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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태성 목사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말1:6-9)
  

2008.9.28(주일) 허태성 목사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말 1:6-9)

설교를 시작하기 전에 4지 선다형 문제 하나를 내보려 한다. 여러분이 처음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을 때의 주님께 대한 사랑과 현재 가지고 있는 주님께 대한 사랑을 비교해 본다면 어떠한가?( )
①지금 더 깊어졌다. ②예전과 같다. ③옛날보다 더 못하다. ④잘 모르겠다.

그 사랑은 무엇을 보면 알 수 있을까? 주님께 대한 공경을 보면 알 수 있다. 사랑은 생각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사랑은 립 서비스로만 표현되지 않는다. 사랑하면 행동으로 공경을 한다.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에 대하여 제대로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던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이번에는 질문하신다.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일반적으로 신앙이 없는 사람들도 이 세상에서 아들은 아비를 공경한다. 종은 주인을 공경한다. 심지어 미물인 소도 그 임자를 알고 나귀도 주인의 구유를 안다(사1:3). 그런데 너희는 나를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왜 공경하지 않느냐? '주님'이라고 부르면서 왜 두려워하지 않느냐? 하나님의 질문에 이스라엘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나? 지난 주일 말씀과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6하)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당시 제사를 빼놓지 않고 드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나를 공경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시며 그 증거를 몇 가지 제시하신다.

1.하나님을 공경하지 않는 징후들 : 불경스런 제사(예배)
1)이스라엘은 더러운 떡을 주의 단에 드렸다(1:7). 공경하는 마음이 없이 형식적으로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은 더럽다고 하신다. 만일 실제로 이스라엘이 더러운 떡을 드렸다면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라고 반문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을 보신 것이다. '주의 상은 경히 여길 것이라' 이 말은 대충해도 된다는 말이다. '뭐 꼭 그렇게 정성을 드릴 필요 없어.' 마치 처삼촌 묘 벌초하듯이 어쩔 수 없이 한 것이다. 안 할 수는 없고 제대로 할 맘은 없고. 주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신다.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원하신다.

2)이스라엘은 성의가 없는 예배를 드렸다(1:8). 눈먼 것이나 저는 것 그리고 병든 것으로 제물을 드렸다. 레22;18-25에 보면 이런 것은 제물로 바쳐서는 안 된다고 기록되어 있다. 제물은 희생 제물이어야 한다. 이 말은 우리의 죄를 위하여 희생되는 제물이라는 의미가 있지만 그러기에 순전한 것을 희생하는 마음으로 드려야 되는 것이다. 우리가 귀하게 아끼는 것을 포기함으로써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헌신을 드리는 것이다. 성의 없는 제물은 악한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러시면서 한 가지 시험을 해 보라고 제안하신다. 총독한테 그런 것들을 선물로 바쳐봐라. 그가 기뻐하면서 받나 안 받나 봐라. 그런데 너희는 나를 총독만큼도 공경하지 않고 있다. 그러고서도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라고 하니 내가 하나나 받겠느냐?

2.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1)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다. 그 원인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자기 방식으로 확인하려고 했다. 마치 아기가 자기 입에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것을 물려주어야만 좋아하는 것처럼 말이다.

2)영적 지도자(제사장)의 신앙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보이는 사람들의 눈치를 더 살피고 있었다. 제사장들은 잘못된 제물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보고서 거절했어야 했다. 혹 백성들은 몰라도 제사장들은 그 제물이 하나님께 적합한 것인지 아닌지의 여부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침묵했고 타협했다. 백성들의 죄를 꾸짖지 못했다. 혹 그나마 그런 제물마저도 안 가져오면 자신들의 식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들은 자신을 먹이시는 분이 하나님이 아니라 백성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영적으로 눈이 멀어 버리면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사람만 보이는 법이다.

3.어떻게 해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눈을 열어 주의 사랑을 보게 해달라고 기도하자. 그러기 위해서 먼저 왜 나의 눈이 감겼는가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 보다 세상을 더 사랑한 죄, 탐욕을 버리지 못한 죄, 주님의 자리에 내가 스스로 올라가서 교만하게 행한 죄, 주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지 않은 죄를 회개하자. 그리고 주님의 사랑을 다시 깊이 깨닫게 해 달라고 기도하자. 우리는 회개할 힘도 없고 깨달을 지혜도 없고 사랑할 마음도 없다. 오직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것들을 주셔야 한다. 그렇게 해 주시면 공경하게 된다. 예배를 바로 드리게 된다. 주님께 희생 제물을 드리면서도 아까운 생각이 들지 않는다. 특히 제사장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가 그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 것을 회개해야 한다. 오늘은 신약시대이기에 구약적인 의미의 제사장은 없다. 예수님이 마지막 제사장이시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 목사, 전도사, 선교사, 장로, 주일학교 교사, 남편, 부모, 모든 그리스도인은 다 제사장이다. 제사장인 나부터 주님 앞에 바로 서야 한다. 그래야 영적 타락을 막을 수 있다. 자신의 경건과 신앙이 허물어졌는데 어찌 남을 보고 바로 하라고 할 수 있는가?

주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날마다 더 자라가야 한다. '이전보다 더욱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내 마음에 주를 향한 사랑이 넘쳐나야 한다. 예배에 생명을 걸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어찌 주님을 사랑하다고 공경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 가을에 말라기서를 통해서 주의 음성을 듣는 모든 강변가족에게 주의 사랑이 넘쳐나기를 축원한다.

[인쇄하기] 2008-09-29 09:5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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