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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조 장로님 환갑을 맞아, 아드님들이 금상산으로 효도 관광을 가시게 한다 하여 기도하던 북한 땅을 밟으며, 명산을 등정하고 싶어 목사님 내외분을 모시고 권중국 장로님 내외분과 김학래 집사님 내외분과 함께 우리 부부도 동참하게 되었다. 전 장로님의 아들 경섭씨의 세심한 도움으로 좋은 조건으로 편하게 여행할 수 있었다.
업무에 지장이 없도록 추석 연휴를 택한 우리 일행이 동해항에 도착한 것은 오전 10시쯤이었다. 예약된 금강호는 우리 눈앞에 있었지만 오후 6시나 되어야 출항한단다. 권장로님의 말씀에 의하면 우리가 타고 갈 금강호는 폴란드에서 하루 3만불로 임대하였을 것이라 한다. 안내원 설명으로는 북한 입국비(入國費)가 한 사람 당 500불이라 하니. 금강산 관광사업으로 인해 한국의 중추적 기업인 현대가 운영에 실수가 있지 않을까 심히 염려스러웠다.
목사님께서는 늘 그러시듯 부족한 수면을 보충할 자리를 찾으려고 대합실 이곳 저곳 적당한 구석 자리를 둘러보신다. 마침 선착장에서 가까운 옥돌 찜질방을 발견하여, 찜질방이 처음이라는 목사님과 우리 일행은 한 방에서 격의 없는 모양새로 가로 세로 편하게 누워 땀을 흠뻑 흘리며, 새벽부터 설친 잠들을 보충하고 식사를 하였다.
4시 30분부터 승선 준비를 했다. 마치 유치원 원생들을 인솔하여 소풍하듯 안내원들은 여권을 목에 잘 걸었나 확인하고는 고성능 카메라, 휴대폰, 한화(韓貨) 등을 지참하면 북측에 압수된다는 등의 여러 주의를 수차 반복했다. 여행가는 것이 아니라 잠깐 납치 당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특히 북한 땅에서의 행동 규제와 벌금이 10불, 30불, 150불 등으로 매김된다는 주의를 귀에 못박으려는 듯 계속 반복한다.
“아무래도 우리 목사님은 벌금 내셔야 할 것만 같아 어쩌지, 난 몰라.”
김봉화 사모님은 난감해 하면서 항상 모험심과 호기심이 왕성하신 목사님을 걱정하신다.
동해 선착장이 시야에서 지워지면서 밤이 깊어진다. 9층이나 되는 큰 배의 묵직한 흔들림이 시작되니, 비로소 출발 전에 들은 태풍주의보를 상기했다. 태풍을 불안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멀미가 심한 나를 걱정하던 최수희 집사가 그만 멀미로 고생하고 말았다. 타이타닉 영화의 환상적인 주인공 흉내를 내고 싶어하던 최집사는 갑판에 주저앉아 괴로워하는 현실의 주인공이 되었다. 아내를 안타까워하는 김학래 집사님의 헌신적인 모습과 어울려 금강호의 로맨틱한 주인공 커플로서 타익타닉 영화의 주인공들 못지 않게 아름다운 부부애를 과시했다. 다른 사람들은 속수무책인 채로 안타까운 마음을 동해의 야경(금강호에 갈리는 바다 포말만 약간 보이는)에 눈길을 줄 수밖에 없었다.
식당에서 우리 일행은 한 테이블에 앉을 수 있도록 내내 배려 받았다. 싱가폴, 필립핀, 중국, 방글라데시인들이 종업원의 90%이어서 한국어가 서툴러 의사 소통이 약간 불편했지만, 목사님의 유창한 영어 덕으로 특별 우대를 받았다. 음식도 맛있었지만 기분들이 좋아서 모두들 식욕이 왕성했다. 식후에 전장로님 환갑, 최수희 집사님 생일, 나의 퇴임을 축복하는 기도와 종업원들의 축하송을 받고, 케익을 나누는 화목한 분위기로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았다. 모두들 십대로 돌아간 것인지 별일도 아닌 일에 모두 폭소하며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특히 목사님의 아담놀이는 분위기를 절정에 올렸다. 아담이 하나님의 창조물에 이름을 붙이는 심정이라며 우리 일행의 별명을 지으시는데, 모두들 재미를 함께 만끽하였다. 윤경순 집사님을 ‘오리’라고 하니 전 장로님은 “맞습니다. 나한테 하루에 몇 번씩 오리발을 내 놓습니다.”라고 유머로 긍정하시니 모두들 폭소를 터뜨렸다. 윤집사는 “목사님, 저 그럼 미운 오리 할래요.”하며 은근히 안델센 동화의 백조가 되려고 졸랐지만 아직까지 허락 받지 못했다. 유난히도 남편을 예의바르게 공경하는 조경애 권사님에게 ‘동남아 공작’이라고 하니 조경애 권사님은 너무 만족하여 “역시 우리 목사님은 재치와 관찰력이 뛰어나셔요.”라고 격찬하는 귀여운 아첨에 또 폭소를 터뜨렸다. 나를 보시며 “가장 안 좋은 동물인데……” 뜸을 들이시다 ‘밤에만 보는 새’라고 하여 시각과 시력에 의미를 둔 ‘부엉이’별명을 붙여주니 모두들 “듣고 보니 권사님 얼굴이 부엉이와 꼭 같다”고 즐거워했다. 펭귄 별명을 받은 최수희 집사님은 스스로 크게 공감하며 만족했다. 모두들 “사모님은요?”하니 “우리 집사람은 교역자들이 학으로 지어 주고 나는 적토마라고 지어주었다”라고 하신다. “에……!” 악의 없는 항의에 사모님은 목사님이 작명한 것이 아니라고 순진하게도 열심히 변명하신다. 관운장의 적토마에 비유한 것은 주님이 일로 항상 동분서주(東奔西走)하시는 목사님을 존경하시는 의미이리라 싶다.
