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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혁 목사

"나의 신학 공부 시절" (기독교신문 연재, 1-6회)

	"나의 신학 공부 시절" 기독교신문(2000. 3. 26) 1. 신학 수업을 하기까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목사가 되고 싶다는 소원을 가지게 된 것이 초등학교 4, 5학년 경이라고 생각된다.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은 신의주 제이 교회와 평양 서문밖 교회에서 목회하시다가 공산당에 의해 투옥되셨다. 나는 평양 제오인민학교를 다니면서 주일성수문제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월요일이면 으레 담임선생이나 교장선생님 앞에 불려가 벌을 서며 훈계를 받았다. 정학을 당한 일도 있었다. 나는 제오인민학교(5년제)를 졸업하고 중학교 입학시험을 쳤는데 구두시험 중 앞으로 일요일에도 학교에 등교하겠다고 약속하면 입학이 된다고 했다.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을 하고 난 후 후회와 번민으로 괴로워했다. 평양 사동 탄광에서 복역 중이신 아버지를 찾아 갔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서울로 가서 그곳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말씀 드렸다. 아버지는 그렇게 하라고 하셨다. 만 11살 되던 1948년 8월초 사랑하는 어머님과 세 동생과 감옥에 계신 아버지를 뒤에 두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 남쪽으로 떠났다. 38선을 넘던 날 밤 우리 일행은 경비원들에게 발각되고 말았다. 서지 않으면 총을 쏜다고 위협했다. 모두 발을 멈추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남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앞뒤가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밤을 뚫고 30분 이상을 달렸다. 결국 나는 혼자서 남쪽 땅에 도착할 수 있었다. 훤히 밝아 오는 새벽녘에 어느 초가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지금도 누구였던 지를 알지 못하는 어떤 청년 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나를 서울까지 데려다 주었다. 서울에 사시던 이모님 댁에 살면서 방산국민학교 5학년에 편입하여 공부하게 되었고 영락교회에 다니며 신앙의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서울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6.25가 발발하여 부산까지 쫓겨갔다가 다시 대구로 올라와 3년간 그곳에서 중학과정을 마치며 신앙생활을 계속했다. 그 당시 이성봉 목사님의 집회를 모조리 쫓아다니며 많은 은혜와 감동을 받았고 나의 '소명'을 다짐하곤 했다. 다시 서울로 올라와 서울고등학교 3년 과정을 마치며 교회는 김치선 목사님이 담임하시던 창동교회에 다녔다. 그 때 김 목사님의 신앙적 감화를 많이 받았다. 대학에 진학할 때 세 분 목사님들(한경직, 명신홍, 김치선)을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무엇을 전공하는 것이 도움이 되겠느냐고 여쭈었다. 역사학이나 영문학이나 철학을 공부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했다. 결국 나는 서울대학교 문리대 사학과에 진학했다. 4년간의 역사공부는 신학을 공부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 주었고 나의 안목을 넓혀 주었다. 좀 더 깊은 의미에서의 "역사의 의미"와 "역사적 안목"은 신학을 공부하면서 차츰 터득하게 되었지만 대학과정의 역사공부는 그 나름대로 필요한 준비적 역할을 했다. 2. 신학수업을 시작하다 기독교신문(2000. 4. 