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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혁 목사
  교회는 어떤 곳인가? (10) "그리스도의 몸"
  

교회는 어떤 곳인가? (10) "그리스도의 몸" 2007.9.9
엡1:3-14, 23

오늘 아침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란 제목으로 설교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편지를 써서 보내면서 “교회는 그의 몸이니” 라고 정의를 했습니다. 교회가 예수님의 몸이란 말에는 깊고 신비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에베소서는 교회가 어떤 곳인가에 대해서 기록한 교회론적인 서신입니다. 현대 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두 가지 중요한 주제가 성령론과 교회론인데, 에베소서는 교회론을 취급하고 있는 교회론적인 서신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사도 바울이 제 3차 선교여행을 할 때 개척한 교회였습니다. 빌립보 교회와 데살로니가 교회가 사도 바울이 제 2차 선교 여행을 할 때 마게도냐에 개척한 교회들이었는데, 에베소 교회는 사도 바울이 제 3차 선교여행을 할 때 소 아시아에 개척한 교회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도행전 20장에서 자기가 에베소에서 어떻게 열과 성을 다해서 교회를 개척했고 목회를 했었는지를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너희 가운데서 어떻게 행한 것을 너희도 아는 바니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행20:17-21). 그리고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면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행20:31-32).
지금 사도 바울은 로마 옥에 갇힌 죄수의 몸이 되었는데 에베소 교회에 편지를 써서 보내면서 교회가 어떤 곳인가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성도다운 삶을 살라고 권면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한 마디로 “그의 몸”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엡1:23). 이 세상에 있는 교회가 비록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지만 머리가 되시는 예수님에게 꼭 붙어 있는 예수님의 몸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교회가 신적 존재라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교회가 대단한 존재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만물 안에 존재하면서 만물을 은혜와 사랑과 생명으로 충만케 하시는 주님의 충만이라고 정의를 했습니다. 너무너무 대단한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허물이 많은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지만 주님에게 붙어있는 ‘신적’인 존재이고 그리고 만물 안에 존재하면서 만물을 지탱하고 있는 ‘우주적’인 존재라는 말씀입니다. 너무너무 대단한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사도 바울이 ‘그의 몸’이라고 정의한 교회의 모습을 세 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을 받은 존재입니다.
교회란 말을 헬라어로 ‘에클레시아’라고 하는데 그 뜻은 ‘불러내었다’ 라는 말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 곳곳으로부터 사람들을 택하셔서 불러낸 존재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이 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곳 저곳에서 사람들을 택하셔서 불러내신 존재가 교회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래 전에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같은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나의 종 이스라엘아 나의 택한 야곱아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내가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여 싫어버리지 아니하였노라”(사41:8,9). 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상 곳곳으로부터 택하시고 부르시는 존재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1장에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하나님의 '택하심'과 '예정하심'과 '부르심'을 받은 존재라고 설명을 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엡1:3-12).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도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 바로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을 받은 존재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저들을 택하시고 부르실 때 지혜 있고 능력 있고 문벌 좋은 자들을 택하시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고 지적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6-29). 사실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들을 택하시고 부르실 때부터 잘난 사람들을 택하시고 부르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변방에 살던 갈릴리 사람들을, 그들 중에서도 가난하고 무식한 사람들을 택하시고 부르셨습니다. 조선에서는 가난하고 소외되었던 변방의 평안도 사람들부터 부르셨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인데 그리스도의 몸이 되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세상 곳곳으로부터 택하시고 부르심을 받은 존재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강변교회를 청담동과 도곡동에 세우시고 우리들을 그리스도의 몸이 되게 하기 위해서도 우리들을 여기 저기서 택하시고 부르셨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잘나서 택하시고 부르신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들이 미련하고 약하고 멸시 받는 부족한 존재일지라도 우리들을 이곳 저곳으로부터 택하시고 부르셔서 그리스도의 몸으로 삼으셨다는 말씀입니다. 안흥규씨는 화양동에서 택하여 부르셨고, 한도정씨는 장충동에서 택하여 부르셨고, 채희병씨와 백명희씨와 백혜란씨는 청담동에서 택하여 부르셨고, 박종서씨는 대치동에서 택하여 부르셨고, 정춘화씨와 이목렬씨는 도곡동에서 택하여 부르셔서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들이 되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너무너무 놀라운 사실이고 너무너무 고마운 사실입니다. 