목사님은 아담의 이름짓기를 즐거워하셔서 귀가하는 버스에서까지 이어졌다. 땀을 연신 닦으시면서 해산하는 산모처럼 힘들여 별명 짓기를 하신다. 목사님의 산고(産苦)의 작품을 더 밝히면 권장로님은 ‘멧돼지’, 안장로님은 ‘물개’, 전장로님은 ‘독수리’, ‘김학래 집사님은 ‘코알라’이다. 그 외의 사랑하는 성도님들의 별명을 발표하는 것은 때를 기다리시겠다고 하셨다.
하나님의 창조물인 모든 동물에서 느껴지는 애정을 성도들에게 붙여 주면서 성도들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을 표현하시려는 목사님의 마음이 통해서인지 어떤 동물도 불쾌하게 여기기는 커녕 오히려 더 기뻐했다.
아침 식사를 미치고 목사님 방에 모여 예배를 드린 후 설레는 마음으로 하선(下船)할 때마다 비가 내렸다. 가늘지만 무게 있게 내리는 비 때문일까? 안개 때문일까? 시야 거리가 짧았다. 모든 활동이 정지된 듯 조용한 장진항 부두에는 관광객과 종사자만 있을 뿐 북한 주민은 그림자도 없다.
유치원에 다닐 때 어른들 손을 꼭 잡고 떠난 북쪽 땅이다. 숨소리도 제대로 못 내고, 겁에 질려 울지도 못하고 눈 덮인 삼팔선의 산을 넘어 고향을 떠난 것이 55년이 지났다. 북쪽에 내 고향이 있다는 절절한 감정을 느낀 적도 없었는데 왜 이렇게 가슴이 설레는지…….
흙내음을 맡으며 걸어보고 싶었지만 허락되지 않는다.
문명 이전으로 온 듯 맑은 공기를 호흡하며 저 산자락까지만이라도 걸어보고 싶었지만, 남북 정상이 악수한 여운이 아직 여기까지 닿지 않았나 보다. 장진항에서 온정리까지 거리는 얼마 되지 않았다. 5분? 10분? 모두 우루루 버스에 탔다 하면 내리곤 했는데 버스 기사조차 북한 사람이 아닌 중국 조선족이었다. 일제 때 만든 길이라는 데 노폭이 좁고 굽이가 짧아 ‘현대(現代) 자동차’에서 도로에 맞게 길이가 짧은 버스를 특별히 제작했다고 한다. 차창 밖에도 주민은 보이지 않는다. 북쪽 주민들은 이 길로 다닐 수 없다고 한다. 북쪽 군인들이 요소 요소에 있었지만 너무 많은 관광객을 보아서인지 모두가 표정이 없는 나무 병정 같아 손을 흔들어도 반응이 없다. 오히려 노변 숲에 모여있는 가늘고 긴 곧게 뻗은 미인송(美人松, 북한에서 붙인 이름이다)들이 껍질 벗겨진 붉은 살을 부끄러워하는 듯 추워하는 듯 애처롭다.
우비를 입었지만, 점점 굵어지는 빗물이 눈 코로 침입하는 것을 피하고, 비로 젖은 땅이 미끄러워 넘어지지 않으려고 머리를 숙여 땅만 보고 행군을 했다. 가다가 쉬며 호흡을 다듬으면서 비로소 산경(山景)을 바라보곤 했는데, 정비석의 ‘산정무한’과 송강 강철의 ‘관동별곡’에서 감상한 금강산 절경의 한 부분밖에 볼 수 없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에 심술이 일었다.