2) "한철하 박사님으로부터 학문적 도전과 감화" "훼이스 신학교의 배타성에는 거부 반응" 대학을 졸업한 후 나는 당시 용산에 소재한 총회신학교(대한 예수교 장로회)에 입학하여 신학수업을 시작했다. 그 당시 교수진은 박형룡, 명신홍, 한철하, 최의원, 오병세 등의 교수님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필자는 특히 한철하 박사님으로부터 학문적 도전과 감화를 많이 받았다. 서울 문리대 시절의 노트 위주의 공부로부터 책을 읽는 리서치 위주의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교회사 연구의 방법을 터득하게 되고 교회사 연구에 취미를 가지게 된 것도 한철하 박사님의 영향 때문이었다. 신학의 흐름과 교리논쟁들의 발전과정을 붙잡으며 교회사를 연구하는 주제 위주의 한철하 박사님의 「초대교회사」강의는 필자의 학문연구 방법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어거스틴의 초기 작품들을 영문으로(Augustine's Earlier Writings in L. C. C.) 읽으며 그의 신학 방법론, 신앙과 이성과의 관계에 대한 그의 입장들을 다루던 「어거스틴 연구」강의는 그 당시 필자에게 많은 감동과 학문에 대한 정열을 불어 넣어 주었다. 결국 필자는 나중에 어거스틴에 관한 박사학위 논문을 쓰게 되었다. 박형룡 박사님의 「조직신학」강의는 교안을 읽어 내려가는 식의 강의였는데 질문과 토론시간을 달라고 여러 번 요청과 항의를 했으나 번번히 거절을 당했는데 그것은 지금도 아쉬웠다고 느껴진다. 그리고 박형룡 박사님이 그렇게 폭이 넓은 신학자는 아니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 당시 빌리 그레함 박사가 인도하는 전도 집회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분의 진실함과 정직한 인격에는 많은 감화와 감동을 받았다. 총회신학교에서 세 학기 공부를 마치고 미국 필라델피아의 훼이스 신학교로 유학하여 신학수업을 계속했다. 무턱대고 돈 백불을 가지고 미국으로 간 것이었다. 그리고 아무 도움도 받지 않고 (물론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을 받으며) 12년 동안 유학생활을 넉넉하게 했다. 그 당시의 훼이스 신학교의 교수진은 그래도 좀 좋은 형편이었으나 필자의 기대에 많이 어긋났다. 교장 매크레이 박사의 「교회사」강의 성적이 항상 A 이어서 칭찬을 받곤 했지만 한 박사님의 강의 방법과 비교할 때 실망을 느끼곤 했다. 매크레이 박사의 「이사야서 연구」강의를 세 학기를 계속해 들으며 이사야서를 사랑할 수 있게 되기는 했지만 그의 강의도 크게 만족할 만한 것은 못 되었다고 생각된다. 테일러 교수의 영향으로 신약주석에 많은 흥미를 가지고 공부하면서 신약을 전공할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까지 했다. 이사장 매킨타이어 박사가 때때로 와서 자유주의를 공격하는 "선전"을 했는데 필자는 항상 그 선전에 거부반응을 느끼곤 했다. 특히 불신자들은 사랑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일부 배타적이고 편협한 학생들의 입장에 심한 회의를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훼이스 신학교에서의 유학생활은 넉넉하고 즐거운 시절이었다. 학교에서 나에게 좋은 일자리(학교 인쇄소에서의 일과 건물을 페인트하는 일)를 주어서 내가 원하는 대로 일하여 생활비를 벌면서 여유있게 생활할 수 있었고 10여명 이상의 한국인 학생들과 가까운 교제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3.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시절 기독교신문(2000. 4. 9) "「두 도성」에 나타난 역사의 의미 연구" "한국음식 얻어 먹은 일, 고맙고도 미안" 1964년 훼이스 신학교를 졸업한 후(B.D. 취득) 같은 필라델피아시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 입학하여 1년 반 동안 석사과정(Th. M.)에서 교회사를 전공했다. 해박한 지식을 가진 노련한 교회사 교수 울리(Woolley) 밑에서 고생도 많이 했지만 지식도 많이 얻었다. 