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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혁 목사
  교회는 어떤 곳인가? (8) "교제와 봉사와 기쁨이 충만한 곳"
  

교회는 어떤 곳인가? (8) "교제와 봉사와 기쁨이 충만한 곳" 2007.8.26.
빌1:3-11,4:14,15

며칠 전에 우리들에게 따뜻한 소식 하나가 전해졌습니다. 탈레반에 납치된 인질 중 이지영(36)씨가 석방될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기의 석방을 양보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게 되었습니다. 국내 모 신문은 “이씨의 희생 정신은 납치 30여일이 되어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친데다 언제 살해당할지 모르는 절망적 상황에서 석방의 기회를 동료에게 양보한 것은 범인(凡人)의 상식과 의지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숭고한 희생이 아닐 수 없다”고 높이 평가했습니다. 또 “지영씨는 몸 상태가 아주 안 좋았다가 석방 며칠 전 가까스로 회복됐는데도 ‘나는 몸이 괜찮아졌으니 다른 이를 풀어주라’고 했다”며 이런 이씨의 행동은 탈레반조차 감동시켰다고 보도했습니다. 분당샘물교회 교인인 이지영씨는 2년 전 아프간에 처음 봉사활동을 다녀온 뒤 삶의 목표를 봉사로 정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하고 있던 웹디자인 일을 정리하고 지난해 12월 아프간으로 떠나 현지에서 교육 및 의료 봉사활동을 해왔다고 합니다. 이지영씨는 현지 유치원 등에서 학생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쳐주고 병원에서 간호보조 역할도 했다고 합니다. 봉사가 그녀의 삶의 목표였습니다. 이지영씨는 요사이 한국교회에서 찾아보기 힘든 사랑과 희생과 봉사의 정신을 나타내 보였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아침에는 “교제와 봉사와 기쁨이 충만한 곳” 이란 제목으로 설교를 하겠습니다. 신약에 나타난 이방인 교회들 중에서 가장 이상적인 교회였던 빌립보 교회를 예로 들면서 교회는 “교제와 봉사와 기쁨이 충만한 곳” 이란 제목으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예루살렘 교회 이후에 이방에 세워진 교회들 중에서 빌립보 교회는 가장 이상적인 교회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가장 사모하고 가장 사랑한 교회였습니다. 거기에는 사랑의 교제가 있었고 사랑의 희생이 있었고 사랑의 봉사가 있었고 사랑의 기쁨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모한다”(빌1:8)고 고백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빌1:7)라고 고백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나의 사랑, 나의 사모, 나의 기쁨, 나의 면류관”이라고 불렀습니다. 제가 1980년 4월 청담동에 교회를 세우면서 교회 이름을 강변교회라고 지은 이유는 강변에 세워졌던 빌립보 교회를 닮기를 소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강변교회의 표어를 “서로 돌아보고 기쁨으로 섬기는” 교회라고 정했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가장 이상적인 이방인 교회였던 빌립보 교회의 특징 세 가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교제와 봉사와 기쁨이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첫째, 빌립보 교회는 사랑의 교제와 사랑의 참예가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빌1:5).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예한 자가 됨이라”(빌1:7).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빌3:10).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예하였으니 잘하였도다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예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빌4:14,15). 여기 ‘교제’ 라는 말과 ‘참예’ 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옵니다. 이 말을 영어로는 fellowship, share, partnership 이란 말로 번역했는데 빌립보서의 두드러진 주제는 교제와 참예입니다. Fellowshipping, sharing, partner-shipping 이 빌립보서의 두드러진 주제입니다. 여기 ‘교제’ 라는 말과 ‘참예’ 라는 말이 비슷한 말이면서도 조금 다른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제’는 가벼운 만남으로 그칠 수 있습니다. 식사 한번 같이 하고 그칠 수 있습니다. 차 한 번 같이 마시고 그칠 수 있습니다. 교회에 와서 인사 몇 번 하고 그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참예’는 좀 더 깊은 교제를 의미합니다. 서로 나누는 sharing 의 교제를 의미하고 어떤 일을 함께 하는 partner-shipping 의 교제를 의미합니다. 시간과 물질과 몸을 드려서 무슨 일을 함께 하는 것을 말합니다. 안내하는 일, 전도하는 일, 구제하는 일, 봉사하는 일을 함께하는 것을 말합니다.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은 복음과 은혜 안에서 교제했고 바울의 고난과 선교 사역에 참예했다고 했습니다.