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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남긴다는 것은 그 상징성과 공개성 때문에 항상 두려움을 느낍니다. 반면 과거로 사라지는 시간의 역사를 붙잡아 자신을 돌아보는 거울로서 고마운 역할을 하기도 하지요. 저의 승리와 좌절의 기록을 통해 저와 함께 하신 하나님을 증거할 때 저의 교만, 약함, 위선과 어리석음을 부디 용서하여 주시고 현실 세계 속에서 하나님과 천국을 추구하는 한 작은 성도의 몸부림으로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강원도 영월이라는 궁벽한 시골에서 4남 2녀 중 5째로 태어나 유년과 청소년시절을 보냈습니다. 신실한 불교신자였던 모친의 영향 탓에 불교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랐으며, 고교졸업 때까지 우수한 학업성적 탓에 아버님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지만 그 분의 기대 또한 부담으로 항상 짊어지고 갔습니다. 천문학이나 경제학을 공부하고 싶어했던 저의 소망과는 상관없이 법대를 중퇴하신 아버님의 소망대로 연세대 법대를 진학했지요. 그 당시 저의 삶의 목표는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새롭게 들어간 대학 교정은 거의 매일 매캐한 최루탄 냄새와 화염병, 과격한 구호로 메워지는 음울한 전경을 연출했고 법대 공부에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한 저에게 대학생활은 별 의미가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던 차에 같은 과 선배의 권유로 한 선교단체의 성경공부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전혀 생소한 성경의 사건들을 재미있고 쉽게 풀어 자신의 삶에 적용하는 선배들의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거니와 언행이 일치되게 살려고 애쓰는 그들의 모습이 보기 좋아 그들과 자주 어울리며 경건의 시간, 기도, 암송하는 법을 배워, 저도 따라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1년이 지나자 선배들은 저를 노방전도에 데리고 가 실습을 시켰는데, 어눌한 말로 전도지에 있는 대로 그대로 읽은 것에 불과함에도 마음을 열고 믿겠다는 사람이 생기는데는 그저 아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저도 그렇게 신앙생활을 시작했음에도, 복음의 능력을 의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실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전도를 계속 해 나갈수록 우리 가족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 해 갔고 가족구원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날을 정해 둘째 누나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누나가 선선히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었습니다. 누나를 성경공부 모임에 초청하여 함께 예수님을 배워나가며 약 1년 정도 지나자, 누나는 저에게 처음 복음을 믿은 속내를 털어놨습니다. 제가 어느 날부터 성경책을 매일 읽기 시작하더니 평소에 잔소리를 해도 하지 않던 방 청소, 설거지를 자진해서 하는가 하면 매일 누나의 구원을 위해 기도 노트를 써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제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보고자 믿겠다고 하고서 성경공부 모임에도 따라갔다고 하더군요. 동생을 걱정하는 마음까지도 사용하셔서 가족구원을 위한 간절한 기도를 들으셨던 것입니다. 그 이후 막내동생, 큰누나, 작은형수, 큰형수에게도 차례로 복음을 전하여 주님께 돌아오기 시작했는데, 역시 부모님이 제일 큰 장벽이었습니다. 부모님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은 또 하나의 극적인 반전을 준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대학 3학년 시절이 끝나갈 무렵, 사법시험을 통해 법조인이 된다는 것이 제게는 별 의미가 없어 보여 그만두기로 결단하고 아버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당시 생의 모든 소망을 저의 사법고시 패스에 두고 있던 아버님은 위와 같은 통보에 노발대발하시면서 ‘너는 이제 내 자식이 아니다. 결국 예수에 빠지더니 이런 결과를 낳았구나.’라고 탄식하시며 보기도 싫으니 집에서 나가라고 하시더군요. 저는 찢어지는 가슴을 부여안고 집에서 나와 생활훈련관(위 선교단체에서 성품의 연단을 위해 마련한 일종의 기숙사)에서 약 1년을 형제들과 함께 기거하며 사회로 출발할 준비를 하여야 했습니다. 아버님과 갈등구조에서 지친 피곤한 심령은 군대로 도피하려고 했지만 ‘군면제’라는 뜻하지 않던 장애를 만나 진로수정이 불가피했습니다. 저는 아버님과 정전협정을 맺었습니다. 유보된 3년간 사법시험 공부를 해서 패스를 하면 아버님도 교회에 나가시겠다는 협정을 말입니다. 그러자 옆에서 초조한 마음으로 이를 지켜보던 어머님께서 놀라운 결심을 하셨습니다. 그 이전에도 몇 번 교회에 모시고 갔었지만 마음이 불편하고 힘들다며 거부하셨는데, 이제 한집에 두 신을 섬기는 일을 계속하다가는 집안이 풍지박산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끼신 것입니다. 어머님은 마지막으로 절에 찾아가셔서 ‘가정의 안위를 위해 부처님을 떠나 하나님께로 가는 것을 이해해 달라’고 기도하셨다고 회고하시더군요. 그 이후 어머님은 매일 밤 9시면 옥상에 올라가 저의 합격을 위해 하나님께 기원을 하셨고 약 1-2년간 매주 교회에 갈 때마다 ‘Amazing Grace’를 부르실 때마다 한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고 하시더군요. 참으로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은 오묘하기만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저는 사법시험에 합격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버님은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교회에 잘 나가지 않으셨지만, 신의 존재를 부정하며 믿을 것은 자신뿐이 없다던 분이 목사님이나 권사님의 심방에 함께 참석하여 찬송을 부르며 예배를 드리시곤 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1997년 작고하실 때까지 공개적인 신앙고백을 하진 않았지만 십자가상에서 회개하는 강도의 믿음조차 받으셨던 것처럼 아버님의 중심을 보셔서 천국으로 데려가셨기를 소망해 봅니다.
