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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혁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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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양식" 제69집(국방부 발행, 2000. 4. 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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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양식" 제69집(국방부 발행 , 2000. 4. 20)
집필: 유영숙, 김명혁, 김영희
* 여기는 김명혁 목사의 집필 내용만 실림
1. "모든 경험은 유익하다"
2. "건망증도 유익하다"
3. "고난의 경험도 유익하다"
4. "아픔의 경험도 유익하다"
5. "인생은 즐거운 것이다"
6. "인생은 만남이다"
7. "인생은 인사드리는 삶이다"
8. "인생은 나눔이다"
9. "죽는 것도 유익하다"
1. "모든 경험은 유익하다"
내가 가지는 확신중의 하나는 우리가 당하는 모든 경험은 모두 유익하다는 것이다. 참으로 그럴까?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자기가 당하는 실패와 역경의 경험을 저주하며 자포자기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확신 있게 말한다. 모든 경험은 모두 유익한 것이다 라고. 고난의 경험은 말할 것도 없고 실수와 실패의 경험까지라도 만약 그와 같은 경험을 용기와 지혜를 가지고 바로 극복할 수만 있다면 모든 경험은 유익한 것이 되고 만다.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더욱 더 그러하다. 모든 경험이 냉혹한 기계적 운명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섭리의 손길에 붙잡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11살 때 부모와 고향을 떠나 홀로 38선을 넘은 경험도, 내가 나의 사랑하는 외아들 철원이를 뇌수정이란 불치의 병으로 4살 나던 해 먼저 하늘로 떠나 보내게 된 경험도, 남산에 붙잡혀 가서 심문과 협박을 받은 경험도, 그리고 나의 연약함으로 범한 나의 모든 실수와 실패의 경험도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의 손길 가운데서 나에게 모두 유익한 경험들로 바꾸어지고 말았다. 어떤 의미에서 그와 같은 경험들은 나로 하여금 보다 성숙한 사람으로 만들게 한 축복의 경험들이 되었다고 하겠다.
죠니 에릭슨은 어떤 의미에서 불행과 비극의 주인공이었다. 열 여덟 살 때까지만 해도 죠니는 예쁘고 총명하고 인기 있는 소녀였다. 그런데 죠니는 열 여덟 살 때 다이빙을 하다가 그만 머리를 부딪혀 목 이하의 전신이 마비가 되어 평생토록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다. 한 동안은 삶을 저주하고 하나님을 반항하기도 했다. 그는 일부러 하나님이 싫어하는 죄들을 마음속으로 그리고 상상적으로나마 의식적으로 범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비극은 결국에 가서는 그를 위로와 용기를 전해주는 아름다운 천사로 만들어 주었다. 그는 지금도 휠체어를 타고 다니며 몸을 가누지 못하는 불구자이다. 그러나 필자가 십여 년 전에 그녀의 손을 붙잡고 인사를 나누었을 때 필자는 그녀에게서 천사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그의 가슴은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으로 넘쳤고,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와 얼굴에 비치는 아름다운 미소는 절망 가운데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소망을 불어 넣어주고 있었다. 죠니 에릭슨은 지금도 곳곳을 방문하며 노래와 간증과 미소로 수많은 사람들을 붙들어 일으키는 생의 안내자가 되고 있다. 입에 붓을 물고 그린 그의 그림들은 그림 그림마다 영감이 넘치는 예술품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그림들은 장애인들에게는 용기를, 그리고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게 되었다. 죠니는 한 때 레이건 대통령의 "국가 장애인 자문위원"으로 봉사하기도 했다.
죠니는 그의 자서전 「죠니」에서 "지금의 불구의 삶을 어느 무엇과도 바꾸지 않겠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우리는 그와 같은 고백을 들으며 인생의 가치와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를 심각하게 생각하여 보게 된다. 그것은 반드시 건강과 부귀에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불구와 가난과 고난의 삶 속에서 찬란하게 빛날 수도 있다는 역설적인 진리를 발견하게 된다.
우리 주변에는 지금도 감당하기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역경과 고난의 과정을 통과하고 있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자기의 연약성과 사회악의 강포함에 굴복한 나머지 좌절의 늪에 빠져있는 사람들도 무수하다. 이와 같은 사람들에게 나는 여전히 나의 신념을 말하고 싶다. 우리가 당하는 모든 경험은 모두 유익한 것이라고. 입학시험에 낙방한 낙제생들에게도 사업에 실패한 실직자들에게도 나는 같은 말을 한다. 실패의 경험도 결국 유익한 것이 되고 만다고.
낙심하지 말자. 용기를 잃지 말자. 고난의 주님과 영광의 주님을 바라보며 세상을 이기며 꿋꿋이 살아가자. 베임을 당한 그루터기에서도 싹이 나고 가지와 줄기가 돋아나는 법이다.
2. "건망증도 유익하다"
나는 건망증이 많다. 사람도 잘 몰라보고 물건도 잘 몰라보고 때로는 집도 잘 몰라보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실수를 많이 한다. 그러나 그것도 아주 나쁜 것은 아니다. 모든 경험이 유익하다면 건망증의 경험도 유익하다. 건망증은 내가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하나의 평범한 인간임을 있는 그대로 소박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범한 건망증의 경험 몇 가지를 적어 본다.
"이 가구 언제 가져왔어?"
어느 날 저녁, 사무실에서 돌아와 아파트 출입문을 열고 집으로 막 들어섰다. 그런데 전에 보지 못하던 멋진 가구들이 아파트 거실에 놓여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의아해서 큰소리로 물었다. "아니 이 가구 언제 가져왔어?"
바로 그 순간 방안에서 젊은 여자가 나와서 나를 바라보고 어안이 벙벙해 하는 것이 아닌가. 나도 어안이 벙벙해서 말을 잇지 못하고 그 여자를 바라보기만 했다. '아차, 이게 내 집이 아니구나!' 이층은 틀림없는 이층인데 옆 동의 이층집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그만 집을 잘못 찾아서…" 중얼거리며 허겁지겁 그 집을 나섰다.
"이건 내 구두가 아닌데"
어느 날 밤, 불광동에 있는 대학생 선교회 회관에서 특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려는 참이었다. 사람들이 거의 다 회관에서 나가고, 내가 제일 마지막으로 나오는 중이었다. 그런데 출입문 곁에 있는 신발장에서 아무리 찾아도 내 구두가 눈에 띄지 않는 것이었다. 구두 좀 찾아 달라고 했지만 도무지 내 구두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곳에는 누런 색 구두 한 켤레만 남아 있었는데 내가 신고 온 검은 색 구두는 아니었다. 회관 측에서는 그 구두라도 신고 가면 나중에 내 구두를 찾아서 보내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이건 내 구두가 아닌데…" 라고 말하며 차라리 실내화를 신고 가겠다고 고집했다. 결국 나는 실내화를 빌려 신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서 아내에게 구두 이야기를 했다. 내 검은 색 구두는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고 누가 두고 갔는지 누런 색 구두 한 켤레만 남아 있었다는 말도 했다. 그러자 아내가 기 막혀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오늘 누런 색 구두를 신고 갔어요"
"내 옷이 어디 있지?"
1991년 5월, 시카고 휘튼 대학교 빌리 그레이엄 센터에서 개최된 "파트너십 선교 협의회"에 참석한 후 나는 숙소인 할리데이 인을 떠나 귀국하기 위해 시카고 공항으로 향했다. 손님 접대에 항상 친절한 최일식 목사가 나를 할리데이 인에서 공항까지 데려다 주었다. 출국 수속을 밟기 위해 체크인 데스크로 다가갔다. 항공사 직원이 비행기표와 여권을 제시하라고 했다. 그런데 비행기표뿐만 아니라 여권도 찾을 수가 없었다. 아니 비행기표와 여권을 안주머니 속에 넣어 두었는데 양복 웃옷이 아예 없어진 것이 아닌가. "아니, 내 옷이 어디 있지?"