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예하였으니 잘하였도다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예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빌4:14,15). 교제와 참예는 교회 생활에 있어서, 성도들의 삶에 있어서, 너무너무 중요한 요소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사랑의 교제와 사랑의 참예가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가장 이상적인 교회가 되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과 루디아와의 만남과 교제와 참예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슬쩍 지나가는 가벼운 만남이 아니었습니다. 기도와 복음 안에서의 깊은 교제와 사도 바울의 사역을 함께하는 실제적인 참예였습니다. 루디아는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에 청종했습니다(행16:14). 루디아는 물질과 시간과 공간을 열어서 사도 바울의 복음 사역에 참예했습니다.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가로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니라”(행16:15). 루디아의 교제와 참예는 형식적인 만남과 교제가 아닌 실제적인 사랑의 교제와 참예였습니다. 이와 같은 사랑의 교제와 사랑의 참예에 대해서 사도 바울이 얼마나 큰 위로와 감동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빌1:5).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예한 자가 됨이라”(빌1:7).
루디아뿐이 아니었습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루디아의 본을 따라서 모두 사랑의 교제와 사랑의 참예의 삶을 살았습니다. 빌립보 교회 신자들은 방관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구경꾼들이 아니었습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바울의 사역에 참예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예한 자가 됨이라”(1:7). “복음에 나와 함께 하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트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빌4:3).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예하였으니 잘 하였도다”(4:14). 빌립보 교회 신자들은 기도와 물질로 사도 바울의 사역에 참예했습니다. 바울에게 선교 헌금과 구제 헌금을 보냈습니다. “빌립보 사람들아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예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4:15).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돈이 많아서 선교 헌금과 구제 헌금을 많이 보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가난한 중에서 헌금을 넘치도록 했습니다.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고후8:2). 그러므로 빌립보 교회는 제일 좋은 교회가 될 수 있었습니다. 목회자의 목회 사역과 구제 사역과 선교 사역에 참예하는 성도들이 많은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빌립보 교회 신자들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사도 바울의 선교 사역과 구제 사역에 적극적으로 참예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기도와 물질뿐 아니라 몸으로 사도 바울의 사역에 참예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 있다는 소식을 들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함께 모여서 회의를 했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복음을 위하여 감옥에 갇혀 있는 사도 바울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도울 수 있는 방법인가에 대해서 토론을 했습니다. 결론이 나왔습니다. 교인들 중에서 한 사람을 대표로 뽑아 로마로 보내어 빌립보 교회 신자들의 사랑과 소식을 전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동안 감옥 안에 머물러 있으면서 바울을 돕도록 하자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참된 사랑은 보고 싶어하고 만나고 싶어하고 그리고 몸으로 돕고 싶어하기 사랑입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대신해서 로마로 갈 사람을 정했습니다. 그 사람이 에바브로디도란 사람이었습니다. 성품이 부드럽고 충성스럽고 희생적인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누구나 만나면 위로를 받고 좋아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에바브로디도는 성도들의 사랑의 편지와 사랑의 선물을 가득히 담은 커다란 보따리를 짊어지고 수 천리 바다 길을 항해한 후 로마에 도착했습니다.