만물상의 다양한 형용(形容)의 바위 모양에 북쪽 사람들이 지어 붙인 이름이 오히려 어울리지 않았다. 우주를 호흡하는 숭엄한 자연을 졸속(拙速)스러운 인간의 생각에 꿰어 맞추는 것 같아, 나는 그 바위 이름들을 애써 듣지 않았다. 바위 그 자체가 좋았다. 다양한 모습을 보면서 나름대로 내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것이 더 즐거웠다.
그러나 주체사상을 강조하는 문구의 한 글자 한 글자들이, 바위보다 더 거대한 몸놀림으로 하늘을 활보하는 듯 하늘을 향해 눈을 부릅뜨고 버티는 선명한 붉은 색에서, 문득 조지 오웰의 ‘1984년’이 생각된다.
요소 요소에 북측 안내원들이 고무 장화를 신고 비옷을 입거나, 아니면 우산을 들고 두 사람씩 서성거리고 있었다.
“춥지 않아요?”
“춥습네다.”
내가 말을 걸어 본 안내원은 중국 조선족이라 했다. 그들의 주된 임무는 김일성 주석이 언제 무슨 말을 남기고 다녀갔다는 짧은 기록이 붉은 글씨로 새겨진 입 간판을 관광객의 불경스러운 언행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인 듯 했다. 또 관광객들의 실수를 찾아내 벌금을 매기는 일도 그들의 임무인 듯 했다. 계곡들의 빼어난 절경과 구룡폭포, 비봉폭포의 장엄함과, 옥빛을 띤 계곡 물의 아름다움에 취하여 윤 경순 권사는 탄사(歎辭)를 멈추지 않는다. 여기저기 낮은 바위에도 옛날에 다녀간 관광객들이 자기가 다녀간 흔적을 남기려 했든지 달필로 쪼아 새긴 한자 이름들이 선명하게 또는 지워질 듯 여기저기 무수히 깔려 있다. 오래도록 자손이 번성하고 장수하기를 기원하려는 미신에서 비롯된 이 행위가 후손에게 어떻게 평가될지를 전혀 생각지 못한 우리 조상들의 무지가 안타깝기만 하다.
목사님과 김학래 집사님은 개구쟁이 아이들처럼 출렁다리를 지나며 크게 뛰어 흔들어 우리 일행 여자들을 공포에 몰아넣는 장난을 하시다가 북한 안내원들의 주의를 들었다 한다.
목사님의 ‘날고싶은 충동’이 또 일어나 윤 권사님의 작은 우산을 들고 “이 우산을 펼쳐 들면 저 높은 바위에서 날 수 있을 거야.”하시며 훌훌 앞장서셨다. 이 말은 전해 들은 사모님은 대경실색하시는데, 전 장로님은 빙긋이 웃으며 “목사님보다 우리 양산이 걱정되네요.”하시며 사모님을 유머로 안심시켜 드리니 또 모두들 허리를 잡고 웃었다. 윤 권사님의 예쁜 양산이 망가질까 염려하셨는지 목사님의 비행(飛行)은 없었다.
등산 후 늦은 점심을 했다. 첫날 북한 교예단 공연을 관람한 후 소감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훈련에 의한 초인적인 기능에 대부분이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경탄했지만, 저 경지까지 이르는 과정이 상상되어 마음이 저렸다. 둘쨋날은 온정리 온천에 피곤을 모두 씻고 승선하였다. 태풍이 점점 심해져 배가 심하게 흔들렸지만 아무도 침실로 갈 생각을 않자, 종업원이 자리를 비워 줄 것을 정중하게 호소했다. 선내 까페로 자리를 옮겨 늦도록 차를 마시며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러시아 미인들의 바이올린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차를 마실 때에도 적절하게 활용하시는 목사님의 짧은 러시아어가 그녀들을 기쁘게 해 주었다. 너무 오래 자리에 있었기 때문인지 “한잔 더 드릴까요?”하는 친절(?)에 리필로 착각하고 안장로님이 응하였더니 계산에 첨가되었다.
늦잠을 자고 나니 우리 땅이다. 무질서하고 어수선하고 공기도 맑지 않지만 생동력 있고 피돌기가 잘 되는 혈관처럼 건강한 우리 땅이야말로 참으로 살만한 곳이라는 감사가 저절로 나온다.
서울에 도착하자 목사님께서 “멧돼지 바비큐를 먹고 싶은데.”하시는 농담에 권장로님이 제일 즐겁게 폭소하셨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날 강변교회 온 성도들과 함께 금강산이든 풍악산이든지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예배드리고 교제할 수 있는 날이 속히 이루어지기를 소원하며 빗속에서 헤어졌다.
*봉래산은 금강산의 겨울 이름입니다.
편집자 주(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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