그제야 내가 양복을 입지 않고 와이셔츠만 입고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할리데이 인에서 최 목사를 기다리다가 웃옷을 호텔 로비에 벗어 놓고 나온 것이었다. 그때 나는 오히려 최 목사를 나무랐다. "그래, 한 시간 반 동안이나 차를 타고 오면서 내가 웃옷을 입지 않은 것을 보고도 말 한마디 해주지 않았으니, 어찌 친구라고 할 수 있겠소?" 최 목사는 어이가 없다는 듯 대꾸도 하지 않았다. 물론 내가 예약한 비행기는 놓치고 말았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여전히 평안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유익하게 되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그런 일을 한두 번 당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 웃옷은 호텔 로비에 그대로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날 저녁 비행기를 타고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왔다.
3. "고난의 경험도 유익하다"
나는 한 평생을 돌아 볼 때 고난도 불행도 별로 당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어려운 일도 별로 없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말은 객관적인 서술은 아니다. 필자가 느끼는 주관적 고백이다. 필자가 고난도 불행도 어려움도 모두 유익하고 필요한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나의 어머니를 어릴 때 여의는 슬픔을 당했고 나의 사랑하는 아들을 먼저 보내는 아픔도 당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되었다. 내가 당한 슬픔과 아픔의 고난들은 나로 하여금 고난 당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위로하고 격려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했고 나로 하여금 인생을 보다 겸허하고 진실하게 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나의 어머니는 나를 극진히 사랑하셨다. 나에게는 여동생 하나와 남동생 둘이 있었는데 어머니는 항상 동생 하나는 10리쯤 멀리, 다른 동생 하나는 50리쯤 멀리, 그리고 다른 동생 하나는 100리쯤 멀리 두고 살지라도 나만큼은 언제나 어머니 곁에 두고 살겠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지금은 물론 정반대가 되었다.
어머니는 나를 극진히 사랑했지만 동시에 나를 엄격하게 훈련시키셨다. 아침에는 항상 일찍 일어나야 했고, 어렸을 때부터 이불 개고 방 청소하는 등의 일들은 스스로 해야만 했다. 때로는 어머니의 종아리 매를 맞으며 울기도 했다. 어머니는 참으로 진실하고 책임감이 강하신 분이셨다. 자신이 하신 말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을 지셨고, 자신이 빌린 돈은 반드시 기한 내에 갚곤 하셨다.
어머니는 일본에서 의학 공부를 하시던 중 신학 공부를 하시던 아버지를 만나 결혼하셔서 나를 낳으셨다. 그리고 한경직 목사님의 초청으로 갓난 아기였던 나를 데리고 신의주로 오셨다. 신의주에 계실 때 어머니는 애린원을 개원하시고 신의주 제이 교회 신자들의 병을 치료해 주시기도 했다. 평양 서문밖 교회로 옮긴 뒤 곧 투옥된 아버지를 돌보시기 위해서 사동 탄광을 한 달에 한두 번씩 왕래하곤 하셨다.
그 당시 나는 평양 제5인민학교 5학년에 다니고 있었는데 주일성수 문제로 거의 매주 월요일마다 학교에서 벌을 받곤 했다. 어머니는 나의 확고한 신앙적 신념을 이해하셨던지, 또는 나의 장래를 내다보셨던지 내가 남쪽으로 가겠다고 했을 때 그 어려운 요청을 허락해 주셨다. 나를 너무나 사랑하셨기 때문에 맏아들을 포기하는 가장 큰 아픔과 희생을 감수하신 것이었다.
내가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공부하던 어느 해 가을이었다. 편지 한 장이 날아왔다. 어머니에게서 온 편지였다. 나는 그 편지를 받아 떨리는 가슴으로 읽으면서 마음을 진정할 수가 없었다. 혼자 조용한 곳으로 가서 읽고 또 읽었다. 한 자 한 자에 어머니의 피맺힌 사랑이 깊고 진하게 배어 있었다. 나는 울고 또 울었다. 어머니의 편지는 편지라기보다는 절규였다. 어머니의 피맺힌 사랑의 절규는 다음과 같았다.
"내 아들 명혁에게, 9월 5일 네의 편지와 동시에 외로히 자라 성인이 된 내 아들 명혁이에 얼굴을, 더구나 훌륭하게 된 내 아들을… 나는 보고 십고나. 손이라도 한번 꽉 쥐어 보고 십고나. 이 내 기쁨을 지면상으로는 표현할 수 없다. 명혁아! 나는 네 말 그대로 오래오래 살아서 내 사랑하는 아들 만날 날을 기다리겟다. 몽중엔들 이저스랴 내 명혁이. 부디 건강하기를 축원하면서. 어머니 글 9월 29일."
너무나 짧은 절규였지만 그 속에는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었다. 말하고 싶어도 다 말할 수 없는 그 짧은 사연 가운데 혈육이 느낄 수 있는 사랑의 아픔과 기쁨과 슬픔과 안타까움과 소원과 간구가 다 들어 있었다. 나는 그 후 다시 한번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냈고, 어머니는 또다시 나에게 동생들의 소식과 함께 편지 한 장을 보내 왔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 후 나는 어머니의 편지를 항상 머리맡에 놓아두고 읽으면서 어머니를 생각하곤 했다. 그리고 어머니의 편지를 복사하여 한국에 있는 할머니와 이모들을 비롯한 여러 친척들에게 한 장씩 보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중앙정보부에서 집집마다 찾아와서 그 편지의 사본들을 모두 압수해 갔다고 했다.
내가 미국에서 12년간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해서 총회 신학교에서 교수하던 1977년 11월 어느 날 아침이었다. 학교로 가려고 집을 나서는데 어떤 사람 둘이 나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한 후 잠깐 시간을 내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잠깐 동안 자문 받을 일이 있는데 회사까지 같이 갈 수 없느냐는 것이었다. 시계를 보니 한 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나는 본래 귀가 커서 남의 말을 잘 듣는 터라 그 날도 그들의 말을 쉽게 믿고 차에 올라탔다. 그런데 나를 데리고 간 곳은 그 당시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중앙정보부 남산 지하실이었다. 그 곳에서 밤이 마치도록 두 사람이 나를 취조한 것은 내가 북한에 편지를 보낸 일과 일요일 학도 군사 훈련에 반대하며 주일 성수를 주장한 일 때문이었다. 나는 조금도 긴장하지 않고 아주 편안하고 당당한 마음으로 그들의 취조에 응했다. 그들은 나중에 내가 귀하게 간직하고 있던 어머니의 편지 원본마저 압수해 갔다.
