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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애와 서울 중 고등학교" 서울고 8회 동문문집
김명혁 목사(강변교회 담임,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나는 7년 전 어느 신문사에 나의 생애를 더듬어 살피며 12페이지 분량의 글을 써서 기고한 일이 있었는데 그 글이 12 회에 거쳐 연재되었다. 여기서는 그 글을 참고하면서도 서울 중 고등학교를 염두에 두고 반으로 요약된 글을 써 본다.
1 열한 살 때 혼자서 38선을 넘어 남하했다.
나는 11살 때 혼자서 38선을 넘어 남하했다. 공산당이 싫어서였고 신앙의 절개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나의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은 신의주 제이 교회에서는 한경직 목사님과 함께 교회를 섬겼고 평양에서는 서문밖교회를 섬기다가 투옥되어 사동 탄광에서 복역하다가 6.25 직전에 순교 당했다. 나는 아버지의 신앙을 따라 주일 성수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목사가 되기 위해 1948년 8월 혼자서 38선을 넘었다. 나를 극진히 사랑하시던 어머니를 북에 두고 아버지와 동생들을 모두 북에 두고 혼자서 남쪽으로 향한 일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저리는 슬픈 일이었고 11살 소년이 단행하기로는 엄청난 모험이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엄청난 일을 단행했다. 38선을 넘던 날 밤 우리 일행은 군인들에게 발각되고 말았다. 서지 않으면 총을 쏜다고 위협했다. 어른들은 모두 멈추었지만 나는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남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앞뒤가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밤을 뚫고 30여분 이상을 밭을 지나고 강을 건너면서 달렸다. 나는 혼자서 남쪽 땅에 도착할 수 있었다. 훤히 밝아 오는 새벽녘에 어느 초가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지금도 누구였던 지를 알지 못하는 어떤 청년 한 사람이 나를 서울까지 데려다 주었다. 나를 지키는 ‘천사’였다.
2 서울 중학교에 다니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행복이었다
그 후 서울에 사시던 이모님 댁에 살면서 방산국민학교 5학년에 편입하여 공부하게 되었고 영락교회에 다니며 신앙의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어머니가 보고 싶어서 밤마다 남몰래 눈물을 흘렸지만 학교에서의 나의 생활은 명랑하고 활발했으며 공부도 운동도 잘 했다. 결국 나는 서울중학교에 입학했다.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모른다. 서울 중학교 교복을 입고 다니는 나 자신이 자랑스럽게 보였고 모두들 나를 처다 보는 것만 같았다. 서울 중학교에 다니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행복이었다. 영어 시간에 두 손으로 만원경을 만들어 선생님을 바라보다가 야단을 맞은 일이 있었다. 영어 선생님은 나를 가리켜 "은진미륵 같은 놈이 무슨 짓이냐"고 야단을 쳤다. 내가 그만큼 멋지게 생겼다고 말하는 뜻으로 받아드렸다. 이미 그 때 '왕자병' 기질이 나에게 잠재하고 있었던 것 같다. 입학 후 몇 달이 지나지 않아 6.25전쟁이 일어났다. 나는 부산까지 쫓겨갔다가 대구로 올라와 3년간 그곳에서 서울피난연합중학교에 다녔다. 피난 생활이었지만 나는 신앙 생활을 철저하게 계속했다. 새벽 기도는 물론 ‘한국의 무디’라고 불리던 이성봉 목사님의 집회를 모조리 좇아다니며 많은 은혜와 감동을 받았고 여러 차례 안수 기도를 받으면서 목사로서의 나의 '소명'을 다짐하곤 했다.
다시 서울로 올라와 서울고등학교에 다니며 인생의 기반을 닦게 되었다. 김원규 교장 선생님의 조회 시간의 훈화는 나의 사고와 습관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화장실에 가는 것을 비롯해서 깨끗하고 부지런하게 살라는 훈화는 어느덧 나의 사고와 습관이 되었다. 김원규 교장 선생님은 변영태 전 국무총리를 초청하여 검소한 삶에 대한 훈화를 하게 했는데 그 훈화가 나의 사고와 습관을 형성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치약을 조금 써도 된다는 훈화는 나로 하여금 지금도 치약을 조금만 쓰도록 하게 했다. 그리고 그 분이 학생들 앞에서 아령을 하면서 운동을 강조했는데 나는 그 후 아령을 하며 몸을 다지기도 했다. 김원규 교장 선생님은 우리 학년 학우들을 칭찬하므로 우리들로 하여금 대단한 자존 감과 자부심을 지니도록 만들었다. 그 결과 우리 학년 출신들 상당 수가 사회의 유력한 지도자들이 되었다.