2년간의 사법연수원 생활을 마치고 1992년 3월에 저는 대구지방검찰청에 초임검사로 부임해 갔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행 18:9-10)는 말씀을 명령으로 받고 주의 백성들을 찾아 검찰에 투신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나 달랐습니다. 처음 대하는 군대같은 엄격한 조직, 한치의 빈틈도 허용치 않는 사건처리, 드센 사건 당사자, 그리고 획일적인 회식문화 속에서 신앙을 지키는 것 자체가 힘들어 보였습니다. 한 달에 20일 이상 계속되는 야근, 월초의 강권적인 술자리 등으로 육체는 지쳐갔고 말씀과 기도를 게을리 하면서 영혼도 빛을 잃어 갔습니다. 그 당시 저는 약 10년간 교제를 해 오던 위 선교단체 팀원들과 몇 가지 근본적인 시각 차 때문에 선교단체를 나왔지만, 한껏 고양된 영적 엘리트 의식은 교회생활에 적응을 어렵게 만들어 교회의 이방인으로 남았습니다. 갑자기 찾아온 ‘교제의 공백상태’는 영육의 곤고한 상태를 더욱 심화시켰습니다. 교회에 갈 때마다 회개와 헌신을 새롭게 다짐하곤 해 보았지만 다시 생활로 돌아오면 반복되는 실패 속에서 좌절해 갔습니다. 세상과 교회사이에서 오락가락하며 예배는 형식적이 되어 갔고, 세상의 쾌락과 즐거움에 빠져 들어가는 제 자신을 보게 될 때마다 ‘저희가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벧후 2:20-22)는 말씀이 제가 응한 것 같았습니다. 홀로 서서도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영적 교만은 산산히 부서졌고 저는 제 자신의 결단이나 인격조차 신뢰하기 어려울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2000년 6월경 미국으로 6개월간 연수를 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저를 옮기셔서 치료하시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으셨나 봅니다.
미국에 가서 만난 아내의 대학 후배의 권유로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 인근에 있는 한인교회인 새누리 침례교회에 출석하여 새신자 성경공부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위 교회는 ‘죽으면 죽으리라’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는 고 안이숙 여사의 남편인 김동명 목사님이 시무하시던 교회였습니다. 성경공부의 주 테마는 ‘용서받은 탕자’였는데, 김 목사님의 개인적인 신앙경험에 기초하여 만든 성경공부 교제를 가지고 부목사님과 함께 성경공부를 하고 난 다음 소감문을 제출하는 순서로 진행되었습니다.
저의 가족 구원역사를 읽으시고 제가 상당히 행복한 신앙생활을 했다고 생각하실지 모르나 실상 저는 신앙생활 자체가 힘들고 고단했습니다. 가족 특히 아버님과의 극심한 갈등은 ‘차라리 예수님을 몰랐었으면 좋았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고 ‘좋으신 하나님 참 좋으신 하나님’을 알기 전에 ‘포기하기를 요구하시는 하나님, 떠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으로 저에게 다가왔으며, 작은 아이의 손에 쥔 것조차 취하려 드시는 인색하신 하나님, 순종하지 않으면 즉각 응징하려 드시는 보복의 하나님으로 제게 비쳐졌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위 성경공부를 해 나가면서 저는 저의 행복과 기쁨을 진실로 원하시는 하나님, 그러기에 자신을 지옥에 내어주신 비극적 사랑의 주인공인 예수님을 발견하게 되면서 단단히 굳어서 화석화된 마음의 빗장을 다시금 열고 감사의 눈물을 흘리는 일이 자주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아내, 아이들과 미국 동·서부, 캐나다, 유럽을 여행다니며 세상의 넓음과 우리가 추구하고 사는 명예, 지위, 권력, ― 이런 것이 참으로 부질없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깊어졌습니다.
귀국을 하고 나서 이은규 집사님의 권유로 강변교회에 등록한 후에 새가족 성경공부반에서 여러 장년 성도님들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온유하고 활달한 박호준 집사님 부부, 소탈하고 따뜻한 노오현 집사님 부부, 화목하고 인정많은 박종서씨 부부, 진솔하고 재치있는 김무씨 부부 등과 함께 담임목사님의 오랜 경륜에서 배어나오는 균형감과 초월을 듣고 보고 교제하며 즐겁게 살도록 지음 받음에 대하여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교회에 가는 것이 즐겁고 성도들을 만나는 것이 즐겁고 함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즐거운 교회, 나눔이 즐겁고 드림이 즐거운 교회 - 그런 교회를 만나게 하심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직장생활도 안정을 되찾고 즐거운 일터로 변화하고 있으며 직장내의 믿음의 형제들과 연합하는 즐거움도 누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몇몇 필요를 보여주셔서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강변교회 성도 여러분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이제 몇 가지 기도부탁을 하며 글을 끝맺고자 합니다.
거룩한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강렬한 소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경건의 연습에 힘쓸 수 있도록, 그리고 범사에 하나님을 시인하며 살 수 있도록, 그리고 우리 가정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기쁨이 되며 이웃을 사랑하고 나누는 가정이 되도록, 검찰에 믿음의 일군들을 세워 주실 뿐 아니라 중요한 직책에 있는 주의 종들에게 깨끗함과 지혜와 용기를 주시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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