어머니의 편지를 압수 당한 지 20여 년이 지난 1997년 1월 5일, 뜻밖에 어머니의 편지 사본 한 장을 이모님 한 분으로부터 전해 받았다. 그리고 50여 년만에 처음 보는 어머니의 예쁜 사진도 함께 전해 받았다. 나는 너무나 기뻤다. 30여 년 전의 감격이 되살아나는 것만 같았다. 나는 편지를 읽고 또 읽으며, 어머니의 피맺힌 사랑을 다시금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를 부르며 다음과 같은 글을 써 보았다.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 부르고 또 불러도 못다 부를 그 이름,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 부르고 또 불러도 좋고 또 좋은 그 이름,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 압수 당했던 어머니의 편지 사본을 20여 년만에 다시 찾아 읽고 또 읽고, 그리고 50여 년만에 처음 보는 어머니의 예쁜 사진을 보고 또 보면서 나는 어머니를 부르고 또 불러 보았습니다. 아,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 어머니는 너무나 예쁘고 아름답습니다
나는 나를 부르시는 어머니의 애절한 절규를 한 마디 한 마디 다시 들으면서 어머니의 가슴에 피 맺힌 아픔과 슬픔을 가슴으로 다시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나를 너무나 사랑하셨고, 너무나 사랑하시다가 나중에는 나를 남쪽으로 떠나 보내시는 가장 큰 희생을 감수하셨습니다. 어머니에게 있어서 맏아들을 스스로 잃는 것보다 더 큰 희생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어머니는 나를 위해서 스스로 가장 큰 희생을 감수하셨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 어머니로 하여금 가장 큰 희생을 치르며, 가장 큰 아픔과 슬픔을 안게 한 나의 불효를 무엇으로 갚아 드릴 수가 있사옵니까? 어머니, 나의 불효를 책하시고 또 책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도 보고 싶어하는 어머니에게 얼굴 한 번 보여 드리지 못했고, 그렇게도 잡아 보고 싶어하시는 손 한번 쥐여 드리지 못한 채 20여 년이 지났고, 30여 년이 지났으며, 이제는 50여 년이 지났습니다. 이 몹쓸 불효 자식을 책하시고 또 책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 나는 어머니가 너무나 보고 싶습니다. 철도 없이 어머니를 훌쩍 떠나 남쪽으로 온 다음 한 2년 동안 나는 어머니가 보고 싶어서 밤마다 남몰래 눈물을 흘리곤 했습니다. 물론 이모님들이 나를 잘 보살펴 주셨지만 나는 어머니가 너무나 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기도와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나는 부족함이 없는 한 생애를 살아 왔습니다. 아니 너무나 넉넉한 한평생을 살아왔습니다. 이것이 어머니에게 조그마한 위로와 기쁨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며, 하나님을 바로 예배하고 싶은 단 한가지 마음을 가지고 어머니를 떠나 남쪽으로 온 저를 하나님께서는 너무나 많이 사랑하셨고, 너무나 많이 축복해 주셨습니다. 마음껏 공부도 할 수 있게 해주셨고, 마음껏 하나님을 예배하며 섬길 수도 있게 해 주셨습니다. 어머니, 나는 병원에 가는 것도 잘 모를 정도로 건강하게 한평생을 살아왔습니다. 행복한 가정도 이루었습니다. 지금은 여러 가지 일들을 하지만 특히 북한동포돕기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 팔순이 훨씬 지나신 어머니께서 지금 살아 계시다면 나는 어머니를 마음껏 기쁘시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어머니의 몸도 씻겨 드리고 싶고, 음식도 대접해 드리고 싶고, 또 어머니의 품안에서 함께 잠도 자고 싶습니다. 어머니가 지금 하늘 나라에 계시다면 먼저 순교하신 아버지를 뵈올 터이니 어머니의 슬픔을 거두시고 위로와 기쁨을 아버지와 함께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요사이 나는 하나님께서 어머니를 많이 위로해 주시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합니다. 사실 이런 기도는 처음 드려보는 기도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 나는 어머니 뵈올 날을 날마다 기다리겠습니다. 먼저 천국에 간 어머님의 손자인 나의 사랑하는 아들 철원이, 나를 늘 칭찬해 주시면서 나에게 신앙의 뿌리를 심어 주신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 그리고 누구보다도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해 주신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를 뵈올 날을 기다리면서 하루하루를 바르고 진실하게 살아가겠습니다. 어머니가 진실하게 사는 법을 나에게 가르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어머니를 사랑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머니를 위로하시고 축복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1997년 1월 12일 불효자식 명혁 올림."
4. "아픔의 경험도 유익하다"
나는 나의 한 평생을 돌아 볼 때 가장 아프고 슬픈 일이 하나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나의 사랑하는 어린 아들 철원이를 먼저 하늘로 떠나 보낸 일이다. 그러나 그 일도 결국에는 값지고 귀한 축복으로 바뀌었다. 나는 철원이의 일 때문에 신앙도 겸손도 기도도 위로도 사랑도 배울 수 있었다. 그 일로 인해 수많은 불치의 환자들을 찾아가서 그들을 위로할 수도 있었고 그들을 주님께로 인도할 수도 있었다. 나는 철원이를 떠나 보낸 후 다음과 같은 글을 적었다.
"나의 사랑하는 아들 철원아! 고생과 수고로운 삶을 다 마치고 이제는 주님의 품안에서 고운 옷을 입은 동무들과 함께 주님을 섬기며 즐거워하는 사랑하는 아들 철원아! 네가 즐겨 부르던 찬송 소리가 지금도 아빠 귀에 쟁쟁하구나.
'예수께로 가면 기쁘리로다. 걱정 근심 대신 재미 많도다. 예수께로 가면 기쁘리로다. 나와 같은 아이 부르셨도다. 영화로운 곳에 있는 동무들 고운 옷을 입고 주를 섬기네.' 가사의 뜻을 되새겨 물으며, 몇십 몇백 번을 아빠와 함께 부르던 그 찬송가의 뜻이 정말 그대로 이루어졌구나!
'아빠, 걱정 근심이 아야 아야, 이렇게 아픈 거지? 재미 많은 게 뭐야? 아프지도 않고, 좋고 기쁜 거지? 아빠, 누구와 같은 아이 부르셨지? 이렇게 물어봐' '그래 철원아, 누구와 같은 아이 부르셨지?' '철원이와 같은 아이 부르셨지 뭐' '누가 부르셨나?' '예수님이 부르셨지 뭐' '철원아 네 마음이 슬프나 기쁘나?' '기뻐!' '왜 기쁜가?' '예수 님이 나를 사랑하시니까 기쁘지!'
사랑하는 아들 철원아! 견디기 어려운 그 아픔 중에서도 너는 그렇게도 잘 참았고 기뻐했지! 철원아, 너는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가장 견디기 어려운 괴로움과 아픔을 당하였단다. 머리 속 뇌수의 압력이 너무 심해져 머리뼈가 벌어질 정도의 아픔을 당하면서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울곤 하던 네 모습을 생각만 해도 이 아빠의 가슴은 미어지는 것만 같단다.
사랑하는 아들 철원아! 너는 아픔을 당할 때마다 아빠에게 기도해 달라고 했었지? 이 아빠는 너 때문에 기도하는 법을 차츰 배우게 되었단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여 죄를 뉘우치며 간절하고 진실하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준 사람은 바로 너 철원이었단다. 아빠가 너를 위해 오래 오래(때로는 종일) 기도할 때마다 너는 그렇게도 좋아했지. "아빠는 기도를 잘 해서 최고야!"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말이다.
그렇게도 괴롭고 아픈 나날을 보내면서도 너는 한 번도 하나님이나 아빠를 원망하지도 않았고, 불평하지도 않았지! 마지막 일 년 동안 시력을 잃고 아무 것도 보지 못하면서도 너는 한 번도 답답하다고 불평하지 않았지! 너는 오히려 사람들이 '아이고' '죽겠다'고 말하면 '아이고 소리하지마' '죽겠다 소리하지마. 그건 나쁜 말이야' 라고 했지. 마치 '나는 이렇게 힘든 괴로움을 당하면서도 아이고 죽겠다는 말 한마디 안 하는데 당신들은 왜 그런 소리를 하십니까?' 라고 타이르듯이!