「교부연구」 시간에는 매주마다 교부 한 사람에 대해 연구 발표해야 했는데 그 과정을 통해 교부들의 사상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을 쌓게 되었고 「기독론 연구」에서는 다양한 역사적 상황과 신학조류의 관점에서 초대교회 기독론쟁의 발전과정을 배우고 평가할 수 있었다. 스킬톤 교수의 「교부원강」에서는 교부들의 글을 라틴원문으로 읽었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석사학위 논문의 제목은 「신의 도성에 나타난 어거스틴의 역사이론」이었는데 이는 후에 박사학위 논문으로 발전했다. 고대 희랍의 순환사관에 반해 어거스틴은 직선적 발전사관을 내세웠다. 역사는 창조와 함께 시작하여 종말론적 완성의 목표를 향해 발전하는데 모든 역사적 발전과정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이다. 그리고 어거스틴은 역사 안에 나타나서 발전해 나아가는 두 개의 영적 실재인 신의 도성과 지상의 도성을 구별하여 서술했다. 신의 도성이 현세의 지상에서 완전히 실현되지는 않는다. 현세는 완성을 향해 움직이는 과도기적 과정에 불과하다. 더욱이 현세의 삶은 죄의 깊은 영향을 받고 있다. 따라서 어거스틴의 현세관은 어둡고 부정적인 경향을 띠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의 도성이 하나님의 현세적 실재임을 어거스틴은 아울러 강조했다. 현세는 바로 신의 도성이 실현되고 완성되어져 가는 마당이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구속사적 '섭리'(역사 안에 나타나는)와 역사의 종말론적 '목적' 안에서 어거스틴은 역사의 의미를 발견한다.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수학하는 동안 필자는 구약학 교수 E. J. 영(Young) 박사의 인격과 신앙과 학문에 깊은 감화를 받으며 그 분을 흠모하고 존경하게 되었다. 귀중한 것은 학문 자체라기보다는 학문을 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공부하던 시절 잊지 못할 즐거운 일들 중의 하나는 그곳에서 함께 공부하던 손봉호, 김영익, 전 연택등 총각들이 주일 오후마다 가정을 가진 김의환, 한기범, 한의신 등 선배 목사님들의 가정을 자발적으로 그리고 주기적으로 방문하여 한국 음식을 마음껏 맛있게 얻어 먹은 일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당시 사모님들이 무척이나 고생들을 하고 있었는데 우리 총각들이 그런 사정도 모르고 당당하게 그들 가정들을 찾아가서 음식을 얻어 먹곤 한 일이 고마우면서도 동시에 죄송하게 느껴진다. 4. 예일대학교 신학원시절 기독교신문(2000. 4. 23) "펠리칸 교수의 명 강의에 매료" "외국 학생들과 인사를 나누며 교제를 시도"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졸업한 후 예일대학교 신학원에 입학하여 석사과정(S.T.M.)에서 역사신학을 계속해서 전공했는데 한 해 동안의 수학은 매우 유익한 것이었다. 단순히 강의를 듣고 시험을 보는 식의 공부가 아니고 연구 논문을 써서 제출하는 식의 공부였는데 리서치 위주의 공부가 참된 공부라고 생각했다. 역사신학 교수 자로슬라브 펠리칸(Pelikan) 박사의 강의들은 명강의 중의 명강의였고 그 분은 내가 만난 교수 중의 교수요 학자 중의 학자였다. 그 분은 또한 루터교적 복음주의 정열을 가지고 설교하는 신앙의 사람이었다. 그 분의 「교리사」강의는 두 학기에 걸친 후에 「기독교 전통」(The Christian Tradition)이라는 제목의 저서로 출판되기 시작했는데 나중에 계속해서 출판된 다섯 권으로 된 「기독교 전통」은 교리사 분야에서 단연 금자탑의 역할을 할 것이다. 필자는 한 해 동안 도서관에서 살 정도로 밤낮 책에 파묻혀 지냈다.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어거스틴을 전공한 테젤 교수의 「자연과 은총」시간에 필자는 테젤 교수의 어거스틴 해석(은총에 대한)과 반대되는 입장의 논문을 제출하고 매우 염려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의외로 테젤 교수는 필자가 제출한 페이퍼에 A 점수를 주어 필자는 학문의 아량과 자유를 실감하였다. 