어느 날 로마 감옥에 갇혀 있던 죄수 사도 바울에게 뜻하지 않은 손님 한 사람이 찾아 왔습니다. 사도 바울이 꿈에도 그리며 사모하고 보고 싶어하던 빌립보 교회 신자의 한 사람인 에바브로디도였습니다. 바울은 너무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사랑의 편지와 선물을 받고 나서 사도 바울은 너무나 기뻐했습니다. 바울은 그 때의 감정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빌4:10). “에바브로디도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빌4:18). 에바브로디도는 사도 바울과 함께 감옥에 머물면서 충성스럽게 그리고 희생적으로 바울을 수종 들었습니다. 죽을 병에 걸리기까지 충성스럽게 봉사했습니다. “저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2:27).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로다”(2:30).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대신하여 몸을 바쳐 바울을 섬겼습니다. 몸으로 바울의 사역에 참예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얼마나 큰 위로와 격려를 받았겠습니까? 몸으로 섬기며 몸으로 봉사하는 사람이 많은 교회는 좋은 교회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을 몸으로 섬기며 몸으로 봉사한 교회였습니다. 그러므로 제일 좋은 교회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제가 어디에 가서 사역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혹 북한에 가서 마지막 몇 년을 지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혹 그때 저를 찾아올 에바브로디도가 있을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둘째, 빌립보 교회는 사랑의 봉사와 사랑의 섬김과 사랑의 착함이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사도 바울의 고난에 참예하고 그리스도의 일에 참예하고 사도 바울의 선교 사역에 참예한 것을 가리켜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이 이미 ‘봉사’와 ‘섬김’과 ‘착함’의 삶을 살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사실 교제와 참예가 진하게 될 때 실제적이 될 때 교제와 참예는 사랑의 봉사로 나타납니다. 참예는 곧 봉사입니다. 시간과 물질과 몸을 바쳐서 주님의 일에 참예하는 것이 곧 봉사요 섬김이요 착함이라고 설명을 했습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확신하노라”(빌1:6). “너희의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찌라도 나는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리라”(빌2:17).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빌2:30).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과 에바브로디도가 주님을 섬기고 사도 바울을 섬기면서 자기들의 생명을 돌아보지도 않은 것을 지적하면서 깊은 감동에 사로잡히기도 했습니다.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게는 사랑의 봉사와 사랑의 섬김과 사랑의 착함이 충만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이 믿을 때부터 착한 일을 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하면서 마지막 때까지 착한 일을 계속하게 되기를 위해서 기도한다고 말했습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확신하노라”(빌1:6). 빌립보 교회는 사랑의 봉사와 사랑의 섬김과 사랑의 착함이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빌립보 교회가 가장 좋은 교회, 가장 모범적인 교회가 되었습니다.

셋째, 빌립보 교회는 사랑의 기쁨이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결국 빌립보 교회는 사랑의 기쁨이 충만한 교회가 되었습니다. 사실 교제와 참예가 진하게 될 때 교제와 참예는 사랑의 봉사로 나타나고 다시 사랑의 기쁨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에는 기쁨이라는 말이 제일 많이 나옵니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빌1:3-5).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빌1:18).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빌1:25).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찌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빌2:17,18). “이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저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빌2:29). “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빌3: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빌4:1).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빌4:10).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빌4:18).
빌립보서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기쁨이 충만한 것이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강해설교자인 제임스 보이스 박사는 빌립보서 강해서를 쓰면서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빌립보서는 성경중에서 기쁨이 가장 충만한 책입니다. 빌립보서 전체를 통하여 사도 바울은 기쁨과 행복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 짧은 네 장을 통하여 열 여섯 번이나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어떤 처지에 있든지 간에 자족하는 법을 배웠을 뿐 아니라 그 어떠한 처지에서도 기뻐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에게서는 기쁨이 넘쳐 흘렀습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권면한 사도 바울은 기쁨의 참 근원을 찾아낸 사람이었습니다.” 제임스 보이스 박사는 가장 뛰어난 세계적인 강해설교자로 존경을 받고 있는데 제가 이십여 년 전에 제임스 보이스 박사님을 초청하며 한경직 목사님과 박윤선 목사님과 함께 세 분을 강사들로 모시고 내장산에서 케직사경회를 개최한 일이 있었는데 은혜로운 모임이었습니다.