아빠는 너의 마음속에서 천국의 평화와 기쁨을 볼 때마다 천국이 점점 더 가까워짐을 느끼곤 했단다. 네가 시력을 잃은 마지막 1년 동안 때때로 '아빠, 하늘이 보여!' '아빠 예수님이 오셨어'라고 말하던 뜻을 이제야 분명히 알게 되었구나!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것을 보는 너의 눈을 가리우시고, 천국을 볼 수 있는 눈을 여시었던 것을 이제야 분명히 깨닫게 되는구나!
사랑하는 아들 철원아! 너는 괴로울 때마다 '아빠, 나 천국 가고 싶어. 엄마, 아빠, 누나 다같이 천국 가고 싶어. 천국 가고 싶어. 천국에 가면 구주 예수님이 나 아픈 것 완전히 다 고쳐주시지' 이렇게 이야기하곤 했지. 너는 심한 고통을 당할 때마다 이런 말을 하곤 했었지. '아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머리에 가시관 쓰시고 피 흘렸지! 손에도 발에도 못 박히어 피 흘리셨지! 아빠, 예수님은 나보다도 더 아프셨지!' 네가 하던 말을 생각할 때마다 나의 가슴은 너무도 귀한 아픔으로 가득히 미어지는 것만 같구나! 너는 예수님 앞에 설 때 그래도 조금은 떳떳함을 가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이 너 위해 당한 고통의 몇만 분지 일을 너도 경험했으니 말이다. 고난의 축복을 나에게 가르쳐 준 사람은 바로 너 철원이었단다.
사랑하는 아들 철원아! 이 땅에서 4년 동안의 너의 삶은 이 아빠를 위해서 산 값진 삶이었단다. 아빠가 졌어야 할 십자가를 네가 대신 졌으니 말이다. 철원아! 고맙다! 너는 아빠에게 얼마나 귀한 설교와 간증과 교훈을 주었는지 모른다. 사랑하는 아들 철원아! 나는 네가 너무도 귀하고 사랑스럽고 보고 싶구나! 네가 있는 천국이 그렇게도 그리워지는구나. 너는 지금 무덤에서 잠자는 너의 몸을 바라보며 영화로운 부활의 아침을 기다리고 있지? 철원아, 아빠도 너와 꼭 같은 심정으로 예수님이 다시 오실 부활의 아침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단다. 사도 요한이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하고 기도하던 기도가 이제는 아빠의 기도가 되기 시작했단다!
사랑하는 아들 철원아! 네가 그렇게도 즐겨 부르던 수많은 찬송가! 아빠가 가사를 잘 모르는 찬송을 부를 때마다 네가 가사를 가르쳐주면서 같이 부르던 그 찬송가들을 지금 혼자 불러볼 때마다 너의 귀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만 같구나. 너는 찬송가와 고전 음악을 그렇게도 좋아했지. 이제는 천군 천사와 함께 마음껏 주님을 찬양하고 기쁘게 노래하거라.
사랑하는 아들 철원아! 네가 비록 견디기 어려운 괴로운 삶을 살았지만, 그러나 너만큼 귀한 삶을 살고 이 세상을 떠난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죄 없는 깨끗한 삶, 고통을 당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위로와 교훈을 안겨 주고 천국의 평화와 구원의 즐거움을 간증하며 사는 삶을 사는 것보다 더 귀하고 값진 삶이 어디 있겠니? 아빠는 너에게 주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축복을 생각할 때 하나님께 새로운 감사와 찬양을 드리지 않을 수 없단다.
사랑하는 아들 철원아! 너는 또한 엄마 아빠에게는 비할 수 없는 효자였단다. 세상을 떠나기 석 달 전에는 미국에 가서 전문 의사의 진찰도 받았고, 할머니를 비롯한 여러 친척들을 만나 인사도 드렸으니 너의 할 도리를 다 했다고 생각한다. 신유의 은사를 받은 현 권사님의 기도를 받은 후에 하늘 나라로 감으로써 부모의 마음에 아무런 한스러운 마음을 남기지 않았으니 얼마나 효자였니! 그러나 아빠는 너에게 할 도리를 다하지 못해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모른다.
"아빠, 신학지남 원고 써야 돼?" "아빠, 강의 준비하느라고 바빠?" "아빠, 나하고 좀 놀아!" "아빠, 설교 준비해야 돼?" 아빠는 늘 바쁘게 지내느라고 너하고 같이 이야기하고 놀지 못했단다. 네가 천국으로 가기 나흘 전에도 학교에 있는 아빠에게 전화하면서 "아빠, 나 머리 아퍼, 아빠 빨리 와"라고 했지만 그날도 아빠는 원고 쓰느라고 밤늦게야 집에 돌아갔단다. 왜 좀 더 일찍 들어가지 못했던가 생각하면 아빠의 가슴은 미어지는 것만 같단다. 사랑하는 아들 철원아! 미안하다! 그러나 고맙다! 어서 속히 철원이 만날 날만을 기다리겠다!
사랑하는 아들 철원아! 너는 커서 목사님이 되어 기도도 많이 하고 전도도 많이 하겠다고 늘 말하곤 했지. 네가 참으로 훌륭한 목사님이 되어 하나님께 많은 영광을 돌려 보낼 수 있게 되기를 아빠가 늘 기도하던 것을 너도 잘 알지? 철원아, 이제는 이 아빠가 너 대신 훌륭한 목사가 되겠다. 철원이의 몫까지 이 아빠가 다 하겠다. 철원이의 소원을 이 아빠가 다 이루어 줄께.
아빠는 너의 몸을 무덤에 묻고 돌아오는 길에 노회에 들러 강도사 인허를 받았단다. 그리고 얼마 있으면 목사 안수도 받게 될 것이다. 너의 몫을 이 아빠가 다 해주마! 아빠의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고통과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주님의 위로와 평안과 구원의 복음을 전하다가 보고 싶은 철원이 얼굴을 기쁨으로 대하게 될 그날만을 기다리겠다. 사랑하는 아들 철원아! 참으로 고맙다. 아빠는 너의 무덤 앞에 다음과 같은 비문을 세우려고 한다.
고난의 의미와 천국의 평화를 가르치고, 먼저 주님의 품으로 간, 어린 아들 철원이가
영화로운 부활의 아침을 기다리며, 여기 편히 쉰다. 주후 1973년 11월 11일에 나고,
주후 1977년 10월 10일에 가다."
5. "인생은 즐거운 것이다"
나는 작년 2월 홍천에 스키를 타러 갔다. 한 4, 5년 전부터 스키를 타기 시작했고 일년에 한 두 번 정도 가니까 스키 실력은 초보에 불과하다. 그러나 스키를 타는 것이 너무 너무 재미가 있었다. 9시 반부터 4시 반까지 거의 쉬지 않고 점심도 15분만에 먹고 초급과 중급 코스를 번갈아 가며 탔는데 40번이나 스키를 탔다.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면서 다음 주일 설교를 구상하며 사람은 누구이며 인생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사람은 즐겁게 살도록 지음 받은 멋진 존재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렇다, 인생은 즐거운 것이다. 그렇게 살도록 하나님이 사람을 지은 것이다." 사실 나는 한 평생을 비교적 즐겁게 살아왔다. 인생은 보기에 따라서 슬픈 것이 될 수도 있고 즐거운 것이 될 수도 있다.
(1) 음식 만드는 것을 귀찮게 생각하면 귀찮지만 재미있게 생각하면 아주 재미가 있다. 나는 교역자 수련회에 가서 가끔 음식을 만들어 대접한다. 얼마 전에 내가 갈비찜을 만들어서 교역자들을 대접했는데 너무나 맛있게 먹었다. 음식 만드는 것이 재미가 있고 즐겁다.
