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변소식지

  장영환 목사
  제63호- 만나봅시다(2)
  


한해의 끝자락은 지난날을 되돌아 볼 수 있어서 좋은 점도 있지만, 슬픔과 기쁨과 애통함이 뒤섞여 가슴을 저리게도 한다. 겨울답지 않게 포근하더니 오후에 접어들자 가벼운 눈바람이 날리며 심술을 부리던 어느 오후, 언제 뵈어도 싱그런 웃음으로 소년 같은 장영환 목사님과 마주하였다. 현재 고등부를 사역하고 계신다.

장영환 목사님을
모시고



안녕하세요? 목사님 오늘은 목회자로서 보다 인간 장영환의 모습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강변교회에는 언제, 어떤 동기로 부임하셨나요?
2006년 12월에 부임했으니 이제 3년 되었네요. 타 교회에 5년(2곳) 정도 사역하다가 강변교회에 왔습니다. 강변교회는 교단 안에서 좋은 교회로 알려져 있었고, 대학원 재학 시 학생회 임원으로 있을 때 직접 방문해서 좋은 인상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부임 후 느낀 점은? 그리고 고등부를 지도하면서 특히 중점을 두는 모토는?
‘가족’이란 느낌! 처음 부임해 교역자 수련회를 가서 원로목사님께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에도 ‘가족’이라고 응답하였습니다. 성도들뿐만 아니라 교역자도 한 가족처럼 함께하는 공동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고등부의 모토는 해피스찬(신조어: 해피 크리스찬의 준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택한 특별한 존재지만 이 세상에는 어글리 크리스찬, 선데이 크리스찬 등 너무 약하고 부족한 크리스찬이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특별히 선택된 존재라는 자부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대학입학이라는 문턱을 넘어야 하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점에 처한 고등학생들에게 특별히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한국의 교육환경 가운데 있는 고등학생은 자기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 시기는 우리 인생의 한 조각입니다. 그 조각이 모든 전체 그림을 말해 주지는 않지만, 또한 그 한 조각이 없으면 완전한 그림이 나올 수 없습니다. 지금 고교시절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귀한 한 과정이므로 학생, 자녀, 주님의 제자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라고 지도하고 있습니다.

고등부 지도하면서 어려웠던 점과 보람은?
고등부는 머리들이 굵어서인지 반응이 좀 늦어요. 가장 큰 보람은 단기 선교여행을 다녀온 후 아이들의 변화된 모습이었습니다. 선교여행 전에는 예배시간에 지각, 결석 등 불성실하고 하나님 인식도 부족했는데 선교지에서 많이 변화되었어요. 신앙생활의 변화된 모습을 보노라니 바로 강변교회 고등부편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가 되었어요. 하하.

목회자가 되신 동기는요?
어렸을 때부터 시골교회 목회자이신 아버님 모습을 본 것이 큰 영향인 것 같습니다. 조그맣고 가난한 시골에서 60이란 연세에 저를 낳으신 가정환경에서 태어난 저는 목사가 되지 않겠다고 고2까지 많은 반항과 방황을 했습니다. 그 이후 결정적으로 목회자로서의 부르심은 고3 초로 생각됩니다. 목사가 되지 않는 방향을 추구하고자 했는데 그 모든 길이 다 막혀서 너무 힘들고 낙심 중, 회개하며 주님 앞에 나간 것이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그 후 총신대에서 신학을 시작하였고, 지금까지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불만은 없으셨나요?
불만은 없었고요, 의문은 두 번 있었습니다. 대학 2학년 때 ‘과연 내가 목회자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휴학하고 나 자신에 대해 깊이 있는 질문을 하였습니다. 1년 휴학 중 주일만 교회에 나가고 사회에서 non-christian과 지냈습니다. 교회를 멀찍이 두고 보니까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자 하는 갈망이 더 강해졌어요. 또 대학원 진학 후, ‘하나님이 어떤 자리에 나를 쓰실까?’ 하는 고민 후, 선교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선교사역자로 분명한 부르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모님과는 어떻게 만나셨고 서로 어떤 점이 좋으셨나요?
아내는 신학대학원 후배 소개로 2007년 7월 7일 처음 만났습니다. 아내를 만나는 순간 한눈에 반해버렸지요. 첫 눈에 외적으로 나타나는 현숙하고 덕스러움이 이름(현덕)과 일치한다고 생각되었습니다. 특별히 아내의 매력은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설명을 잘 하지 않으면 오해되겠죠. 아내는 키도 크고 말도 똑 부러지게 하는 등 겉은 강하나, 저는 아내의 여린 속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아내를 볼 수 있는 눈을 주시고 내 일생의 반려자가 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만난 지 한 달 만에 정식교제를 요청했습니다. 8월 8일입니다. 원래 아내는 평소 목회자의 사모가 될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처음 만날 때 꾸미고 포장하는 반면 저의 첫인상은 상당히 순수하고 겉과 속이 다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더 관심이 가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18개월의 열애 끝에 결혼하게 되었지요.
제 인생에서 자랑할 것이 3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가난한 목회자의 가정에서 태어나 가난이 무엇인가 알게 된 것. 둘째, 목회자의 길을 결정한 것, 셋째, 아내를 만나 부부가 된 것입니다.