찬송할 사실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교회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제일 먼저 사용한 말이 "찬송하리로다"였습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화평과 화목을 이룬 존재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몸의 특징중의 하나는 통일과 평화인데 비해 인간들의 몸의 특징 중의 하나는 분열과 불화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몸의 특징중의 하나는 통일과 평화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가리켜 삼위일체라고 부릅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성자 메시야를 가리켜 ‘평강의 왕’ 또는 ‘평화의 왕’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9:6). 성자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날 천군 천사는 아기 예수를 가리켜 분열과 불화의 땅에 평화를 가져오시는 분이라고 노래했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에게 평화로다”(눅2:14).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들을 이곳 저곳에서 택하시고 부르셔서 그리스도의 몸이 되게 하시려고 했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사람들을 여기 저기서 불러모으시기는 했는데 그 사람들 속에 아직도 분열과 불화의 기질과 성향이 그대로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들의 몸과 맞지 않는 불화의 기질과 성향이 사람들 속에 그대로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컴퓨터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어떤 프로그램을 사용해서 글을 쓰다가 다른 프로그램에서 받아 온 글을 삽입하면 새 프로그램에 맞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억지로 새 프로그램에 뜯어 맞추려고 애를 쓰지만 말을 잘 듣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속이 상해서 이런 말을 합니다. “어느 가문에서 왔는지 모르지만 아주 고약한 가문에서 온 것 같네.” 아주 까다로운 성격을 가진 가문에서 받아 온 글은 성격이 좋은 가문에 들어와도 까다로운 성격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쩌면 컴퓨터도 사람 비슷하네” 라고 말하곤 합니다. 저는 어린 아이들을 모두 사랑하고 귀여워합니다. 그런데 어떤 아이들은 스티커를 주어도 그대로 받지 않고 반드시 다른 스티커를 달라고 조르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다른 스티커를 주면 그것도 싫다고 하면서 또 다른 스티커를 달라고 조르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장면을 먹자고 하면 울면을 먹겠다고 하고 울면을 먹자고 하면 짬뽕을 먹겠다고 우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설교를 들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들을 이곳 저곳에서 택하시고 부르셔서 그리스도의 몸이 되게 하시려고 했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사람들 속에는 아직도 자기 주장만을 내 세우는 분열과 불화의 기질과 성향이 그대로 남아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몸에게 붙여놓았는데도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도 이루어지지 않고 사람들과의 친밀한 교제도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도 제대로 하지 않고 성도들과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분열과 불화의 기질과 성향을 고치기 위해서 특별한 처방을 사용하시게 되었습니다. 사람들 속에 성자의 피를 부어주시고 성령의 기운을 불어넣어주시므로 사람들의 기질과 성향을 고쳐주셨습니다. 결국 사람들 속에 화평과 화목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화평이 이루어지게 되었고 사람들과의 화평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2:13-22). 택하심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피와 성령으로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게 되었고 사람들과 화평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기도의 삶을 살게 되었고 사람들과 친밀한 인사와 교제를 나누면서 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교회의 모습입니다. 교회는 피와 성령으로 화평과 화목을 이룬 존재입니다. 하나님과 화평 그리고 사람들과 화평을 이룬 존재입니다. 아니 지금도 화평을 이루어 가는 존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을 지니게 된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여기 저기서, 이 나라 저 나라에서, 자격이 없는 사람들을 택하시고 불러모으셨습니다. 분열과 불화의 기질을 지니고 있던 사람들을 아들의 피와 성령의 역사로 화평과 화목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이제는 기도도 제법 하게 되었고 인사도 제법 하게 되었고 친밀한 교제도 제법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그 속에 착함이 나타나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의로움과 진실함이 나타나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옛 사람의 기질과 특성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아직도 옛 사람의 착하지도 않고 의롭지도 않고 진실하지도 않은 죄악의 기질과 특성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4장과 5장에서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정욕과 방탕의 모습을 길게 나열했습니다.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은 신자들도 아직 세상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죄악의 특성들을 그대로 지니고 살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옛 사람들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도록 최선을 다 하여야 한다고 권면했습니다.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4:17-32).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엡5:3-5).