(2) 노동하는 것도 힘들고 귀찮게 생각하면 힘들고 귀찮지만 보람있고 재미있게 생각하면 아주 보람있고 재미가 있다. 나는 12년 동안 유학 생활을 하면서 여러 가지 노동을 했다. 여러 가지 일들 중에 육체적으로 가장 힘든 일은 집을 페인트하는 일과 정원을 가꾸는 일이었다. 뜨거운 여름 날 땡 볕에서 집안과 밖을 페인트 칠하는 일과 풀을 깎고 화단을 정돈하며 정원을 가꾸는 일은 참으로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페인트 칠과 정원 가꾸는 일을 하면서 보람과 즐거움을 느끼곤 했다. 낡은 집이 깨끗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바꾸어지는 것을 바라볼 때 나는 아주 재미가 있었다. 흐트러져 있던 정원과 화단이 깨끗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꾸어지는 것을 보면서 나는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최선을 다해서 정성껏 노동을 하곤 했다. 노동을 귀찮게 생각하면 귀찮지만 즐겁게 생각하면 아주 즐겁다
(3) 군대에서 훈련받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힘이 들어서 군대에 가지 않는 사람도 있다. 나는 논산에서 훈련을 받을 때 밧줄을 타고 높은 곳을 올라갔다가 내려오고 밧줄을 타고 타잔처럼 공중으로 날아가는 훈련이 있었는데 그것이 너무나 재미가 있어서, 어떤 사람들은 무서워서 몰래 빠지려고 하는 데, 나는 한 번 하고 다시 돌아와서 두 번씩 하곤 했다. 총 쏘는 것도 다시 돌아와서 두 번씩 쏘곤 했다.
(4) 여행하는 일이 얼마나 즐겁고 기쁜 일인지 모른다.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참으로 보람되고 즐거운 일이다. 교회에서 신자들을 만난 일, 선교지에서 그곳 주민들을 만난 일, 북한에 가서 고통 중에서도 안간힘을 다해서 살아가고 있는 어른들과 어린이들을 만난 일, 중국에 가서 우리 조선족 동포들을 만난 일, 이런 일들이 얼마나 즐겁고 기쁜 일인지 모른다.
(5) 운동하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온 몸에 땀을 흠뻑 흘리면서 탁구를 쳐서 부 목사님 두 사람을 모두 이긴 일이 얼마나 즐겁고 재미있는 일인지 모른다. 교역자들과 함께 볼링을 해도 내가 거의 일등을 하니까 얼마나 즐겁고 재미가 있는지 모른다. 여름에는 청평이나 바닷가에 가서 수영을 하고 봄과 가을에는 강변 식구들과 함께 등산도 하고 족구도 하고 목욕도 같이 하니 얼마나 즐겁고 재미있는지 모른다.
(6) 물론 세상을 살아가면서 도둑 맞는 힘든 일도 있고, 붙잡혀 가서 협박을 당하는 괴로운 일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슬픈 일도 있다. 그러나 그런 일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재미있고 즐거운 일로 바꾸어지기도 한다. 철원이의 모습에서 나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볼 수 있었고 천국의 평화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생은 보기에 달려 있다. 음식 만드는 일도, 노동하는 일도, 훈련받는 일도, 도둑 맞는 일도, 협박을 당하는 일도 아니 심지어 죽음의 일까지도 보기에 따라 기쁘고 즐거운 일로 바꾸어 질 수가 있다. 사도들은 붙잡혀 가서 능욕을 당하면서도 오히려 기뻐했다고 했다. 사람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기쁘고 즐겁게 살도록 지음을 받은 존재다.
구약성경 창세기 2장을 펴서 읽어보았다. 전에 보지 못한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사람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가 즐겁게 살도록 지음을 받은 존재라는 사실이다. 첫째,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아름답고 맛있는 과일들을 많이 만들어 주시면서 즐겁게 살라고 분부했다. 아담과 하와는 계절마다 맛있고 아름다운 과일을 먹으며 즐겁게 살도록 지음을 받았다. 둘째, 하나님께서 강과 동산과 강들과 땅과 그 속에 있는 금은 보석을 만들어 놓으시고 그것들을 아담과 하와에게 주시며 그것들을 다스리고 지키면서 재미있고 즐겁게 살라고 분부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즐겁고 재미가 있는가? 셋째,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돕는 배필을 만들어 주시면서 즐겁게 살도록 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서로 연애하고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멋지고 재미있고 즐거운가? 넷째, 하나님께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들을 지으시고 그것들을 아담과 하와에게 데려다 주시면서 동물들과 더불어 즐겁고 재미있게 살라고 분부했다. 사람은 동물들과 더불어 즐겁고 재미있게 살도록 지음을 받았다. 다섯째,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행복하고 기쁘게 살도록 지어 주셨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사는 것만큼 즐겁고 기쁜 일은 없다.
그러고 보니 성경 안에는 기뻐하면서 살라는 말씀이 많이 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같혀 있으면서도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분부했다. 지혜의 왕 솔로몬은 사람이 먹고 마시고 자기 일에 수고하면서 즐겁게 사는 것이 사람의 본분이라고 고백했다.
사람은 즐겁게 살도록 지음 받은 존재이다. 생명은 아름답고 인생은 고귀하고 멋지다. 하나님은 사람을 즐겁게 살도록 만드셨을 뿐 아니라 우리 사람을 즐거움의 대상으로 삼으셨다고 했다. 아무리 세상이 어둡고 세상에 슬프고 괴로운 일이 많아도 우리는 우리의 한 평생을 기쁘고 즐겁게 살아야 한다. 인생은 즐겁게 살도록 지음 받은 가장 아름다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6. "인생은 만남이다"
인생은 만남이다. 기쁨도 만남이요 행복도 만남이다. 하나님과의 만남과 사람과의 만남이 곧 인생이다. 인생은 나그네이기 때문에 만남이 필요하다. 성경의 이야기는 만남의 이야기들이다. 광야의 길을 걸어가는 나그네 같은 인생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그리고 이웃을 만나는 이야기들이 곧 성경의 이야기들이다. 나의 한 평생도 만남에서 시작되고 만남을 통해 이루어져 갔다. 부모님과의 만남, 친구들과의 만남, 스승들과의 만남, 신자들과의 만남, 그리고 세계 곳곳의 형제 자매들과의 만남이 곧 나의 인생이요 나의 기쁨이요 나의 행복이었다.
신약성경 요한복음 4장에 나그네 한 사람이 등장한다. 고달픔과 외로움에 지친 사람이다. 광야의 길을 홀로 걸어가던 여자였다. 세상에 대해서 환멸을 느낀 사람이었다. 남편에 대해서도 친척에 대해서도 아니 가까운 이웃에 대해서도 모두 환멸을 느낀 사람이었다. 세상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여자였고 세상을 버린 여자였다. 피곤하고 지친 모습으로 할 수 없이 하루하루를 홀로 살아가던 불행한 여자였다. 마실 물 한 동이를 길어 가기 위해서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정오 시간을 택해서 우물을 찾아 온 여자였다.
이 여자에게 필요한 것은 만남이었다. 요한복음 4장은 이 여자에게 만남의 사건이 일어난 것을 기록하고 있다. 이 여자는 예수님을 만났다. 그리고 사마리아 사람들을 만났다. 만남의 사건으로 인해 이 여자의 삶에는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어떻게 이 여자에게 만남의 사건이 일어났는가?
예수님이 그를 찾아오심으로 일어났다. 예수님은 목이 갈한 한 여자를 만나기 위해서 우물가에 미리 와서 앉아 있었다. 예수님의 모습은 행로에 피곤하여 그대로 주저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예수님의 모습은 또한 목이 갈해서 물을 마시고 싶어하시는 모습이었다. 사실 예수님은 피곤하실 필요도 없고 목이 갈할 필요도 없으신 분이다. 그런데도 예수님이 피곤해 지셨고 목이 갈하게 되셨다. 피곤하고 목마른 여인을 친밀히 만나 주시기 위해서였다. 우리가 누군가를 만나려면 그 사람의 처지에 내려가야 한다.