목회자로서는 어떤 꿈을 가지고 있으신가요?
제 삶의 목표에는 네 가지 비전이 있어요. 7년 이상 이 비전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 첫째, 탁월한 설교자 (훈련 필요)
● 둘째, 세계적인 선교사 (선교사는 선교지 뿐만 아니라 일반교회에서 선교사역을 하는 목회자, 선교전략 행정, 동원 등의 사역자를 포함)
● 셋째, 피스메이커 (위험하고 가난하고 분쟁중인 곳에서 중재하고 사람들을 세워주는 관계자의 역할)
● 넷째, 온유, 겸손한 삶을 이끌어 가신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고자 함.

저는 성경인물 중 10여 년 동안 도망자로 오랜 시간 훈련을 받은 다윗을 좋아합니다. 다윗의 다윗 됨은 바로 상처와 고난을 통해 된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왕위에 올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종이 될 수 있었던 거였죠.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목회자로 8년 사역하셨는데 시험이나 힘들 때는?
처음 사역 시 목회자로서 성도들의 마음을 이해 못해 힘들었습니다. 교회의 스타일이 사역자가 얼마큼 열매(결과)가 있느냐로 평가하고 판단하던 곳에서입니다. 애매히 고난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교회증축으로 예산이 부족해지자 교역자 사례비가 줄어 학비, 생활비, 등록금 부족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새벽 2시부터 5시까지 새벽 세차하고 5시30분에 새벽예배를 드리게 됐는데, 피곤해하고 불성실해 보여 사모님으로부터 비난도 받았으나 굳이 설명을 드리지 않고 눈물로 베갯잇을 적시는 날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사랑하는 주일학교 아이들과 선생님들의 응원과 연약한 저를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붙잡아 주셔서 2년 동안 인내하며 사역을 감당하였습니다. 마지막 날, 다른 교회로 옮기려 인사했을 때 사모님은 그 동안 미안하고 수고했다 하시며 격려해 주셨습니다. 만약 그때 제가 이겨내지 못하고 포기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고 그때 흘린 눈물이 하나님의 은혜가 되고 그 훈련을 통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창립 30주년을 맞은 강변교회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은?
좋은 점은 모든 성도들이 예배드리는 자세가 잘 준비되었다는 것이고, 성도 개개인이 인격적이고 젠틀한 점, 목사님과 성도 사이에 오버 액션이 없는 점 등입니다. 그런 성숙한 자세는 원로 목사님을 통한 강하고 철저한 훈련의 결정체인 것 같습니다.
그 장점이 관점에 따라 단점이 될 수도 있겠죠. 하나님께는 헌신과 희생을 각오하지만 이웃에겐 부족할 수 있습니다. 너무 젠틀하고 인격적이기에 역동적인 부분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파동이 없는 고인 물보다는 흐르는 강물이 신선한 것이지요. 초대교회 성도들의 모습은 다 같이 모여 하나님 말씀을 받는데, 떡을 떼는데, 교제하는데, 기도하는데 전혀 힘썼습니다. 자칫 아는 분들만의 지엽적인 교제는 새로운 사역이나 새 신자들의 적응에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젊은 일꾼들이 많이 뛰어야 한다고 말씀은 많이 하시지만, 막상 젊은 사람이 움직이려면 우려하는 부분이 상당히 많은 것 같습니다. 물론, 깊이 있는 논의와 바른 절차에 따라 진행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격려 가운데 해야 합니다. 반면 젊은 세대는 노련한 분들의 의견을 잘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려야 합니다. 그리고 반대에 지혜롭게 대처하고 인내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반대를 무시하지 말고 왜 반대를 하는지 그 이유와 마음을 알고자 할 때 조화가 이뤄지게 되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은?
짧은 시간이지만 제가 강변교회에서 김명혁 목사님 밑에서 배우고 가르쳐 주신 영향력을 통해 주님이 주신 소명을 즐겁게 사역할 수 있는 힘을 얻었고 허 목사님을 보좌하면서 목사님의 순수함, 인내, 함부로 생각을 말씀하지 않은 것 등의 인격을 배우고 있는 것은 제게 큰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강변교회에 와서 감사한 일이 많이 생겼습니다. 34년 전, 김명혁 목사님과 아버님의 인연(충북 괴산에서 아버님이 전도사로 사역 중 김명혁 목사님이 청년부를 데리고 내려와서 단기사역을 하심)도 감사하고 아버님이 북한에 있는 가족 만남(2007년 가을 이복누이 상봉)도 감사하고, 시골에 계신 부모님을 모셔 사시게 할 수 있는 집이 생겨서 감사하고, 무엇보다 제 아내를 만나고 결혼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 정리 황국희 >
[인쇄하기] 2010-02-24 15:0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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