빌립보서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기쁨이 충만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기쁨은 사도 바울의 가슴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았습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가슴 가슴에도 전염되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옥중에서 매를 맞으면서도 기뻐하며 찬송을 불렀는데 그때 그 기쁨은 간수에게 전염되었고 루디아에게 전염되었고 빌립보 교회 성도들 전염되었을 것입니다. “밤 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행16:25). 그런데 그때 사도 바울의 기쁨은 환경이나 소유에서 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주님 안에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 안에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기쁨의 비결은 주님 안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로마 옥중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로마 옥중에서도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며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빌1:3,4).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빌1:18). 로마 옥중에서의 사도 바울의 기쁨의 비결도 환경이나 소유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주님 안에 있었던 것이 사도 바울의 기쁨의 비결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1장을 기록하면서 ‘그리스도 예수’ 또는 ‘그리스도’라는 말을 열 일곱 번이나 사용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찌어다”(빌1:1-2). 그의 몸과 마음과 생각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님에게 집중되어 있었고 오직 그리스도 예수님에게 사로 잡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뻐하고 또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지녔던 그 기쁨의 또 하나의 비결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과 친밀한 사랑의 교제였습니다. “내가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며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빌1:3-5). 사도 바울은 이 사실을 4장에서 아주 분명하게 드러냈습니다.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예하였으니 잘하였도다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예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번 두번 나의 쓸것을 보내었도다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과실이 번성하기를 구함이라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토록 영광을 돌릴찌어다 아멘”(빌4:10-20).
사도 바울의 기쁨과 승리의 비결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였지만 동시에 빌립보 교회 성도들과의 친밀한 사랑의 교제와 사랑의 참예에 있었습니다. 로마 옥중에서 사도 바울이 가슴에 지녔던 기쁨과 승리는 에바브로디도에게 그대로 전염되었고 에바브로디도를 통해서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그대로 전달되었을 것입니다. 결국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극한 가난 중에서 환난과 시련가운데서도 사도 바울처럼 기뻐하면서 사랑과 희생과 봉사의 아름다운 삶을 살 수가 있었습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우리의 바라던 것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고후8:1-5).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아침 신약에 나타난 이방인 교회들 중에서 가장 이상적인 교회였던 빌립보 교회의 아름다운 모습 세 가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첫째, 빌립보 교회는 사랑의 교제와 사랑의 참예가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둘째, 빌립보 교회는 사랑의 봉사와 사랑의 섬김과 사랑의 착함이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셋째, 빌립보 교회는 사랑의 기쁨이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의 극진한 사랑을 받은 제일 좋은 교회가 되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한 마디로 사랑을 받는 교회였습니다. 사도 바울로부터 사랑을 받는 교회였고 주님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교회였고 세상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한국교회는 사랑을 받는 교회가 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의 한국교회의 성도들은 사랑을 받는 성도들이 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지금 인질로 잡혀 있는 이지영씨가 요사이 한국교회에서 찾아보기 힘든 사랑과 희생과 봉사의 정신을 나타내 보였다고 생각합니다.
강변교회도 제일 좋은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루디아와 에바브로디도와 글레멘트와 같은 성도들이 많이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사랑의 교제와 사랑의 참예가 충만하고, 사랑의 봉사와 사랑의 섬김과 사랑의 착함이 충만하고, 사랑의 기쁨이 충만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강변교회 안에 목회자와 선교사의 사역에 적극적으로 참예하는 사람들이 많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강변교회 안에 몸으로 섬기며 몸으로 봉사하는 사람들이 많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강변교회가 주님과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제일 좋은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인쇄하기] 2007-08-26 10:0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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