두 사람이 만났다. 그리고 대화를 시작했다. 예수님이 먼저 말을 건넸다. "물을 좀 달라"고 말을 걸었다. 사실은 그 여자가 예수님을 향해서 "물을 좀 달라"고 해야 했었는데 정 반대로 예수님이 그 여자를 향해서 "물을 좀 달라"고 말씀했다. 예수님이 목이 마르시기도 했지만, 그 여자에게 할 말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 여자는 매우 퉁명스러웠다. 불만과 원망이 가득한 투로 대답을 했다. "별 사람 다 봤네, 점잖게 생긴 유대 양반이 개 같은 사마리아 여자에게 물을 다 달라고 하시네."
그러나 예수님은 친절하게 두 번째 대화를 시도했다. 예수님은 거부를 당하면서도 계속해서 세 번째 대화를 시도했다. 예수님은 네 번째 대화까지 시도했다. 결국 그 여자에게 만남이 이루어졌다. 그 여자는 이제 메시야를 만난 것이었다. 죄를 사하시고 생명의 물을 부어 주시는 메시야를 만난 것이었다. 그 순간 그 여자의 가슴과 영혼은 기쁨으로 충만해졌다. 자기 몸과 영혼에 밝은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 같았다. 생명의 강물이 온 몸에 출렁거림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 여자는 그대로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동네 사람들을 만난 것이었다. 만나기 싫어서 피해 다니던 동네 사람들을 공공연하게 만난 것이었다. 그들에게 자기가 만난 메시야를 증거했다. 자기에게 생수를 주신 주님을 큰 소리로 증거했다. "나를 좀 보시요. 나는 메시야를 만났소. 그 분은 나를 변화시켜 주셨소. 내 마음에 강물이 넘칩니다. 여러분들도 메시야를 만나 보시요." 생수는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고 흘러 넘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서 두 사람의 행복한 만남, 축복된 만남을 본다. 인생은 만남이다. 기쁨도 행복도 만남이다.
나는 몇 년 전 MBC를 통해서 부산의 박희선씨를 만났다. 박희선씨는 남편이 청송 교도소로 간 이후 두 아들을 데리고 너무나 어렵게 살아가는 불행한 여자였다. 고달픔과 외로움과 절망에 빠져 있던 나그네였다. 그 여자는 예수를 전혀 모르는 불쌍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 여자에게 격려의 편지와 격려금 얼마를 보냈다. 편지가 오가며 그 여자는 위로와 격려를 받으며 하나님을 알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점점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박희선씨는 내가 소개한 부산 모 교회에 다니면서 3년이 지난 후에는 예수를 믿고 세례까지 받게 되었다. 세례 받은 후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내 왔다. "이렇게 못난 저를 용기와 희망과 웃음을 주신 사랑하는 목사님, 진정으로 큰 소리로 감사드립니다... 모두들 축하를 해 주셨고 저의 얼굴에는 밝은 미소가 소리 없이 흘렀습니다." 박희선씨는 지금 주님 안에서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지금도 매달 한 두 번씩 편지를 보내 오는데 편지의 한 구절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용기 얻고 건강이 있어 다닐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작은 사랑에 큰 감동과 남에게 웃음 줄 수 있는 능력 주심에 감사하고 너무나 하나님 앞에 감사할 일 너무나 많아서 참으로 좋아요. 목사님의 크신 사랑, 착하게 자라 주는 아이들의 고마운 사랑, 이렇게 세상에 사랑이 넘치고 있으니 참으로 행복한 사람임에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목사님 많이많이 사랑합니다."
나는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비교적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만남을 통해서 나의 삶이 부요 해지고 나를 만나는 사람들의 삶이 부요 해지는 것을 발견한다. 인생은 모두 만남이 필요한 나그네들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만나 주시기를 그렇게도 원하시고 그리고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만나기를 그렇게도 원하신다. 만남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우리들의 삶에 만남이 확장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우리들의 삶과 우리들을 만나는 사람들의 삶이 보다 부요해지고 보다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7. "인생은 인사드리는 삶이다"
나는 작년 설에 내가 평소에 존경하는 몇 몇 어른들을 찾아 뵙고 새해의 인사를 드렸고, 화요일 설날 저녁에는 KBS 방송을 통해 몇 몇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월요일에 집 사람과 안만수 목사님 부부와 함께 한경직 목사님을 찾아 뵙고 세배를 드렸다. 한 목사님이 좋아하시는 동양 난을 사 가지고 목사님을 찾아뵈었다. 마침 그 날이 한 목사님의 97회 생신이었다. 생일 축하 노래를 함께 불러 드렸을 때 한 목사님은 손뼉을 치시면서 좋아하셨다. 내가 북한에 다녀 온 이야기를 하면서 속히 북한에 가서 일을 하기를 원한다고 말씀 드렸을 때 한 목사님은 손을 몇 번이나 내 저으시고 탁자를 치시면서 그래야 된다는 뜻을 강하게 나타내 보이셨다. 그리고는 내 손을 꼭 잡으시고 나의 아버지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원하시면서 "아버지 아버지"라고 힘을 들여서 말씀을 하셨다.
남한 산성을 떠난 우리는 과천으로 갔다. 우리가 존경하는 박종렬 목사님에게 세배를 드리기 위해서였다. 난 꽃과 귤 한 상자를 가지고 박 목사님 내외분을 찾아 뵙고 인사를 드렸다. 우리는 과천을 떠나 안양으로 향했다. 우리가 존경하는 정진경 목사님에게 세배를 드리기 위해서였다. 역시 난 꽃과 귤 한 상자를 선물로 가지고 갔다. 정 목사님 내외분은 너무나 반가워 하셨고 너무나 좋아하셨다.
작별 인사를 드리고 같은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우리 네 사람의 마음은 한없이 흐뭇하고 즐거웠다. 사람은 어른들에게 인사를 드리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들이다. 어른들께서 너무나 좋아하시는 모습이 우리를 기쁘게 해 주었다. 나는 "하나님도 마찬가지야"라고 생각했다. "하나님도 우리들의 인사를 받으시면 그렇게도 좋아하시지! 우리가 선물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와서 예배의 제사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그렇게도 좋아 하실거야!" 라는 생각을 했다. 설날인 화요일 저녁에는 KBS 방송의 "내가 존경하는 이 사람" 프로를 통해서 몇 몇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부산에 사는 박희선씨와 잠깐 인사를 나누었고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법륜 스님과 인사를 나누었다. 화요일 저녁의 인사는 삶의 처지가 다르고 종교가 다른 특별한 사람들과의 인사였다. KBS 방송에서 생방송 된 대화내용의 일부를 여기 소개한다.
"사회자: 릴레이 인터뷰 "내가 존경하는 이 사람" 1부에서는 이해찬 교육부 장관을 시작으로 박영숙 소장, 중앙병원 김유호 박사, 울산의대 홍찬의 교수, 김형석 전 연세대학교 교수, 정진경 목사님 이런 분들이 서로 존경하는 분들을 추천을 해 주셨습니다. "존경할 만한 사람은 고사하고 믿을 사람 하나도 없다" 이렇게 얘기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존경할 만한 대상이 있는 분은 참 행복한 분이다" 저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1부 마지막에 정진경 목사님이 추천해 주신 김명혁 교수님, 지금 저희 KBS 김현주 리포터가 가족과 함께 설을 보내고 계신 김명혁 교수님 댁에 나가 있습니다. 김현주 리포터?
