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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태성 목사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말1:1-5)
  


2008.9.21(주일) 허태성 목사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말 1:1-5)

말라기는 주전 5세기경에 활동하던 선지자로서 그가 어떤 선지자였는지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그는 자신은 감추고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한 선지자였다. '말라기'서는 구약의 맨 마지막 책으로서 불과 4장 55절로 이루어진 짧은 성경이지만 그중에서 47절을 하나님을 1인칭 주어로 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당시 이스라엘은 하나님에 대한 예배와 헌신이 식어버린 가운데 그 원인이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다시 돌이킬 수 있는지를 말라기는 기록하고 있다. 오늘부터 10번에 걸쳐서 말라기를 강해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가을에 은혜를 베푸사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회복이 있기를 소원한다.

오늘 본문에 응답을 받지 못한 사랑의 외침이 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I have loved you)"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하신 고백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그 사랑은 의심의 메아리로 돌아왔다.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나님은 사랑했다고 우기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을 잘 모르겠다고 우긴다. 이상한 사랑싸움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사랑하고 계신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계속해서 당신이 이스라엘을 사랑하신다는 증거를 말씀하신다.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형만한 동생 없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에서는 동생 야곱보다 훨씬 괜찮은 사람이었다. 조건으로 치면 에서가 야곱보다 더 사랑을 받을 만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야곱을 사랑하시고 에서를 미워하셨다. 여기서 '사랑하셨다'는 말은 '택하셨다', '구원하셨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반대로 '미워하셨다'는 말은 '유기하셨다'는 뜻이다. 그런데 둘 다 죄인이지만 조건으로 따지자면 에서가 더 낫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야곱을 택하셨다. 왜?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에서의 산은 황무지가 되었고, 에서의 산업은 시랑에게 붙여졌으며 에돔은 무너뜨림을 당해 황폐한 곳을 다시 건축하겠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헐어버리시겠다고 말씀하신다. 따라서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악한 지경, 영영한 진노를 받은 백성'이라 할 것이고 이스라엘은 그 지경 밖에서는 '하나님께서는 위대하신 분이시다!' 라고 말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자체를 의심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의심하고 있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어찌하여 바라는 영광은 임하지 않고 원하지 않는 이런 고난이 계속된다는 말인가?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 회의를 느끼게 되었고 아울러 열심도 식어버리고 그저 마지못해 형식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책임이 하나님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에게 있다고 말씀하신다. 1:1을 보면 하나님은 말라기 선지자를 통하여 경고를 하고 계신다. 이것을 받아 전하는 말라기 선지자의 마음은 몹시 무거웠다.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도 무거우시다. 답답하시다. 사랑받을 만한 자격도 없는 이스라엘을 특별히 택하여 사랑하셨고 지금도 사랑하고 계신데 그것을 도무지 깨닫지 못하고 어떻게 사랑했느냐고 되물으니 정말 답답한 일이 아니가? 물에 빠진 사람 건져 주었더니 고맙다고 인사는커녕 오히려 보따리를 안 준다고 화를 내니 정말 환장할 일이 아닌가? 10달 뱃속에서 키우다가 죽음과도 같은 해산의 고통을 겪으며 낳아서 먹을 것 안 먹고 입을 것 안 입으며 힘써 길렀더니 고작 하는 말이 '이럴 거면 왜 나를 낳았어? 해 준 게 뭐가 있다고 그래' 라고 덤벼드는 자식이 있다면 여러분의 심정이 어떠하겠는가?

인생의 모든 문제는 사랑의 결핍에서 온다. 누군가가 나를 정말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리 어려운 시련을 만나도 결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373장 찬송가에 "세상 모두 사랑 없어 냉랭함을 아느냐 곳곳마다 사랑 없어 탄식소리 뿐일세 곳곳마다 번민함은 사랑 없는 연고요 측은하게 손을 펴고 사랑받기 원하네" 라는 가사가 있는 것처럼 모든 문제는 사랑이 없는데 있다. 그런데 문제는 다 사랑을 받으려고 하지 주려고 하지 않는다. 인간 자체는 남에게 사랑을 줄 만큼 여유롭지가 못하다. 누군가에게 받아야만 줄 수가 있다. 그래서 어려서는 부모로부터 사랑을 충분히 받아야 하고, 학교에 가서는 선생님들로부터, 그리고 결혼해서는 배우자로부터, 교회에 와서는 목회자로부터, 그리고 인생의 과정에서 만나는 친구와 선후배와 직장 동료로부터 충분히 사랑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현실이 그렇지가 못하다. 사랑을 받는 것은 고사하고 많은 상처를 받는다. 그런데 본래 세상은 그런 곳이고 사람은 다 그런 것이다. 너무 세상에게 사람에게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기대하면 실망하게 된다. 그러나 오직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으시는 한 분이 계시다.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이 나를 만세 전에 택하셨다. 별 볼일이 없는 나를, 아니 죄값으로 심판을 받아 마땅한 나를! 그리고 나를 당신의 형상대로 만드셨다. 그리고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사 십자가에 내 죄를 대신하여 죽게 하셨다. 그 사랑을 기억해야 한다. 그 사랑의 깊이와 높이와 넓이와 크기를 생각해 보라. 왜 우리의 삶이 무미건조해졌는가? 그 사랑을 잊었기 때문이다. 처음 사랑을 다시 회복하자!
[인쇄하기] 2008-09-22 15:5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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