3 안병욱 선생님은 영어를 가르치면서도 인생을 가르쳐 주었다.
안병욱 선생님은 영어를 가르치면서도 인생을 가르쳐 주었다. 한 번은 칠판에 "Servant of Sin, Servant of Righteousness" 라는 구절을 써 놓고 그 뜻을 설명했는데 지금도 그 설명이 생생하다. 한 번은 한국 은행을 지나 학교로 가는 길에서 안병욱 선생님을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나를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들을 바라보라고 하셨다. 얼굴들의 표정이 어떠하냐고 물으셨다. 그 질문도 그리고 그 질문의 의도도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한다. 한 번은 어머니를 주제로 영작을 하는데 '자비한' 이란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아 선생님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그때 안병욱 선생님은 즉시 'benevolent'라는 단어를 가르쳐주셨는데 지금도 잊지 않고 기억한다.
정치근 선생님도 영어를 가르치면서도 인생과 문학을 가르쳐 주셨다. 고등학생들의 정서를 너무나 익히 알고 이해하면서 우리들의 정서에 맞는 이야기들을 너무 재미있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해 주셨다. 그 이야기들 안에는 선생님의 신앙의 간증도 포함되어 있었다. 서수준 선생님의 음악 시간도 너무 재미있었고 흥겨웠고 유익했다. 함께 공부하던 같은 반 친구들도 너무너무 좋았다. 일일이 다 거론할 수는 없지만 이홍균 안병섭 이수성 김용준 송영달 강웅조 강희정 주동설 장일선 이준우 이재윤 홍성우 등이 즐겁게 기억된다.
나는 고등학생 시절에도 신앙 생활에 철저했다. 그때 나는 김치선 목사님이 담임하시던 창동교회에 다녔는데 김치선 목사님을 통해 신앙적 감화를 많이 받았다. 새벽 기도는 거의 빠지지 않았고 새벽 기도 후에는 곧바로 남산에 올라가서 30여분 동안 다시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내려와서 아침 밥을 먹고 학교로 향하곤 했다. 고3 시절에 일년 동안 왕십리에 가서 개척 교회를 시작할 정도로 나의 신앙과 전도와 봉사는 철저했다. 고3이라고 전적으로 공부에 매달리지는 않았다. 나에게 있어서 공부는 목적이 아니라 방편이었다. 그러나 공부도 상위권에는 속했다.
대학에 진학할 때 세 분 목사님들(한경직, 명신홍, 김치선)을 찾아가서 조언을 구했다.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무엇을 전공하는 것이 도움이 되겠느냐고 여쭈었다. 역사학이나 영문학이나 철학을 공부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했다. 결국 나는 서울대학교 문리대 사학과에 진학했다. 나는 본래 남의 말을 잘 듣는 터라 선배 목사님들의 조언의 말씀들을 듣고 역사학을 택하고 전공하게 되었는데. 그 선택은 나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탁월한 선택 중의 하나였다. 4년간의 역사 공부는 신학을 공부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 주었을 뿐 아니라 나의 사고와 안목을 넓혀 주었고 나의 삶의 자세를 형성해 주었다.
4 한철하 교수, 펠리칸 교수들로부터 역사 신학을 배웠다.