리포터: 예, 지금 중계차는 김명혁 교수의 자택 신반포 아파트에 나와 있습니다. 설 명절이라서 지금 김명혁 교수의 부인, 가족들이 다 같이 나와 계시는데요. 인사부터 나누겠습니다. 안녕하세요? 가족들: 안녕하세요.
리포터: 지금 따님 얘기에서도 나왔지만 북한에 쌀 보내기 운동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운동 못지 않게 교수님께서 어려운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신다면서요? 김 목사: 뭐 그렇게 크게 말할 것 없고요, 그저 관심을 갖고 최대 한도로 돕고 격려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고 그것이 우리 사는 본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리포터: 네, 이렇게 박희선 씨랑 간단하게나마 통화도 하셨는데, 돈이라든지 권력으로만 남을 도울 수 있는 게 아니구나 라는 것 오늘 존경합니다의 교수님 만나 뵈면서 느꼈습니다. 이제 김명혁 교수님께서 또 다른 분을 추천해 주셔야 될 시간이거든요? 김 목사: 사실은 제가 존경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은...... 제가 스님 한 분을 추천하려고 합니다. 리포터: 스님을요? 김 목사: 예, 법륜 스님인데, 저에게 많은 도전을 주었고 감동 그 자체고 참 존경을 하게 되고 참 좋아하게 된 분입니다. 너무 좋은 분입니다.
사회자: 예, 법륜 스님을 존경하는 분으로 소개를 해 주셨는데요. 김명혁 교수님이 추천하신 법륜 스님을 전화로 연결했습니다. 안녕하세요? 법륜: 안녕하세요? 사회자: 예, 우선 김 목사님과 두 분이서 인사를 나누시죠. 법륜: 예, 김명혁 목사님 안녕하세요? 먼저 저를 추천해 주신 김명혁 목사님, 제가 평소에 존경하고요, 북한 돕기에 항상 함께 해 왔는데 추천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목사님 북한 다녀오셨는데, 제가 인사를 아직 못 드렸습니다. 글은 받았습니다. 갔다 오셔서 아주 감동적으로 쓰신 글이며 민족의 화해의 깊은 마음이 철철 넘치는 글을 읽고 저도 눈물이 났습니다. 김 목사: 저는 목사지만 사실 스님을 통하여 정말 많은 도전을 받았고 또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늘 얘기를 합니다. 우리 서로 힘을 합해서 민족의 화해와 사회 정의와 통일을 위해서 노력을 하십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고요. 법륜: 네 네, 목사님 말씀대로 그렇게 열심히 하겠습니다. 사회자: 조금 전에 김명혁 교수님하고 법륜 스님 두 분이 서로 좋은 말씀 나누시고 존경하는 분으로 추천도 해 주셨는데 저도 기분이 굉장히 흐뭇해요.
사람이 인사를 나누며 사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어른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가까운 형제와 이웃과 인사를 나누고 그리고 형편과 처지가 다른 여러 사람들과 인사를 주고받으며 사는 것은 인간다운 흐뭇한 삶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도 인사와 제사를 드리며 살도록 지으셨다. 먼저는 하나님께 인사를 드리고 그 다음에는 옆에 있는 사람과 인사를 나누며 살도록 지으셨다. 아담과 하와를 지으셨을 때 그렇게 지으셨고 가인과 아벨을 태어나게 했을 때도 그렇게 하셨다.
하나님께 인사를 드리며 살고 사람들끼리 인사를 나누며 살도록 지으셨다. 즉 하나님께 예배의 제사를 드리면서 살고 형제와 이웃에게 선행과 나눔의 제사를 드리면서 살라고 하셨다. 인사를 드리며 주고받으며 살 때 우리에게는 기쁨이 있고 하나님의 축복이 임한다. 반대로 우리가 인사를 제대로 드리지 못하며 살 때 하나님의 저주가 임할 수도 있다. 인사를 드리며 사는 축복과 기쁨이 우리들에게 있기를 바란다.
8. "인생은 나눔이다"
인생은 만남인 동시에 나눔이다. 기쁨도 행복도 만남인 동시에 나눔이다. 나는 미국 유학생활 12년 동안 전반기에는 만남과 나눔에 대해서 별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그러나 후 반기부터 만남과 나눔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며 이를 조금씩 실천해 보았다. 지나가는 외국 학생들에게 일부러 가까이 가서 인사도 했고 주말에는 몇몇 외국학생들을 내가 거하고 있던 집에 초대하여 음식을 대접하며 교제의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내가 가진 시간과 물질을 조금이나마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얼마나 좋고 즐거운 일이라는 사실을 차츰 배워가게 되었다. 그래서 아이오와 시에서 공부할 때는 내가 주동이 되어서 아이오와 한인회를 만들어 피크닉도 하고 운동회도 하고 소식지를 만들어 한인들간의 우의를 돈독히 하기도 했다.
나는 언젠가 부터 외국에 여행할 때는 팁을 넉넉히 주기 시작했고 동행하는 사람들과 음식을 사서 먹을 때는 내가 음식값을 지불하려고 했고 선교사들이나 제자들을 만날 때는 주머니를 털어 조금씩이나마 그들에게 격려의 선물을 주려고 노력했다. 나는 가능하면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에게 나눔의 손길을 펴려고 힘을 써왔다. 조그마한 사랑과 물질의 나눔이 피차에 얼마나 큰 위로와 즐거움을 가져다주는지 모른다.
내가 시무하는 강변교회는 일년에 두 번 "사랑의 음악회"를 열고 강남구청에서 추천하는 강남지역의 불우 이웃들을 초청하고 그들에게 사랑의 선물을 나누는 일을 해 오고 있다. 최근에는 강남지역주민 38명과 탈북동포 10명을 초청하여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아름다운 모임을 가졌다. 사랑의 음악회에 참석한 주민 한 분이 다음과 같은 글을 나에게 보내왔다. "저는 그날 저녁 내내 울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감사했고 강변교회에서 초청해 주셔서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또 한 분은 다음과 같은 글을 보내왔다. "저는 교통사고와 몇 번의 사고로 항상 몸이 아파 눈물을 먹고도 살았으며 아이 또한 세상의 희망을 잃고 베란다에서 떨어져 뼈가 튀어나오고 살이 떨어져 나가 몇 년을 고통스러워하는 걸 옆에서 지켜보며 가슴으로 한없이 울었습니다. 이젠 목사님의 도움으로 힘을 얻고 용기를 갖게 되어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지난 번 사랑의 음악회에서 도움을 받은 또 한 주민은 이런 글을 써서 보냈다. "살아 계신 예수님과도 같으신 목사님! 제게 직접으로 도움 주신 은혜 감격하여 눈물로 감사 기도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분은 얼마 후 나를 찾아왔다. 청소를 하며 한 달에 20만원을 가지고 살아가는 가난한 노인이었다. 그 분이 나에게 돈 봉투를 내 놓았다. 일 주일 전 사위가 오랜만에 장모님 쓰라고 50만원을 가져 다 주었다고 했다. 음식을 사 드시든지 사고 싶은 것 사시라고 가져 다 준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분은 그 돈을 자기를 위해서 쓰는 것보다는 자기 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가 직접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보다는 김 목사님에게 갖다 드려서 돕는 것이 더 좋겠다고 생각해서 그 돈을 가지고 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기가 그 동안 저축해 두었던 50만원을 보태서 100만원을 가지고 왔다고 말했다. 나는 그 분의 아름다운 말과 행동을 접하면서 가슴이 뭉클하는 진한 감동을 받았다. 나는 그 돈을 이름 없이 가장 필요한 사람을 돕는데 쓰겠다고 말하고 그 분과 함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나눔은 이렇게 피차에 가슴 뭉클한 위로와 감동과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그 100만원은 또 하나의 가슴 뭉클한 위로와 감동과 즐거움을 만들 것이다.