펠리칸 교수의 지도를 받아 쓴 석사학위 논문의 제목이 「교부들에 나타난 이사야서의 메시야적 해석」이었는데 져스틴, 이레니우스, 터툴리안, 키프리안이 이사야서의 예언적 부분들을 다루고 해석하는 공통적 특징들을 살펴보았다. 노스틱파들이 구약을 거부하는데 반해 교부들은 구약과 신약의 연속성과 통일성을 강조하며 구약의 메시야 예언들이 예수의 생애에서 완성된 것을 지적했다. 필로의 비유적 해석과는 달이 팔레스틴의 랍비 유대주의의 전통에 서서 구약을 예표적(typological)으로 해석했고, 유대주의 전통을 초월하여 구약의 예언들을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해석했다. 교부들은 구약의 예언들을 문자적으로(때로는 상징적으로) 해석하고 나서 그 예언들이 예수의 생애에서 역사적으로 그리고 문자적으로 완성된 것을 지적했다. 예일대학에서 수업하던 시절 교회사의 대가인 라토렛 교수와 베인톤 교수와 친분을 갖게 된 것은 다행한 일이었다. 두 분은 은퇴교수로 계속 저술에 종사하며 캠퍼스에서 학생들과 같이 생활하고 있었다. 목요일 저녁 학생들이 라토렛 교수의 방에 찾아가 자유로운 대화를 나누며 신앙적인 조언과 격려를 받곤 했는데 학생들은 그를 "엉클 켄"이라고 부르며 따랐다. 필자는 예일 대학교 시절부터 외국 학생들과의 친교를 적극적으로 시도했다. 그 전까지는 혼자서 공부하면 그만이지 다른 학생들과의 교제하는 것은 쓸데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차츰 생각이 바꾸어졌다. 나는 지나가는 외국 학생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며 교제를 시도했다. 그것은 나의 삶의 스타일에 변화를 가져오기 시작했다. 5. 일하면서 유학생활 기독교신문(2000. 4. 30) "일하는 것도 즐겁게" 나는 12년 동안의 미국 유학생활 중 여름 방학에는 물론 학기 중간에도 틈틈이 일을 하면서 공부를 했다. 훼이스 신학교에서는 건물 청소, 식당 웨이터 일, 인쇄소 일 및 건물 페인트 하는 일을 했고,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시절에는 화장실 청소, 식당 웨이터 일, 화학 도금 공장 일, 정원 가꾸기 일, 주택 페인트 일, 브리타니카 백과사전 판매 일 및 접시 닦기와 선물 백화점에서 판매원 일등을 했다. 예일 대학교에서 공부할 때는 주로 학교 도서관 일을 했고, 아이오와에서 공부할 때는 주로 주택 페인트하는 일을 했다. 요사이는 한국 유학생들이 한국교회의 보조를 받으면서 공부하기 때문에 일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내가 공부할 때는 대부분의 한국 유학생들이 일을 하면서 공부를 했다. 그러나 나의 경우 일하면서 공부한 것이 아주 좋은 경험이 되었다. 일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고 유익한 일이었다.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공부하던 어느 해 여름 나는 뉴욕 번화가에 있는 일본인이 경영하던 "아주마" 선물 백화점에서 손봉호, 마루야마(지금 동경대학교 총장)등과 함께 판매원의 일을 했다. 각색 인종의 여자 손님들을 날마다 대했다. 그 나라 말로 인사하는 법, 대화하는 법, 설득하여 물건을 사게 만드는 법을 익혔다. 남미 여자에게는 스페인 말로, 독일 여자에게는 독일 말로, 프랑스 여자에게는 프랑스 말로, 유대인 여자에게는 히브리 말로, 그리스 여자에게는 희랍어로 간단한 인사말을 건네면 이미 그들의 마음을 절반은 산 것이다. 대부분의 여자들이 판매원의 판매술에 넘어가는 것을 발견했다. 재미있는 일이었다. 손봉호 마루야마 김영익 그리고 나는 뉴욕 만하탄 한 곳에서 방을 얻고 같이 살면서 일을 했는데, 모두가 총각이라서 악착같이 저축하기 보다는 잘 먹고 잘 놀면서 한 해 여름을 지냈다. 두 명씩 짝이 되어 교대로 저녁 식사를 마련하곤 했는데 날마다 더 좋은 음식을 하라고 주문하니 점점 음식이 좋아졌고 점점 음식 값으로 많은 돈을 쓰게 되었다. 주말이면 싸운드 오브 뮤직 등의 영화도 감상했고, 자유의 여신상 등 이 곳 저 곳을 구경 다니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어떤 목사님들은 여름 방학 동안에 천불도 벌어 오는데 우리는 몇 백불 밖에 벌어 오지 못했다. 