대학을 졸업한 후 나는 총회신학교에 입학하여 신학 수업을 시작했는데 나는 한철하 교수로부터 학문적 도전과 감화를 많이 받았다. 리서치 위주의 교회사 연구의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특히 어거스틴의 초기 작품들을 읽으며 그의 신학 방법론과 신앙과 이성과의 관계에 대한 그의 입장들을 다루던 “어거스틴 연구” 강의는 나에게 많은 감동과 학문에 대한 정열을 불어 넣어 주었다. 결국 나는 나중에 어거스틴에 관한 박사 학위 논문을 쓰게 되었다. 총회신학교에서 세 학기 공부를 마치고 미국 필라델피아의 훼이스 신학교로 유학하여 신학 수업을 계속했다. 무턱대고 돈 백 불을 가지고 미국으로 간 것이었다. 그리고 아무 사람의 도움도 받지 않고 12년 동안 유학 생활을 했다. 훼이스 신학교에서의 유학 생활은 넉넉하고 즐거운 시절이었다. 학교에서 나에게 좋은 일자리(인쇄소에서의 일과 페인트하는 일)를 주어서 내가 원하는 대로 일하며 생활비를 벌면서 여유 있게 생활할 수 있었고 10여명 이상의 한국인 학생들과 가까운 교제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1964년 훼이스 신학교를 졸업한 후(B.D. 취득) 같은 필라델피아시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 입학하여 1년 반 동안 석사 과정(Th. M.)에서 교회사를 전공했다. 해박한 지식을 가진 노련한 교회사 교수 울리(Woolley) 밑에서 고생도 많이 했지만 지식도 많이 얻었다. 석사 학위 논문의 제목은 “신의 도성에 나타난 어거스틴의 역사 이론”이었는데 이는 후에 박사 학위 논문으로 발전했다. 그 때 북에 계시는 어머니와 가슴 저미는 사랑과 슬픔의 편지를 두 번 주고 받은 일이 있었다.
1966년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졸업한 후 예일대학교 신학원에 입학하여 석사 과정(S.T.M.)에서 역사 신학을 계속해서 전공했는데 한 해 동안의 수학은 매우 유익한 것이었다. 단순히 강의를 듣고 시험을 보는 식의 공부가 아니고 연구 논문을 써서 제출하는 식의 공부였는데 리서치 위주의 공부가 참된 공부라고 생각했다. 역사 신학 교수 자로슬라브 펠리칸(Pelikan) 박사의 강의들은 명 강의 중의 명 강의였고 그 분은 내가 만난 교수 중의 교수요 학자 중의 학자였다. 나는 한 해 동안 도서관에서 살 정도로 밤낮 책에 파묻혀 지냈다.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펠리칸 교수의 지도를 받아 쓴 석사 학위 논문의 제목이 “교부들에 나타난 이사야서의 메시야적 해석”이었는데 교부들이 이사야서의 메시야 예언적 부분들을 다루고 해석하는 공통적 특징들을 살펴보았다. 예일대학에서 수업하던 시절 교회사의 대가인 라토렛 교수와 베인톤 교수와 친분을 갖게 된 것은 다행한 일이었다.
5 일을 하면서 유학 생활을 즐겁게 했다.
나는 12년 동안의 미국 유학생활 중 여름 방학에는 물론 학기 중간에도 틈틈이 일을 하면서 공부를 했다. 훼이스 신학교에서는 건물 청소, 식당 웨이터 일, 인쇄소 일 및 건물 페인트 하는 일을 했고,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시절에는 화장실 청소, 식당 웨이터 일, 화학 도금 공장 일, 정원 가꾸기 일, 주택 페인트 일, 브리타니카 백과사전 판매 일 및 접시 닦기와 백화점에서 판매원 일등을 했다. 예일 대학교에서 공부할 때는 주로 학교 도서관 일을 했고, 아이오와에서 공부할 때는 주로 주택 페인트하는 일을 했다. 요사이는 한국 유학생들이 한국 교회의 보조를 받으면서 공부하기 때문에 일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나의 경우 일하면서 공부한 것이 아주 좋은 경험이 되었다. 일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고 유익한 일이었다.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공부하던 어느 해 여름 나는 뉴욕 번화가에 있는 일본인이 경영하던 "아주마" 선물 백화점에서 손봉호, 마루야마(동경대학교 총장)등과 함께 판매원의 일을 했다. 각색 인종의 여자 손님들을 날마다 대했다. 그 나라 말로 인사하는 법, 대화하는 법, 설득하여 물건을 사게 만드는 법을 익혔다. 남미 여자에게는 스페인 말로, 독일 여자에게는 독일 말로, 프랑스 여자에게는 프랑스 말로, 유대인 여자에게는 히브리 말로, 그리스 여자에게는 희랍어로 간단한 인사말을 건네면 이미 그들의 마음을 절반은 산 것이었다. 대부분의 여자들이 판매원의 판매 술에 넘어가는 것을 발견했다. 재미있는 일이었다. 내가 미국에서 일하던 일들 중 주택 페인트 하는 일과 정원 가꾸는 일이 육체적으로는 가장 힘든 일이었다. 뜨거운 태양 열 아래서 이층 또는 삼층 주택 벽의 낡은 부분들을 베껴 내고 보수한 후 그곳을 깨끗하게 페인트 하는 일과 넓은 정원의 풀을 깎고 흐트러진 화단을 깨끗하게 새로 단장하는 일은 너무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일하다 말고 풀밭에 들어 눕곤 했다. 그러나 마음은 즐거웠다. 낡은 집이 새 집으로, 흐트러진 정원이 단정한 정원으로 바꾸어지는 것을 바라 보았기 때문이었다.
