 기관지인 "소리"에 이달의 말씀(제목 : 잘 박힌 못, 본문 전12:11)으로 소개되기까지 하였다.

이제 이 글을 마치려한다. 참으로 부족한 자가 박윤선 목사님의 제자가 되었고 그 교훈을 마음에 새기고 목회할 수 있게 된 것을 감사드린다. 목회를 마치는 그 날까지 그 가르침을 붙잡고 살며 또한 전하려고 한다. 훗날 천국에서 정암 박윤선 목사님을 만나게 되면 목사님이 가르쳐 주신 것이 있어서 그래도 조금이나마 바른 목회를 힘쓰다 왔노라고 고백하며 감사드리고 싶다. 좋은 스승을 만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인쇄하기] 2009-11-13 06: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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