사람들 속에는 본래 착함도 의로움도 신실함도 없었습니다.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아도 그런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사도 바울 자신도 그런 고민 가운데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고민한 적이 있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롬7:24,21,19). 어떻게 택하심과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이 피와 성령으로 화평과 화목을 이룬 성도들이 옛 사람의 죄악된 특성들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을 수가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여기서 거의 불가능한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을 지닐 수 있는 거의 불가능한 가능성의 비결을 제시합니다. 거룩한 교회가 될 수 있고 거룩한 성도들이 될 수 있는 비결을 제시합니다. 교회가 교회다울 수 있는 비결을 제시합니다. 엡5:8을 읽습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님 안에 있으므로, 주님을 바라보므로, 주님의 빛을 받아 빛이 되므로, 우리는 조금씩 조금씩 착해지고 의로워지고 진실하게 된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사실은 예수님께서 제시한 방법과 비결이었습니다. “나는 세상에 빛이니라. 나는 세상에 빛으로 왔노라. 나를 믿고 따르는 자는 나의 빛을 받아서 세상에서 빛이 되었느니라. 너희가 세상의 빛이 되었다는 말은 너희 빛을 사람들 앞에 비취게 하고 너희 착한 행실을 나타내 보이므로 하늘에 계신 너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것이니라.” 이것이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장에서 가르치신 말씀이었습니다. 우리가 빛의 열매인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을 나타내 보이면서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은 빛이 되시는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만을 바라보면서 주님의 빛을 받아서 조그만 빛들이 되는 것입니다.
한 말씀 더 드립니다. 착함은 결국 사랑으로 나타난다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5장과 에베소서 5장과 6장은 착함이 결국 사랑으로 나타난다고 말씀했습니다. 착함은 결국 원수 사랑으로 나타난다고 예수님께서 마5:44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사도 바울은 착함이 결국 부부 사랑과 부모 사랑과 자식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나타난다고 엡5장과 6장에서 말씀했습니다.
교회는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치는 조그만 빛들입니다. 교회는 착함이 없는 세상에 모든 착함을 나타내 보이는 존재입니다. 교회는 의로움과 진실함이 없는 세상에 의로움과 진실함을 나타내 보이는 존재입니다. 교회는 미음과 정죄가 가득한 세상에 사랑을 나타내 보이는 존재입니다. 사실 이기적인 존재인 우리들이 착해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지만 주님 안에 있고 주님을 바라보면서 주님의 빛을 받으면 조금씩 조금씩 가능해 집니다. 사실 오늘날 세상이 보라보기를 원하는 교회는 멋지고 화려하게 예배 드리는 교회보다는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취고 착함이 없는 세상에 모든 착함을 나타내 보이고 사랑이 없는 세상에 사랑을 나타내 보이는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현대 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두 가지 중요한 문제가 성령론과 교회론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성령님을 성령님으로 바로 받들어 모시지 못하는 것이 오늘날 교회의 문제이고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는 것이 오늘날 교회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아침 우리는 교회가 어떤 곳인가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을 받은 존귀한 존재입니다. 교회는 피와 성령으로 화평과 화목을 이룬 존재입니다. 교회는 주님 안에서 빛이 된 존재이고 어두운 세상에 착함의 빛을 비취는 존재입니다. 교회는 미움이 가득한 세상에 사랑을 나타내 보이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강변교회가 하나님께서 그려주신 교회의 모습에 가까워지는 아름다운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화평과 화목을 이루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착함을 나타내 보이고 사랑을 나타내 보이는 아름다운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인쇄하기] 2007-09-09 10:4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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