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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태성 목사
  개혁신보 기고 - 시론(2009.12.5)
  

기독교개혁신보 시론 허태성 목사(강변교회)

일본 여행 단상

지난 10월 말에, 동경에서 사역중인 신학교 입학 동기인 곽근우 선교사가 시무하고 있는 히까리가오까교회의 헌당식에 참석하기 위하여 일본을 다녀왔다. 일본을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번 선교여행에서 가진 몇 가지 경험은 일본 선교를 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일원으로서 나 자신과 한국사회와 한국교회를 돌아보며 고민하고 회개하게 만든다.

어느 날 아침 일찍 나는 조반을 먹기 전에 동네 산책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생리적인 욕구를 해결하기 위하여 길 가에 있는 대형 마트에 들어갔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찾아보았지만 화장실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아침부터 물품 정리로 분주한 여직원에게 화장실이 어디 있는지를 물어 보았다. 그 여직원은 환한 미소로 나를 쳐다보더니 자신을 따라 오라고 하면서 화장실 입구까지 안내해 주었다. 그 표정과 태도가 얼마나 친절하던지 내가 무안할 정도였다. 고마워서 몇 가지 물품을 사가지고 숙소로 돌아오다가 이번에는 길을 잃고 말았다. 아무리 숙소를 찾아 가보려고 애를 썼지만 더 낯선 곳으로 나는 가고 있었다. 그래서 스스로 길을 찾을 것을 포기하고 애완견을 데리고 아침 산책을 나온 40대의 남성에게 내 사정을 이야기하고 길을 묻게 되었다. 나는 일본어를 못하고 그는 영어를 못하여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는 가던 길을 돌이킨 후 정 반대 방향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내가 찾으려고 하는 그 건물이 보이는 곳까지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그에게서 조금이라도 귀찮아하는 표정을 읽지를 못했다. 몇 년 전에 동경을 처음 방문했을 때 나는 어떤 선교사님의 안내로 뉴스에서만 보았던 그 유명한 야스꾸니 신사를 찾아가고 있었다. 일본에서 오래 사역하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그 선교사님은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당황하고 있었다. 그래서 차창을 내리고 옆 차선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던 승용차를 향하여 도움을 요청하였다. 거의 70대로 보이는 반백의 신사가 얼굴을 드러냈다. 그는 처음에는 몇 마디 설명을 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알아차리자마자 그 신사는 자신의 차를 따라오라고 하여 우리의 목적지 입구까지 데려다주고 나서 중후한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어 주고 자신의 갈 길로 갔다. 그들이 얼마나 친절하던지 나는 감동을 받고 말았다. 그리고 깊은 생각에 빠졌다. 어찌하여 저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낯선 이방인에게 저렇게도 친절할 수가 있을까? 어찌하여 나는 은혜 받고 구원받은 신자요 목사임에도 불구하고 저들이 가지고 있는 미소와 친절이 없는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던 어느 날 나는 일본에서 날라 온 낯선 소포를 받게 되었다. 그것은 하룻밤 머물렀던 동경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지방의 한 호텔에서 온 것이었다. 그 속에는 작은 일본 과자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왜 그 호텔에서 나에게 과자를 보냈는지를 곽근우 선교사를 통하여 듣게 되었다. 내가 투숙하였던 그 호텔은 전통적인 일본 양식의 다다미방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왠지 불쾌한 냄새가 화장실 문을 열면 났다. 나는 단지 오래된 호텔이어서 그런 줄로 알고 하룻밤을 보냈다. 그런데 곽선교사가 내가 떠난 후에 그 호텔에 이런 문제가 있었음을 전화한 모양이었다. 그 호텔측은 너무도 미안하다면서 한국으로 나의 주소를 문의하여 사죄의 의미로 과자를 보내온 것이었다. 물론 그것을 단순히 고객을 놓치지 않으려는 상술이나 서비스 정도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게는 그것이 그냥 단순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왜 저들은 저런 친절과 호의를 베푸는 것인가? 왜 피선교국가의 저 무지몽매한(?) 사람들이 세계에서 선교를 가장 열심히 하고 있는 나라인 한국의 목사를 부끄럽게 하는 것일까? 저들이 비정상인가? 아니면 우리가 잘못되어 있는 것인가? 나는 오늘도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성화를 설교하는 목사이다. 우리나라는 어디에서든지 눈을 들고 둘러보면 곳곳에서 십자가를 발견할 수가 있다. 일본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십자가 하나 찾기가 모래벌판에서 바늘을 찾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그들은 수많은 신사와 사찰과 귀신단지 속에서 산다. 그래도 우리보다 더 정직하고 친절하다는 데 아무도 이견이 없다. 얼마 전 부산에서 있었던 화재로 인해 가족을 잃은 일본인들이 보여 준 침착하고도 절제된 모습도 나에게는 예사롭게 보이지가 않는다.

이제 우리도 기독교를 유창한 말로나 여기저기 십자가를 세우는 것만으로 드러내지 말고 우리의 정결하고 사랑 넘치는 삶으로 보여 주어야 하지 않을까? 저물어 가는 2009년의 끝자락에서 우리 주님의 성탄을 앞두고 부끄러운 자화상을 꺼내놓고 뜨뜻한 얼굴로 기도를 드린다. 주님, 우리나라가 아니 한국교회 신자들이 저들보다 더 환한 미소로 친절을 베푸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인쇄하기] 2009-12-05 12:3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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