6 “하나 남은 장학금을 나에게 줄줄 알고 왔습니다.”
1966년 예일대학 신학원에서 석사학위(S.T.M.)를 취득하고 졸업할 때 에드워드 흄 휄로우십을 받았는데 그 상금의 일부를 총신대학에 장학금으로 보냈다. 몇몇 학교의 박사 학위 과정에 입학원서를 제출했는데 아이오와 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 입학이 허락되었다. 입학은 허락되었지만 장학금은 허락되지 않았다. "장학금이 하나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나에게는 해당되기 어렵다"는 내용의 편지를 받았다. 그러나 나는 헌 차를 몰고 무조건 아이오와로 달려갔다. 그리고 주임교수 포렐 박사를 만난 다음 "하나 남은 장학금을 나에게 줄줄 알고 왔다"고 했다. 포렐 교수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으나 그 장학금을 나에게 줄 수 밖에 없다고 했다. 나는 무작정 돌진해 나가므로 나의 일생을 헤쳐 나가곤 했다.
나는 아이오와에 있는 동안 광활한 옥수수 밭과 연못들로 이어진 자연을 즐길 수 있었고 그곳에서 공부하고 있던 한인 교수 및 학생 가정들과의 교제를 증진할 수 있었다. 그 당시 한인들 사이에 별다른 교제가 없었는데 나는 한인들이 만나는 장을 마련하는 역할을 했다. 운동회, 야유회, 회식 등을 마련했는데 그 결과 한인회가 만들어 졌고 수년 후에는 한인교회까지 만들어 졌다. 나는 한인들뿐 아니고 외국 학생들과의 교제를 증진하는 일도 도모했는데 많은 즐거움과 성과가 있었다. 인생은 만남이다. 나는 6개월 동안 거의 매 주말마다 4시간 거리의 시카고로 드라이브를 하며 데이트에 열중하고 있었다. 데이트에 열중하다 보니 한 두 과목의 점수가 낙제 점수로 나왔다. 그러나 6개월 동안의 데이트 후 나는 그녀와의 결혼에 꼴인 할 수 있었다. 그녀는 서울 음대를 졸업한 후 시카고의 감리교 기관에서 사무직원으로 일을 하고 있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딸 같은 타입의 귀여운 숙녀였다. 나는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어서 결혼 반지 하나 살 돈도 없었으나 그렇다고 아무 주저함이나 미안함도 없이 무작정 결혼하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아이오와 대학의 콘세트 집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했지만 재미가 있었다. 조그만 텃밭에 꽃도 심고 토마토도 심었으며 주말마다 이곳 저곳 호수를 찾아 다니며 낚시도 함께 즐겼다. 결혼 일년 후 귀여운 딸 혜원이를 얻었다.
