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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거스틴은 “시간과 영혼”이란 책에서 시간을 둘로 나누고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보통 인식하고 있는 ‘크로노스’라고 하는 물리적인 시간이 있고 또 하나는 ‘카이로스’라고 말하는 시간이 있는데 이것은 시간을 의미있는 점으로 보는 것입니다. 의미 있는 점 하나하나가 무수히 많이 모여질 때 의미있는 삶이라는 선이 그어질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추구하고 싶은 이 점들을 많이 찍을 수 있는 시간을 여행을 통해서 체험할 수 있고 또 여행은 그 의미의 욕구들을 충족시킬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체험임에 분명합니다. 이번에 선교여행 역시 10박 11일이라고 하는 물리적인 의미에서는 참 짧은 시간이었지만 카이로스적인 의미로 본다면 물리적인 사소함을 충분히 뛰어넘을 수 있는 정말 귀중하고 값진 의미의 산물이 되었습니다.
이번의 선교여행은 제게는 과거와 현재를 진하게 경험하게 했고 그리고 미래를 설레는 마음으로 예측하고 꿈꾸게 하였던 주님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다 보게 하신 참으로 귀중한 여행이 되었습니다. 처음의 목적지인 이번 여행의 가장 핵심 여행지라고 할 수 있는 5박 6일 동안의 그리스에서는 바울의 2차 선교여행지를 순례하면서 과거에 성령에 이끌린 바울이 어떻게 그 먼 길을 달려갈 수 있었던가를, 가는 곳마다 바울의 체취가, 심장의 박동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감동을 받으며 그의 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에서 본 것을 인간의 역사와 하나님의 역사 이렇게 둘로 나누어 보고 싶습니다. 인간의 역사 속의 그리스를 보았다는 것은 그리스인들에게 절대적인 수입원이 되고 있는 관광지로서의 그리스를 본 것인데 제가 그동안 상상했던 멋지고 위대한 인간의 역사 속의 그리스가 아니어서 솔직히 실망을 좀 했습니다. 미술책 속에서 그렇게 예술적으로 다가왔던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을 비롯한 여러 신전들은 하나같이 한때는 그 웅장함과 하늘을 찌를 듯한 위용을 자랑했겠지만 지금은 보수공사로 간신히 지탱하고 있는 은퇴한 늙은 명장과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초대 올림픽을 개최한 올림픽 경기장에서도, 책 속에서 아름답고 감미롭게 다가왔던 그리스의 여러 신들의 그저 오래되고 낡은 조각품들 속에서 한때는 그렇게 유구한 역사와 전통의 자취는 분명히 존재하면서도 현재 유럽에서 아주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일 뿐인 허망함들을 서글프게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신 그리스는 바울의 선교지를 순례하면서 바라볼 수 있었는데 그것은 제겐 기대 이상의 놀라움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바울의 선교 자취는 아주 길고 스케일이 큰 여정이었습니다. 바울이 아덴의 지성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던 아레오바고 광장에 서성여 보기도 했고, 성적으로 문란했던 옛 고린도의 황량하고 스산함 속에서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어디든지 달려갔던 바울의 눈물과 애타는 마음을 엿보기도 했습니다. 바울이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던 베뢰아 강단에선 바울의 음성이 들리는 듯했고, 아시아로 가려다 뱃머리를 돌려 처음 기착한 네압볼리 해변가에 발을 담그며 망망한 바다를 마주한 바울의 포부를 들이마시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강변교회의 첫 이름이었다는 빌립보 교회에서의 감격도 잊을 수 없습니다. 바울이 갇혀 있던 감옥을 들여다보았을 땐 저도 모르게 눈물이 맺히기도 했고, 옥문이 열리는 상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다만 그 곳이 유적지가 아니라 현재에도 제2, 제3의 바울이 대대로 이어져서 그곳에서 복음을 증거하고 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바울이 동역자 루디아에게 세례를 준 강가 순례도 빼놓을 수 없는 감격의 체험들이었습니다.
역시 그리스 여행에서의 가장 클라이막스는 마지막 여정지인 메테오라 성지가 분명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스 최대의 절벽산지를 오르고 또 올라 깎아지른 듯한 메테오라의 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세워진 비잔틴 양식의 성지들을 발견했을 때의 충격, 아니 그 보다 더 한 차원 높은 감격은 수도원안에 그려진 벽화를 보고 난 후였습니다. 예수를 믿으며 예수를 부인하지 않은 결과 그들에게 가해진 순교의 죽음들, 온갖 처참한 방법으로 처형당하는 14세기의 그 벽화를 마주한 것만으로도 이번 선교여행의 값진 보상을 다 채운 것 같은 비장함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 예수를 죽기까지 좇아 간다는 것! 그 이상 더 이룰 것이 없고 그 이하는 다 버릴 수밖에 없는 십자가의 운명 같은 것이 막 엄습해 왔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리스에서 우리 여행의 가이드였던 집시교회 사역자 손영삼 선교사가 말했던 참 의미있는 말 한마디를 전해드리고 끝맺을까 합니다. 그는 선교사는 여행가이며, 탐험가라고 말했습니다. 여행을 하다 보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에게 자기 이야기를 열심히 하다 보면 결국은 자신의 가장 큰 관심사이며 자기 안에 존재하는 피할 수 없는 예수라는 존재를 말하게 되면서 예수를 전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참 멋진 말이고 공감을 했습니다.
이 여행에서 또 하나 얻은 귀중한 경험은 강변교인들과의 뜨거운 만남과 그분들의 진가를 발견한 것도 꼭 밝히고 싶습니다. 다른 교회 장로님들과는 정말 격이 다른 안흥규 장로님과 권중국장로님의 그 묵묵한 헌신적인 보살핌, 부부의 연을 가르기까지 하면서 비장하게 룸메이트를 제일 많이 한 조경애 권사님의 그 섬세하고 우아한 신앙의 인생담, 함께 밤새고 이야기하며 웃느라 옆방 식구들 잠을 설치게 한 일들, 또 3일 동안 룸메이트를 하며 함께 눈물의 기도를 드리던 최수희 집사님과의 교제, 강변교회 20년사를 들으며 어떻게 교회생활을 해야 할지 조언을 주시던 강영희집사님, 러시아에서 밤기차를 타고 달려와 아침에 한 화장실에 둘이 들어가 못 볼일까지 다 보여 친해진 정소영집사님, 첫 비행기에서부터 두사람의 승객에게 전도를 하시는 전영신권사님의 그 복음을 향한 열정, 함께 그리스에서 깊고 푸른 에게해를 지나면서 몇 시간 동안 성령에 이끌려 복음송을 열창했던 이복선집사님과 이영란 전도사님 모두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모든 귀중한 경험을 갖도록 만들어 주신 하나님과 김명혁 목사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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