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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에게서 온 편지
내가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공부하던 어느 해 가을이었다. 편지 한 장이 날아왔다.
어머니에게서 온 편지였다.나는 그 편지를 받아 떨리는 가슴으로 읽으면서 마음을
진정할 수 가 없었다. 혼자 조용한 곳으로 가서 읽고 또 읽었다. 한 자 한 자에 어
머니의 피 맺힌 사랑이 깊고 진하게 배어 있었다. 나는 울고 또 울었다. 어머니의
글씨체가 너무나 분명했다. 어머니가 이응자를 항상 크게 쓰므로 내가 어머니의 글
씨를 흉내내어 나도 이응자를 크게 쓰곤 하던 생각이 갑자기 떠 올랐다. 정말 어머
나의 편지구나! 어떻게 북한에서 어머니의 편지가 왔을까? 어머니의 편지는 편지라
기보다는 절규였다. 어머니의 피 맺힌 사랑의 절규는 다음과 같았다.
" 내 아들 명혁에게 9월 5일 네의 편지와 동시에 외로히 자라 성인이 된 내 아들
명혁이에 얼굴 더구나 훌륭하게 된 내 아들을 ...나는 보고 십고나. 손이라도 한번
꽉 쥐어 보고 십고나. 이 내 기쁨을 지면상으로는 표현할 수 없다. 명혁아! 나는 네
말 그대로 오래 오래 살아서 내 사랑하는 아들 만날 날을 기다리겟다. 몽중엔들 이
저스랴 내 명혁이. 부디 건강하기를 축원하면서 어머니 글 9월 29일" .
너무나 짧은 절규였지만 그 속에는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었다. 말하고 싶어도 다
말할 수 없는 그 짧은 사연가운데 혈육이 느낄 수 있는 사랑의 아픔과 기쁨과 슬픔
과 안타까움과 소원과 간구가 다 들어 있었다. 어떻게 북한으로부터 어머니의 편지
가 미국에 있던 나에게 날아올 수가 있었는가? 나는 1966년 여름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홍콩을 거쳐 일본으로 가는 김의환 박사를 통해 홍콩에서 어머니에게 편지
한 장을 나의 사진 두 장과 함께 띄워 보낸 일이 있었다. 어머니가 나의 편지를 받
아 보고 당신의 글을 홍콩을 통해 보내온 것이었다.
나는 그 후 다시 한번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냈고 어머니는 또 다시 나에게 동생
들의 소식과 함께 편지 한 장을 보내왔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 후 나는 어머니
의 편지를 항상 머리 맡에 놓아 두고 읽으면서 어머니를 생각하곤 했다. 그리고 어
머니의 편지를 복사하여 한국에 있는 할머니와 이모들을 비롯한 여러 친척들에게
한 장씩 보내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중앙정보부에서는 집집을 찾아와서 편지 사
본들을 모두 압수해 갔다고 했다.
내가 미국에서 12년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해서 총회신학교에서 교수하던
1977년 11월 어느날 아침이었다. 내가 학교로 가려고 집을 나서는 데 어떤 사람 둘
이 나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한 후 잠깐 시간을 내 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본래 남의 말을 쉽게 듣는 편이라 그 날도 그들의 말을 쉽게 믿고 그들의 차
에 올라탔다. 그런데 나를 데리고 간 곳을 그당시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중앙
정보부 남산 지하실이었다. 그 곳에서 밤이 맞도록 두 사람이 나를 취조한 것은 내
가 북한에 편지를 보낸 일과 일요일 학도 군사 훈련에 반대하며 주일 성수를 주장
한 일이었다.나는 조금도 긴장하지 않고 아주 편안하고 당당한 마음으로 그들의 취
조에 응했다. 그들은 나중에 내가 귀하게 간직하고 있던 어머니의 편지 원본을 압
수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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