나는 아이오와 대학에 그대로 머물면서 아이오와 대학, 아퀴나스 신학원, 드뷰크 장로교 신학교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박사 학위 프로그람에 새로 등록을 하고 리써치 위주의 연구를 시작했다. 교부신학 전공의 매고니글 교수는 옥스포드 대학 출신의 박식하고 유능한 교수로 내가 학위 논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친절한 지도를 아끼지 않았다. 매고니글, 포렐, 드러먼드 교수 등의 지도를 받아 완성한 철학 박사 학위(Ph. D.) 논문의 제목은 “두 도성에 대한 어거스틴의 교훈에 나타난 종말관의 기능”이었다. 학위 논문에서 내가 취급한 문제는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종교적 욕구(visio Dei)의 성취 가능성의 관점에서 본 현세에 있어서 인간 존재의 의미였다. 어거스틴은 인간 존재의 의미를 인간이 종말론적 완성을 향해 발전해 가는 역사의 한 점을 점유하고 있는 데서 찾는다. 그리고 인류의 역사를 두 도성에 관계의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했다. 어거스틴의 종말론적 역사관의 특징은 ‘양면성’을 내포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미래적이면서도 현세 실현적인 것이었다.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이 미래에 가서 완성되지만 현세에서도 부분적으로 실현되어 가고 있다고 보았다. 이와 같은 ‘양면성’은 어거스틴의 두 도성에 대한 개념, 현세관, 교회관 및 국가관에 그대로 나타났다. 어거스틴의 ‘양면성’은 나의 사고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7 역사 신학과 선교 신학의 접목과 아들 철원이의 비극
1972년 12월 학위 논문을 완성한 후 1973년 1월 예일대학으로 다시 와서 Research Fellow로 한 해를 지냈다. 긴장과 억압에서 벗어난 홀가분한 마음으로 독서와 연구를 계속했다. 바로 그 때 뉴욕을 방문한 조동진 목사님이 나를 만나자고 했다. 한국 교회 선교의 선구자인 조동진 목사님과의 만남은 나의 연구와 사역의 방향에 획기적인 영향을 미쳤다. 조 목사님은 내가 유학을 마친 후 후암교회에 교육 목사로 오라는 말씀과 귀국하기 전에 풀러신학교 선교신학원에 가서 선교학을 연구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씀을 했다. 나는 본래 남의 말을 쉽게 잘 듣는 터라 그렇게 하자고 했고 그렇게 했다.
그 해 연말 나의 생애에 획기적인 영향을 미친 또 하나의 사건이 일어났다. 1973년 11월 11일 나의 둘째 아이 철원이가 뇌수정이란 불치의 병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었다. 나는 1973년 12월 말 아내와 함께 3살 된 혜원이와 생후 1개월 된 철원이를 데리고 대륙을 횡단해서 캘리포니아 파사데나 풀러 신학교로 향했다. 그러나 여행 도중 철원이의 병세가 악화되어 시속 140여 마일 속도로 30여 시간을 5분만 쉬고 계속해서 서부 사막 지역을 달려서 로스안젤스 Children’s Hospital에 도착했다. 입원을 시킨 후 우리는 풀러 신학교 기숙사에 여장을 풀고 1974년 1월부터 풀러 신학교에서의 연구 생활을 시작했다. 생후 2개월 된 철원이가 뇌 수술을 하기 전 의사가 전해 주는 말은 충격적이었다. 수술 후 철원이가 장애아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철원이가 장애아가 된다면 내가 철원이를 사랑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나는 그렇다고 쉽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며칠 동안의 깊은 고민과 기도 끝에 나는 얼마든지 사랑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철원이가 내 아들이란 사실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와 같은 나의 사고의 변화는 사람들을 보는 나의 시각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나는 본래 착하고 아름답고 신앙이 좋은 사람들을 좋아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모두가 당신의 자녀들이기 때문에 덜 착하고 덜 아름답고 신앙이 덜 좋은 사람들도 꼭 같이 사랑하실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 때, "너는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사람들을 차별하느냐?" 라는 준엄한 책망이 들려 오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손을 들고 항복했다.