내가 미국에서 일하던 일들 중 주택 페인트하는 일과 정원 가꾸는 일이 육체적으로 가장 힘든 일이었다. 뜨거운 태양 열 아래서 이층 또는 삼층 주택 벽의 낡은 부분들을 베껴 내고 보수한 후 그곳을 깨끗하게 페인트하는 일과 넓은 정원의 풀을 깎고 흐트러진 화단을 깨끗하게 새로 단장하는 일은 너무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일하다 말고 풀밭에 드러 눕곤 했다. 그러나 마음은 즐거웠다. 낡은 집이 새 집으로, 흐트러진 정원이 단정한 정원으로 바꾸어지는 것을 바라 보았기 때문이었다. 6. 예일대학교 신학원시절(2) 기독교신문(2000. 5. 7) "파넨베르그의 「역사로서의 신학」을 읽으며 흥분" 예일대학에서 공부할 때 나에게 충격을 준 책이 있었다. 계시의 역사성와 그리스도 중심적 및 종말론적 구속사관을 내세운 파넨베르그(Wolfhart Pannenberg)의 「역사로서의 신학」(Theology As History)이었다. 바르트와 불트만의 신화와 Geschichte의 개념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계시와 신앙의 역사성을 강조하는 젊은 독일신학자가 나에게는 혜성과 같은 존재로 보여져서 그 책을 읽으며 흥분했다. 파넨베르그는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모든 신학적 질문들과 해답들은 역사의 틀 안에서 이해할 때 의미를 갖는다. 세상에게는 아직 숨겨졌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이미 드러난 미래를 향해 발전해 가고 있는 역사만이 신학에 의미를 제공해 준다. 이와 같은 신학의 전제는 오늘날 두 측면에서 변호되어야 한다. 한편으로는 역사를 존재의 역사성으로 해석해 버리는 불트만의 실존주의 신학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신앙의 참된 내용은 초역사적이라는 말틴 캘러나 성육의 사건을 원역사적 사건이라고 해석하는 발트의 변증법적 신학에서..." 역사신학에 관심을 가지고 어거스틴을 연구하던 나에게 신앙의 역사성을 강조하는 파넨베르그의 그리스도 중심적 및 종말론적 역사신학 이론은 적지 않은 자극과 격려를 제공해 주었다. 파넨베르그는 역사적 '사건'과 역사적 '의미'를 분리하는 불트만의 실존주의적 주관적 신앙이해를 정면으로 비판하며 "모든 사건은 그 사건 자체의 의미를 제공해 준다"고 선언하며 신앙과 의미의 불가분성을 지적했다. 초대교회의 부활신앙은 부활사건 자체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드러낸 것에 불과했고 부활사건 자체가 내포하지 않았던 하나의 의미를 새로 고안해 낸 것이 아니다. 파넨베르그는 또한 '신앙'과 '역사'와 '지식'의 불가분성을 강조했다. 물론 믿음이 없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를 참으로 알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앙이 지식의 진리를 대신 차지할 수는 없다고 했다. 실존주의 신학이 오랫동안 신앙을 과학지식의 공격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하나의 주관의 성곽(subjectivity's fortress)으로 오해해 온 잘못을 지적하며 "기독교의 신앙을 하나의 단순한 주관적 확신과 동일시"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을 자기 기만과 미신으로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오고 만다고 했다. 예수의 역사에 대한 지식이 신앙의 기초가 되는데 이와 같은 지식은 신앙으로 인도하는 독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그가 신앙의 역사성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마치 신앙이 전적으로 역사적 지식에 근거하는 듯이 말하는 잘못을 범했다고 느끼기는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역사신학 이론은 그 당시 나에게 커다란 자극과 충격을 제공해 주었다.
	[인쇄하기] 2000-05-01 10:4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