거미는 죽을 때 자기의 몸을 전부 자식들의 음식으로 나누어주고 죽는다고 한다. 구약성경 창세기 26장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이야기가 나온다. 하나님이 이삭을 백 배나 축복해서 거부가 되었다고 했다. 이삭이 백 배로 받은 축복을 어떻게 사용했는가? 더 큰 아파트, 더 큰 자동차, 더 큰 목장과 농장을 만들었는가? 아니었다. 이삭의 마지막 생애는 나눔의 생애였다. 마실 물이 없는 사람들에게 우물을 파서 주는 일을 계속했다. 그 당시 우물은 삶의 근원이요 삶의 터였다. 우물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고 사회가 발전했다. 이삭은 한 곳 뿐 아니라 이 곳 저 곳에 우물을 팠다. 누군가가 와서 자기가 판 우물을 빼앗으면 그들과 다투지 않고 또 다른 곳에 가서 또 다른 우물을 팠다.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라는 말로 이삭의 생애가 기록되었다.
자기가 얻은 물질과 재능의 축복으로 병원을 세우고 결식 아동을 위한 급식소를 세우고 외진 곳에 도서관을 세우고 청소년 재활원을 세우고 그리고 학교와 교회를 세우는 일은 참으로 귀한 일이다. 우리는 70년대 이후 경제성장과 물질획득에 지나친 관심을 기울였는지 모른다. 우리는 이제부터는 버리는 일과 나누는 일을 힘써야 할 것 같다. 버릴 때 자유함이 있고 나눌 때 훈훈함과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슈바이쳐"라고 불리는 장기려 박사는 나눔의 삶을 몸소 실천한 사람이었다. 그는 평생 무료로 진료했고 평생 무소유로 살았다. 1975년 정년 퇴임 후 집 한 채 없이 고신의료원이 병원 옥상에 마련해 준 20여 평 관사에서 그의 여생을 보냈다. 그 분은 자기가 무엇을 받든지 무엇을 소유하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삼지 않았다.
우리는 장기려 박사의 삶의 모습을 대하면서 마음에 훈훈함과 아름다움을 느낀다. 순수함과 깨끗함을 느낀다. 무한 경쟁의 삶은 우리의 사회를 각박하고 삭막하게 만들지만 버림과 나눔의 삶은 우리의 사회를 훈훈하고 아름답게 만든다. 값지고 아름다운 삶은 나눔의 삶이다.
9. "죽는 것도 유익하다"
사람이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죽는 것은 더 중요하다. 비굴하고 추하게 죽지 말고 당당하고 아름답게 죽어야 한다. 수년 전에 타임지가 미국의 로마 카톨릭 주교 한 사람의 죽음을 보도한 일이 있다. 미국 시카고의 대주교가 암에 걸렸다. 결국 그는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되었다. 그런데 그 사람은 항암 치료를 받지 않았다. 암의 고통을 그대로 다 감수했다. 그는 인간이 겪는 죄와 질병으로 인한 고통을 그대로 몸으로 감수하기를 원한 것이었다. 고통 중에서도 그는 매일매일 자기 일과에 충실했다. 결국 그는 자기의 죽음을 고요하고 엄숙하고 진지하게 맞았다. 시카고의 시민들은 대주교의 당당한 죽음에 경의를 표하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는 것이다.
손양원 목사와 두 아들의 죽음 역시 값진 죽음이었다. 동인, 동신군은 1948년 여순 반란 사건 때 신앙의 절개를 지키기 위해 당당하게 순교의 죽음을 당했다. 손양원 목사도 순교의 죽음을 당당하게 당했다. 그는 1950년 6.25 전쟁 때 얼마든지 피신할 수가 있었다. 피신의 권유도 여러 번 받았다. 그러나 그는 번번이 거절했다. 애양원의 나환자 신도들을 두고 어디를 가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는 애양원의 나환자들을 너무나도 사랑했다. 손양원 목사는 이미 1948년 여순 반란 사건이 일어나기 몇 개월 전에 부산 초량교회에서 담임 목사로 오라는 초빙을 받은 일이 있었다. 그러나 손양원 목사는 이 문제를 놓고 일주일 간 금식 기도한 후 애양원에 그대로 남아 있기로 결정했다.
손양원 목사는 애양원의 양무리들을 너무나 사랑하며 마지막까지 그들과 함께 있다가 순교의 영광을 얻은 것이었다. 1950년 10월 28일 밤 손양원 목사는 자기를 붙잡아서 끌고 가며 폭행하는 인민군인들에게도 끝까지 복음을 전하며 그들을 위해서 기도했다. 10월 29일 아침 손 목사의 시신이 들것에 들려 애양원에 도착했을 때 그의 두 손 바닥에는 총알이 관통해 있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를 쏜 원수들을 위해서 기도한 흔적이라고 생각되어진다. 손양원 목사는 신앙의 절개와 사랑의 의리를 지키면서 순교의 죽음을 당당하게 맞은 것이었다.
우리는 또한 나라를 사랑하고 나라를 세우려는 일편단심으로 인해 무참하게 고문을 당하다가 죽어간 유관순을 잘 안다. 그녀는 무참한 형태의 죽음을 죽었지만 그러나 고귀하고 값진 죽음을 죽은 것이었다. 한번 죽는 죽음을 자기가 믿고 사랑하는 한 분 주님을 위하여 또는 자기가 그처럼 사랑하고 위하는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죽는다면 그런 죽음은 가장 값진 죽음이다.
사람은 필연적으로 죽는 존재라고 성경은 가르친다. 그러므로 사람은 죽음을 준비하면서 살아야 한다. 한국 사람들은 서양 사람들에 비해서 죽음을 외면하면서 사는 경향이 있다. 자기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거나 말하기를 꺼려한다. 유언장을 남기는 것조차 꺼린다. 유교적 전통에서 비롯한 생각인지 모른다.
신약성경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죽음을 긍정적으로 묘사한다. 죽음을 당당하고 담담하게 맞을 수 있는 긍정적인 사건으로 묘사한다. 사도 바울은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말고 슬퍼하지도 말라고 가르쳤다. 죽음은 영원으로 들어가는 하나의 관문이라고 했다. 죽음은 잠시 잠자는 것이요 잠시 쉬는 과정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그리고 죽음은 이제 우리가 정복할 수 있는 정복의 대상이 되었다고 외치기도 했다.
죽음은 본래 인간에게 저주로 임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저주가 축복으로 들어가는 하나의 관문이 되었다. 누군가가 그 죽음의 저주를 우리 인간을 대신해서 짊어지셨기 때문이다. 그 분에게 죽음의 저주가 옮겨진 것이다.
죽음은 한 사람의 생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자기의 한 평생에 대해 최선을 다한 사람은 평안하게 죽음을 맞는다. 어떤 사람은 혀를 길게 내 밀면서 무서운 얼굴을 하고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다가 죽는다고 한다. 최선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평안하고 담담하게 죽을 준비를 하여야 한다. 너무 오래 살려고 애를 쓸 필요도 없다. 낡아버린 자기의 장기 대신 모두 인공 장기로 바꾸고 120년 또는 200년을 살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얼마큼 산 다음에는 소유욕을 차츰 버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 소유욕 중에서 가장 강한 소유욕은 생에 대한 소유욕이다. 생에 대한 지나친 소유욕은 추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린다. 버리는 연습을 하자. 죽는 연습을 하자. 멋지게 담담하게 당당하게 죽자. 바로 죽는 사람이 바로 산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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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하기] 2000-04-29 11:20: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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