나는 조동진 목사님의 권면으로 1974년 1월 풀러신학교 선교신학원에 가서 Research Associate로 8개월을 지내며 선교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에 접하기 시작했다. 랄프 윈터, 맥가브란, 글래써, 왜그너 교수 등의 강의를 들으며 선교의 동향과 문제점들을 보기 시작했고 복음주의 선교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특히 튜빙겐 대학교의 피터 바이어하우스 박사의「Missions Which Way?」와 풀러 신학교의 맥가브란 박사의 「Eye of the Storm」같은 책들은 나에게 많은 도전과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해 주었다. 풀러 선교신학원에서의 선교학 수업은 나의 학문 연구와 사역 방향에 획기적인 영향을 미쳤다. 나는 신학과 사역을 선교적인 관점에서 보기 시작했다. 나는 또한 신학이라는 학문을 인간의 삶의 처지 즉 목회 현장과 연결시키며 보기 시작했다. 철원이의 삶과 죽음은 나의 사역에 이와 같은 의미를 실천적으로 부여하는 거름의 역할을 했다. 슬픔과 아픔이 보석이 되는 역설적인 사실도 발견했다. 내가 귀국 후 발표한 저술과 논문들 중 상당 부분이 선교학에 관한 것이었고, 신학교에서는 역사 신학과 아울러 선교 신학을 강의하게 되었으며, 교단과 한국 교회와 선교지에서는 선교 사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교단 선교부 발전에 기여했고,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한국동반자선교협의회, 한인세계선교협의회 한국세계선교협의회, 소련선교회, 아시아복음주의협의회, 세계스포츠선교협의회 등 선교 단체의 조직과 발전에 적극 참여했다. 만 12년간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1974년 10월에 귀국하여 후암교회 교육 목사, 총신대학 강사, 조교수, 부교수, 영안교회 담임 목사, 합동신학대학원의 부교수, 교수, 교장, 교수, 겸임 교수, 강변교회 담임 목사로 교수와 목회와 선교 사역에 참여했다. 여기서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참된 의미에서의 신학 수업은 강의실과 도서관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고난과 실패의 삶의 마당과 목회 및 선교 현장의 일터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삶과 사역의 현장에 부딪쳐서 형성되지 않은 신학은 상아탑적인 이론과 공허한 사색에 그치고 말 위험성이 있다. 나는 신학교와 목회와 선교의 일터에 연계하여 살아오면서 나의 신학이 점차 삶의 지혜와 동력으로 바뀌어져 감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린다.
8 감사와 기쁨과 행복한 한 평생
나는 지난 70여 년 동안의 한 평생을 돌아보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한 무한한 감사를 느끼며 기쁨과 행복을 누린다.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찬송시를 작사한 맹인 패니 크로스비 여사가 92회 생일을 맞았을 때 그의 생일을 축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한다. “이 세상에 나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있으면 내게 데려오세요. 그 사람과 악수하고 싶어요.” 나도 지금 비슷한 느낌을 가진다. 나는 최근에 “내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라는 주제를 가지고 11번 간증 설교를 한 일이 있다. 이렇게 보아도 저렇게 보아도 지난 날들을 돌아보아도 오늘의 날들을 살펴보아도 감사하고 기뻐하고 행복할 수 밖에 없는 일들이다. 내가 할 일들이 국내외적으로 많고 나를 필요로 하는 일들이 국내외적으로 많다. 내가 한 평생을 살면서 축복 받은 일들이 많은데 그 많은 일들 중에 하나가 서울 중 고등학교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일이었고, 중학생과 고등학생 시절에 이성봉 목사님 김치선 목사님들을 통해 깊은 은혜와 감동을 받을 수 있었던 일들이었다.
내가 최근에 고백한 “사랑하고 싶어라” 라는 글을 여기 옮기므로 이 글을 맺는다. “사랑하고 싶어라. 나는 요사이 주님을 생각하면 가슴에 눈물이 흐른다. 한 평생 나를 향하신 주님의 생각과 사랑이 어찌 그리 크고 어찌 그리 많은지! 실로 모래알보다 더 많은 주님의 긍휼과 용서와 사랑이 나의 가슴에 눈물을 자아낸다. 사랑하고 싶어라. 주님을 사랑하고 싶어라. 나의 맘 나의 몸 나의 정성 다 쏟아 주님을 사랑하고 싶어라. 나는 요사이 사람들을 생각하면 가슴에 눈물이 흐른다. 어린이들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너무너무 귀엽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성도들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너무너무 예쁘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이 세상 곳곳에 흩어져 사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만날 때도 비슷한 느낌을 가진다. 저들의 얼굴과 마음과 영혼 속에 창조주 하나님께서 심어놓으신 고귀한 인성과 신성의 흔적을 보기 때문이다. 저들을 모두 사랑하고 싶어라. 모슬렘도 공산주의자도 상관이 없다. 저들은 모슬렘이나 공산주의 라는 불행한 유산에 쌓여있는 가련한 영혼들일 따름이다. 사랑하고 싶어라. 사람들을 사랑하고 싶어라. 나의 맘 나의 몸 나의 정성 다 쏟아 사람들을 사랑하고 싶어라.(2007년 1월 3일 아침 교회로 운전하며 오는 차 속에서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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